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장
같은 반이 된 지 반년이 지난 후에야 가까워진 누나 덕분에 같은 문화 속에서 비슷한 경험과 추억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혼자서 헤쳐나갈 때보다 좀 덜 흔들리는 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갓 성인이 되어 막 시작한 경제 활동,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그것도 모국어가 아닌 타 언어로 소통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었죠. 그리고 단기간에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 착각이 일본 생활을 하면서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었어요. 겁 없이 도전한 유학 생활에서 냉정한 현실과 평가를 하는 사회를 타지에서 혼자 적응하려니 아무리 생활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죠.
언제부턴가 국적이 한국이면 기피하기 시작했었고 유학까지 와서 한국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 언어와 사회 시스템을 배우러 온 타국 생활에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으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위험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이 익숙해져가기도 했고, 처절한 현실에 부딪히기 시작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중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나 필요하고 세상은 결국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가는 만큼 저에게도 사람을 대하는 자세,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인생 선배들이 등장했습니다. 마침 유학 생활에서의 첫 권태기에 나타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었죠.
준비 없이 맞이한 인생 첫 권태기이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저에게 어학교에서 만난 분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저도 조금씩 성숙해져 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 지금 저의 나이보다 어린 나이었던 형, 누나들이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더 대단하게 느낍니다. 지금도 힘들 때면 그때의 기억들은 나를 추억하게 만들고 다시 자세를 고쳐 잡을 수 있게 해주고 있죠. 갓 20살이 되어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에서 애쓰는 저의 모습을 보고 마음 써주셨던 인생의 선배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저에겐 큰 성장의 발판이 되어주었어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과 지내온 환경이 다르니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고 다름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인간관계에서의 스트레스와 부담을 조금씩 덜 수 있었죠. 후에는 같은 반 누나의 룸메이트였던 다른 학교를 다니던 누나를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처음으로 많은 나이차이가 나는 형과 누나들이 아닌 제 또래의 사람을 만나면서 또 다른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