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제물로 드려 빚어낸 극치, <국보>

<국보(KOKUHO, 2025)> 감상평

by 시화

어제, 극장에서 <국보>를 보았다.

넓은 영화관에는 나 홀로였다.

주인공의 예술적인 삶과 장엄한 음악에 둘러싸인 세 시간동안 나는 깊은 충만함을 느꼈다.

<국보>는 진정한 예술인으로 살고자 하는 이는 삶에 어떤 각오를 바쳐야 하는지에 관해 말한다.




이 영화는, 예술에 생애를 바쳐 궁극을 이루어낸 이들을 보여준다.

키쿠오와 슌스케, 한지로와 만기쿠에게 예술이란 삶보다 중한 것이었고, 그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심장이 아닌 아름다움의 극치를 추구하는 행위였다.


꽃을 잡고 글을 쓰는 내게,

국보를 보며 느껴진 감정은 처연함과 공포였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모두 버리고 극에 몰입하여 아름다움의 최전선에서 경지에 오르기를 애쓰는 키쿠오의 삶의 처연함과,

예인의 극치에 오르려면 감히 어떤 각오를 가져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공포에 몸서리치고 그들의 결연한 모습과 나의 약한 의지를 비교하며 스스로에게 실망하면서도

최고의 무대 안에서 소름돋게 아름다운 키쿠오의 모습을 보며 총과 칼보다 강한 것이 예술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야 하는 이유를 되새겼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국보>는 일본의 가부키를 소재로 한 영화다.

키쿠오와 슌스케, 두 주인공은 가부키에서의 온나카타다. 온나가타란 남배우가 여자 역할을 하는 것으로

키쿠오와 슌스케는 완벽한 온나가타를 위해 뼈에 감각을 새기며 남자로서의 몸짓을 지운다.


가부키의 온나카타는 흰 분으로 피부 본연의 색을 가리고, 붉은 눈장식을 칠해 하나의 인형이 된다.

이빨이 누래 보일 정도로 하얗게 덧칠한 피부와 비정상적으로 가느다란 눈썹. 왠지 모르게 섬찟한 붉은 눈과 원래의 것보다 작게 그린 옹졸한 입술까지.

가부키 극 중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인간답지 않다.

그렇기에 남배우여도 괜찮고, 늙어도, 주름살이 자글자글해도 괜찮은 것이다. 인간이 아닌 인형이기에.

나의 개성과 인간성을 모두 지우고 하나의 인형으로, 도구로 만들어진 예술의 절정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다.


키쿠오와 슌스케는 극중에서 대립하는 두 명의 온나가타다.

슌스케는 키쿠오보다 인간적이었다. 스타성과 대중성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가부키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무대에서의 자신뿐만 아닌 삶에서의 모습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키쿠오에게는 예술이 전부였다.

든든한 혈통이 뒷받침되어주지 않으니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실력으로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아름다움을 쫓는 열망 속 그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지운다.


그리고 마침내, 국보가 된다.


인터뷰 자리에서 키쿠오의 딸은 묻는다.

"당신이 무대에서 박수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한 번도 아버지라 생각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무대를 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어요."


그는 악마와 거래를 했다.

삶을 제물로 드려 아름다움의 극치를 빚어낸 것이다.




2.

야쿠자 집안에서 태어난 키쿠오와 가부키 명문가에서 태어난 슌스케.

둘의 뿌리는 다르지만 줄기는 동일한 꿈으로 뻗어나가고, 끊임없는 연마를 통해 무대에 오른다.


둘은 나란히 서 있는 듯 했으나, 키쿠오는 슌스케의 피를 열망한다.

슌스케의 아버지, 한지로의 대역으로 나선 <쇼네스키 동반 자살> 무대 전 키쿠오는 극심한 불안을 느낀다. 키쿠오는 슌스케에게 네 피를 컵에 담아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다 한다. 자신에게는 지켜줄 피가 없다는 사실이 그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 사실이 그의 탁월한 재능을 꽃피우게 했다.


가족 세습 문화가 짙은 가부키에서 슌스케는 3대 한지로가 될 예정이었으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키쿠오는 뜻하지 않게 그의 자리를 위협해 온다. <쇼네스키 동반 자살> 에서 극에 완전히 몰입한 키쿠오를 보며 슌스케는 자신은 할 수 없는 완벽한 연기에 대한 질투심과 부러움,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슬픔을 느낀다. 결국 그는 눈물을 흘리며 키쿠오의 연인과 함께 도망친다.



결국 키쿠오는 슌스케 대신 한지로의 이름을 물려받는다. 계승받은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무대에서, 한지로는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그토록 원했던 피를 건네주는 과정은 이토록 잔인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한지로의 죽음 이후 돌봐줄 배후가 없어진 키쿠오는 가부키 세계에서 파문이 일며 몰락한다.

키쿠오의 무대는 매우 작아져 이제 그는 선술집이나 식당에서 공연을 한다. 진짜 무대를 보고 싶어서 온 관객들이 아닌 그저 신기한 오락거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앞에서 수치와 모욕을 당하며, 천재는 시들어 간다. 한편 슌스케는 10년의 방황을 끝내고 다시 가부키의 세계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결국 이 세계는 피가 전부였어. 재능 따위 무슨 상관이야, 결국 핏줄만 남는데" 키쿠오는 절망한다.


시간이 흘러 둘은 재회하고, 뛰어난 콤비로 이름을 날린다.

그러나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슌스케에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재앙이 닥친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당뇨가 그에게도 온 것이다. 결국 그는 왼다리를 절단한다.

태어날 때부터 그를 지켜온 피가, 이제 그를 예술적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피는 어떤 면에서 공평하다. 좋은 것만 받을 수는 없는 것. 그를 가부키의 세계로 이끈 것도, 내친 것도 결국 피다.


키쿠오와 슌스케는 서로의 친애하는 적이다.

슌스케에게는 키쿠오에게 없는 혈통이 있고,

키쿠오에게는 슌스케에게 없는 재능이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탐하며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느낀다. 슌스케는 외다리로 그가 가부키를 떠나게 만들었던 극인 <쇼네자키 동반 자살>의 오하츠 역을 맡고 싶다 한다. 그리고 키쿠오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 여성의 온나카타가 아닌 오하츠의 연인인 남성 역을 맡는다. 슌스키는 온전치 못한 몸으로 선 무대에서 흐트러진 머리칼, 눈물로 얼룩진 얼굴과 넘어져 지저분한 옷매무새였지만, 최고의 무대를 펼친다.

키쿠오를 보며 느꼈던 선망과 자신은 진짜 배우가 아니라는 절망을 모두 뛰어넘은 그는

마침내 자신이 바라던 이상에 다다른다.




3.

예술인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나는 영화를 보며 경탄할 만한 아름다움은 억겁의 시간을 들여 쌓아올려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다.

당장 SNS만 열어도,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하고 예쁜 사진과 세대의 흐름을 잘 파악한 글들이 있다.

그것들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 속 감춰둔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와

자신이 수준 높아 보이는 글에 공감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지적 허영을 자극시켜 인기를 얻는다.

그리고 빠르게 잊힌다.


간편한 예술이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법한 요소들을 적절히 버무려 내놓으면

대부분의 소비자는 열광하고, 인기는 짧은 순간 빛났다가 금세 사라진다.

한정된 시간 속 다양한 장르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할 수 있으나,


<국보>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그런 종류가 아니다.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 경탄을 자아낸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겹 한 겹 쌓아올려 만들어진 거대한 탑 앞에서 인간은 숨을 죽이고 그저 감탄한다.

키쿠오와 슌스케가 좇던 아름다움은 유행이나 허영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삶보다 중한 예술을 사랑하여 다다른 극점이었다.

같은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해 최고의 몸짓을 보이고자 하는 고행의 과정을 거쳐야만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자명한 사실 속, 너는 수만번의 담금질을 견딜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키쿠오는 인간 국보 만기쿠의 무대를 보고, 반짝이는 별가루의 환영을 느낀다.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경지. 완벽하다 말할 수 있는 무대에서의 그 풍경은 키쿠오에게 삶의 목표가 된다.

마침내 국보의 자리에 오르고, <백로 아가씨>를 공연하던 키쿠오는 마지막 순간 쏟아져 내리는 별가루를 보고 나지막히 속삭인다.


"정말 아름답구나"


죽을 때까지 춤을 추던 백로 아가씨처럼,

그들은 한 순간의 인기나 명성 대신 평생에 걸쳐 아름다움을 쫓은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그들의 삶을 광기라 하겠지만,

예술이라는 세계에서 광기와 아름다움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놓여 있다.

그 경계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서 있으려 했던 사람들,

그것이 바로 <국보> 속 예인들이었다.



Luminance - Marihiko hara, Satoru Iguchi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