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심] 살림에 대해 다시 정의해 봅시다

역할분담과 가족구성원 간의 조율

by 조온
대표이사가 실무까지 다하는 기업이 있다고?

살림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일은 무엇일까? 많은 경우,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청소는 하려면 끝도 없고, 설거지나 빨래 등의 일도 시간이 쓰이는 일이지만, 정해진 것을 생각 없이 하면 되는 단순업무에 속한다. 그러나 실제로 살림은 훨씬 더 다양한 능력을 요구하는 일임을 배우는 중이다.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 시절에는 더 단순했던 가정의 모습이, 아이의 탄생과 함께 크게 요동치고 변화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씻을 시간도 잠잘 시간도 부족했던 시기를 지나고 나니, 비로소 살림의 규모와 형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부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하나씩 맡아서 하다 보니 소리소문 없이 너무 많은 일을 떠맡게 되었고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졌다.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도종환, <담쟁이>(1989)


회사와 비교해 보는 살림의 종류

1. 가계부를 쓰며, 매월의 살림규모를 정해서, 가계의 자산과 부채를 관리하는 일 (기업의 재무/회계팀)

2. 집안의 가구를 배치하고, 물건을 정리 정돈하는 일 (기업의 총무팀)

3. 필요한 물품을 비교하고 구매하는 일 (기업의 구매팀)

4. 매일 가족구성원에 맞는 메뉴를 짜고, 냉장고의 재료를 관리하고, 요리하는 일 (기업의 생산팀)

5. 루틴 한 청소, 빨래 등의 업무

6. 집안 살림, 육아와 관련된 그 외 모든 일의 결정과 일정관리 (대표이사)


집안일 업무분장

살림은 회사로 치면, 제품 제조 사이클의 처음부터 끝까지, 즉 기획·구매·생산·품질·재무·관리를 모두 망라하여 우리 집 살림을 총괄하는 업무이다. 살림은 빨래, 청소, 설거지 같은 단편적인 집안일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필요한 모든 물품을 선택해서 구매하고 배치하는 일, 업무를 배정하고, 그 일정을 관리하며, 가정 경제상황에 맞춰 취미, 휴가부터 모든 규모와 스케줄을 관리하는 전반적인 일을 포함한다.


단순업무 중 빨래, 청소 등의 눈에 보이는 일만을 기준으로 집안일을 나누기에는 불합리한 경우가 많다. 외부에서 돈을 벌어오는 영업팀의 일을 한 사람이 전담한다고 해도, 나머지 살림을 한 사람이 모두 감당하기에는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다. 특히나 육아까지 더해진다면, 업무분장에 대한 가족구성원 간의 원만한 합의가 필요하다.




가정의 역할분담도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고려 말기의 성리학자 정몽주는 왕을 중심으로 한 시대가 끝나감에도 명분을 따라 왕을 섬겨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결국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무인세력과 신진사대부에 의해 새로운 나라 조선이 건국된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주부의 일들이 지금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가족에서 자연스레 육아와 살림을 나눠하던 과거와, 부모가 온전히 육아와 생활을 담당하고 가정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현재는 다를 수도 있으므로 우리 가정에 맞는 새로운 모습으로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살림은 단순히 한 사람의 헌신으로만 유지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족구성원들이 함께 사는 공간에서 서로의 배려와 협력이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팀의 일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함께 책임질 때 비로소 ‘가정’이라는 작은 조직이 건강하게 운영된다. 대표이사가 실무까지 다 떠맡는 기업이 오래가기 어려운 것처럼, 한 사람에게만 살림을 전담시키는 가정 또한 지속가능하지 않다. 살림은 함께 꾸려가는 공동의 경영이며, 그 안에서 가족은 서로의 동료가 되어야 한다. 완벽한 주부가 되기보다, 함께 사는 사람으로서 서로의 일을 이해하고 나누는 것, 그것이 진짜 살림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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