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장
장학금 면접을 보았던 시기,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 수 있었어요. 해외 유학을 떠나와서 굳이 자국민을 만나면서 외국어를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허무하게 만들 수 없었죠. 처음부터 한국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한국사람이 제일 적은 어학원으로 유학을 온 상태였어요. 그런데 정작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뼛속까지 한국 정서가 담겨있던 터라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외톨이로 만들었기에 같은 반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이었던 누나와 반년이 되어서야 겨우 식사를 같이하면서 가까워지기 시작했죠. 외국어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려면 그 나라의 사람들과 많이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유학의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지만 굳이 한국 사람들과의 연을 배척할 필요는 없겠다고 처음으로 생긴 고정관념을 깨어준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어서 당행이었어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들과 공감할 수 있는 과거의 추억들이 있고 거기서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받으면서 자칫 일본에서의 유학생활이 나름 뚜렷해져 가던 시기의 목표와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었지만 저의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좋은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막 성인이 되어 타지로 나와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대견해 보여 말을 걸고 싶었지만, 너무 자기만의 루틴과 시간이 확고해 보여 선뜻 인사를 건네기가 어려웠다고 누나를 통해 처음 들었어요. 무언가에 집중하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천천히 걸으면서, 일상 속 저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면 더 아쉬울 것 같아서 마음을 바꾸었죠. 장학금의 짐을 좀 덜어낼 수 있게 된 이후로 다시 일본 문화와 일상에 녹아들어 즐길 수 있도록 저에게 여유를 주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일본어가 아닌 돈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늘 똑같은 학업과 일상이었지만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보람과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지 못한 시기. 제가 배척해 왔던 가치관의 변화. 타지에서 한국인과의 새로운 인연이 생기면서 조금 더 스스로 성숙해질 수 있었던 시기였죠. 문화의 차이, 정서의 차이를 충분히 극복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스스로 착각하고 있었어요. 20년 동안 살아왔던 한국과 이제 막 반년 흐른 일본에서의 시간.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그들 사이에 섞여있으나 아직까지 완전히 융화되지 못하여 한국의 것도, 일본의 것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첫 경제적 독립과 낯선 언어와 대학 입시까지 많은 고민거리들과 안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갓 스무 살이 된 저는 어느새 스스로도 인지한 지 못한 채 혼자서 견딜 수 있을 거라는 무거운 짐들로 힘겨워하고 있었어요.
앞으로의 유학생활, 나아가서 더 나은, 더 나답게 인생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혼란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의 방향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마음 기댈 곳을 만들면서 배워갔습니다. 처음으로 내딛는 차갑고 냉혹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많이 서투르고 실수 투성이지만 저를 기특하게 봐주고 혼자 표류되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강압적이지 않게 제 옆에서 있어주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가기 시작했죠. 유학 생활의 정의는 언어와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라고 여겨왔던 저에게 새로운 관계들은 답답했던 저의 시간들에서 시원한 파도를 일으켰어요. 서로 기대면 의지하며 사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관계의 형태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