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이 이긴다

<귀멸의 칼날> 속 탄지로에게 배우는 다정함

by 시화

귀멸의 칼날을 아시나요?


평생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보지 않았던 제가

요즘 핫한, 진격의 거인이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푹 빠진 애니메이션인데요.

혈귀를 물리치러 다니는 귀살대의 이야기을 담은,

선과 악이 뚜렷이 대비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 애니메이션입니다.


절대악인줄 알았던 상대편이 알고 보니 우리네의 상황과 닮아 있고,

마냥 당하기만 했던 피해자의 입장인 줄 알았던 우리가 알고 보니 세계의 공공의 적,

섬의 악마로 여겨져 왔다는 사실을 알고

선과 악의 경계의 모호성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으로 재미를 가중시킨 진격의 거인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지요.


무조건 선(귀살대)이 이기길 바라고,

악(혈귀)이 벌받기를 바라는

다소 1차원적인 클리셰 범벅의 애니메이션에

제가 푹 빠진 이유는,

주인공 탄지로 때문입니다.


정확히는 탄지로의 다정함 때문이랄까요.




주인공인 카마도 탄지로는

혈귀의 습격으로 여동생 네즈코를 제외한 모든 가족을 잃고

혈귀로 변해버린 네즈코를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귀살대에 들어와 혈귀들의 수장인 키부츠지 무잔을 처치하고자 하는 인물입니다.


탄지로는 원래부터 가족을 지키고 보살피던 큰아들로,

동생들을 챙기고, 힘든 일을 대신하는 습관이 몸에 배여

사람을 대할 때 본능적으로 따듯하고 사려깊게 행동합니다.


그는 상대방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지적하기보다,

좋은 점을 인정하고 믿어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응원하지요.

귀살대가 되기 위한 관문을 넘었지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전투가 두려워 참전하지 않는 동료에게는

너의 마음은 내가 가지고 갈테니 안심하라는 말을 건넵니다.

때문에 이노스케나 젠이츠 같은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인 동료들도

탄지로의 몽글몽글한 말들 속 천천히 변해갑니다.


제가 탄지로에게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절대악인 혈귀조차 안타깝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자신과 주변인을 상처입히고, 무참히 짓밟은 혈귀를

단순한 적이 아닌, 비극 속에서 길을 잃은 존재로 바라보며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마지막이 편안하기를 바라며 손을 꼭 잡아주는 그의 모습이

요즘 사람들에게서 참 보기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민과 사랑이 참 부족한 시대임을 피부로 느끼는 요즘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방황을 바라보며

그들의 행동에서 이유를 찾고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자신들이 정한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비난하기 바쁩니다.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한 걸까요,

그들의 상황까지 이해하고 바라봐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걸까요.

스스로가 이해받지 못한다고 여겨진 경험이 축적되어

나도 누리지 못했으니 너도 이해받지 말아야 한다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냈는데 너는 왜 그러지 못했냐고 다그치는 사회 속

진정으로 자신의 과오를 회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 겁니다.

상대를 위한 조언이랍시고 던지는 날선 말 한마디가,

정말 그 사람을 향해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때로 그 말들은 종종 상대방에 대한 나의 답답함과 분노를 해소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기도 하니까요.



어두운 마음을 물리치는 것은 다정한 말 한 마디입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이 강력한 비바람이 아닌 따스한 햇살 한 줄기였듯

진정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돌이키게 하는 것은 날선 조언이 아닌, 다정한 말입니다.

'논리'로 무장한 냉소적인 문장들,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지 않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문장들은

마음이라는 벽 앞에서 종종 가로막히곤 합니다.

그 말이 논리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설득시킬 타당한 이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때때로 다정함은 유약함의 대명사가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다정함이라는 것이, 나의 틈을 보이고 연약한 부분을 내비치는 통로로 쓰여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자리잡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탄지로의 다정함과 연민은 감정으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탄지로의 연민은 강한 의지와 희생을 수반합니다.

결투 중 적에 대한 연민은 '느끼기만 하는 감정'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두지 않으려는 결심의 목적과

전투 의지의 방향을 부여하는 결의로 변화됩니다.


힘겨운 전투의 끝에서조차, 분노와 경계로 적을 쓰러트리는 것이 아닌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하며

몸은 한계치에 다다랐음에도, 마음은 끝까지 상대방을 향해 있는 모습을 통해

다정함은 결코 유약하지 않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책임이자 결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정함은 마음의 근육 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내가 힘들어도, 상대가 원망스럽거나 미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고 감싸겠다는 결심과 다짐이 쌓여 만들어지는,

오랜 단련이 필요한 그런 것이요.


그런 단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힘들어도 계속해서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다정함이 이길 테니까요.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