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에 대한 각기 다른 시각
하는 게 없다는데.. 나는 왜 바쁜 거지?
사람마다 고질적으로 고쳐지지 않는 습관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에겐 오랫동안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것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일이었다. 10대 시절엔 아침잠이 많아 지각을 하기도 부지기수였고, 대학시절엔 자기 계발서들로 마음을 다잡고 새벽 도서관 알바를 의무적으로라도 해보며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려고 몸부림쳤다. 차츰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8시 30분에 일어나서 준비 10분, 출근시간 20분까지 총 30분 만에 출근할 수 있도록 집과 직장거리를 세팅해서 다녔다. 그러나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주부가 되어서야, 나는 기꺼이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하던 신생아 시절에 쪽잠을 자면서, 내 몸의 시간체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하루 수면시간은 7시간 이하로 설정되었고, 이제는 밤까지 육아 후 누리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아까워 가장 늦게 잠들어도 아이 아침식사 준비를 할 생각에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가끔 야근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보통은 9시부터 6시까지 정해진 업무시간이 끝나면 나의 자유시간이었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어떤 죄책감도 없이 여행과 취미생활을 즐기며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요즘은 오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그리고 오후 3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는 육아 및 청소, 식사준비 등의 고정된 업무가 있는 주부의 역할을 수행한다. 고정된 업무가 없는 6시간가량의 시간 동안, 매일 다르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들을 한다. 그런데 이 한나절을 자유시간으로 여기는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1939)
주부의 하루는 누구보다도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하는 자리이다. 어찌 보면 각자의 생각과 능력치를 넘어 능동성에 따라 그 차이가 너무도 크다. 고정된 일정이 없는 낮 시간에도, 식재료준비부터, 틈새청소 등을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붐비지 않는 시간에 커피 한잔을 하는 여유를 보며, 주부의 시간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아이가 생긴 후부터 학령기 전까지의 아이를 둔 주부는, 정해진 일은 없지만 바쁜 이 상황에 공감할 것이다.
고정된 주부의 역할만 해도 매일 8시간 이상이다. 최저시급으로 계산해도 200만 원이다. 내가 일을 한다고 가정하고 아이 돌봄만 하는 정부지원도우미를 구하면 월 200만 원, 가사를 같이해주는 산후도우미를 구하면 월 300만 원 수준이다. 그런데 허점은 9 to 6의 경우고, 입주도우미는 월 350만 원 이상부터이다. 그럼에도 자기 기준에 맞게 완벽히 맘에 드는 도우미 찾기는 정말 힘들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가정 내의 일에 대해서는 생산성에 있어서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낮 시간 내내 열심히 한 청소, 건강한 재료로 완성한 음식, 아이의 사소한 것들을 챙긴 시간들은 주부의 노동력을 써서 생겨난 생산물이다. 완성된 제품만을 생산의 결과로 보는 시각을 바꿔 보자. 기업에서도 일부라도 들어간 원재료, 노동력, 제조경비를 재공품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의 자산으로 인정하고 있다. 가정의 주부에게도 이런 시각이 필요하다. 노동력이 들어간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 그 수고와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
직장인들처럼 주부도 각자 다른 직급과 연차를 가지고 있다. 회사는 업종이나 형태에 따라 같지는 않지만, 상기업과 제조기업별로 구매와 판매의 사이클이 있고, 과업과 주기의 룰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직급과 연차, 경력에 따라 비교대상군이 있고 그에 따른 평가가 이뤄진다. 그러나 주부는 각 가정마다의 라이프스타일이 모두 다르고, 일의 능력치나 시간을 대하는 태도, 가족관계 등 복잡한 요소가 너무 많아서 같은 기준상에 두고 직급이나 연차를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업주부라면 집안일을 다해야지 혹은 잘 해내야지라는 고정관념이 만연해 있다.
사람마다 직무적성이 다르듯이, 주부직도 더 잘 맞고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소도 요리도 뚝딱뚝딱 쉽고 즐겁게 하는 베테랑 주부들을 보며, 신입시절 나는 크게 좌절도 하고 나의 무능력함에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랬었다. 나는 여전히 주부직이 어렵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내 가정에 애착을 갖고, 조율해 가는 과정에서 주부의 시간을 보내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을 더 현명하게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