[직시] 집에 있다고 쉬는 건 아니랍니다

집을 가꾸는 시간, 나를 채우는 시간

by 조온
다녀올게. 집에서 잘 쉬고 있어!

출근을 하며 따뜻하게 건네는 남편의 인사가 문득 부당하게 느껴졌다. 가족들이 떠나고 나면 나의 집안일은 시작되는데, 내가 하는 일을 모두 무시하는 발언처럼 느껴졌다. 나의 그 좁디좁은 마음이 너무 쪼잔하게 느껴져서 그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지도 못하고 마음속에 꽁꽁 숨겨뒀다가, 퇴근한 남편의 뒤에서 오늘 이런저런 일을 했다며 괜히 더 부산을 떨고 하소연을 하며 은근슬쩍 풀어내곤 했었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괴롭히는 건 치사하고 작은 파편 하나이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그 작은 조각이 얼마나 불편한지, 결국 어느 날엔가는 큰 유리병 조각에 그 파편을 끼워 넣어서 깨뜨려 버리고야 만다.


명분 있는 큰 싸움을 치른다고 내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큰 파편들이 마음을 찌르고 갈등이 커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다. 내 마음의 찔림은 스스로 당당하지 못해서 꺼내놓지 못한 말과 마음이었음을.. 내 상황과 마음에 대해서 제대로 바라보고 스스로 인정해 줘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김수영, <풀>(1968)


주부의 적은 게으름이다

가족들이 나가고 홀로 남아 집안을 둘러보면, 해야 할 일의 잔해들과 편히 몸을 뉘일 수 있는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이때 작은 유혹이 밀려온다. ‘일단 좀 쉬었다가 일어나서 일을 하자’. 그렇게 눕기를 선택한 날은, 그냥 누워서 대부분의 낮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맘만 먹으면 쉴 수 있는 집에서 게으르려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음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쉼이 필요하다

누워있다고 쉬는 것이 아니라, 누워서 생각과 마음이 함께 쉬는 시간이라야 온전한 휴식시간이고 할 수 있다. 쉼의 공간이 되어야 할 집이 주부에게 있어서는 일과 쉼이 분리되지 않는 공간이기도 하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눈에 들어오는 집안일들과 생각을 멈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이 나간 집을 정리하고 나면, 집 밖으로 나가서 온전한 휴식을 한두시간 보내고 들어와 다시 업무재개를 하곤 한다.


주부의 쉼과 일은 경계가 없다. 이런 경계 없는 시간과 업무 가운데 스스로 기준을 두고 매일을 보내지 않으면,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고, 열심히 일해도 일의 마침이 없을 수 있다.




내 일과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보자면 남편이 출근해서 돌아오는 한 나절 동안의 모든 시간에 가사노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온전한 내 시간은 없는 것 같은 하루들이 일상다반사이다. 이런 주부의 시간을 누군가는 놀고 있다고 표현하지만, 정작 나는 이 시간을 매여있는 시간이라고 느낀다. 그 시간을 마음의 부담만 느끼는 시간으로 흘려보낼 것인지, 집을 가꾸고 나의 겉과 속을 채우는 시간으로 쓸 것인지는 온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외부에서 들어온 말들이 비수가 되어 마음 여기저기를 찌르며 돌아다닐 때면, 내 마음이 부산하고 정리되지 않았구나 생각한다. 그런 날에는 아침부터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이며 집안 곳곳의 찌든 때를 닦고 평소에 쌓아두었던 어수선한 곳을 정리한다. 몸도 마음도 피곤함이 올라오지만 개운해진 그때에 차 한잔을 마시면, 깨끗해진 집만큼이나 내 마음속도 맑아져서 외부의 침입자들은 이미 사라졌음을 확인한다. 작은 파편들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자. 오히려 치사한 그 작은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내고 보면, 내 상태의 문제이거나 오해인 경우가 대다수이므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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