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수분을 머금은 종피가 부들부들해지면서 파열되고 유약해진 피부를 뚫고 싹이 나올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저는 금융 마케팅팀의 팀장이에요”
라운지를 빠르게 뛰어오던 킬힐에 어깨 뽕이 큰 가죽 자켓을 입은 여자를 보며 ‘기빨려..’라고
홀로 생각했는데 상사라니.
누군가는 이번 챕터도 쉽지만은 않겠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엔 달랐다. 시작에 대한 준비가 끝났기 때문이다.
정규직이라는 수식어 하나는 시작에 대한 마침표를 넘어 흙을 향한 발돋움이자
하늘을 향한 기지개였기 때문이다.
봄은 어디로 가는가
천재와 바보의 차이는 단 1%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사막에서 목말라 죽는 사람과 자신이 목마른 줄도 모르고 죽는 사람의 차이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유형의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천재든 바보든 일종의 고집, 흔들리지 않는 결단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한다. 하지만 한 사람, 즉 천재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으며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반면 다른 사람, 즉 바보는 자기가 멸망으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 길로 똑바로 나아갈 뿐이다.
- 앙드레 지드, 위폐범들 中 -
새싹이 발아하기 직전 씨앗(종자)은 무슨 마음일까.
누군가는 문학 수업에서 읽던 원문을 곱씹었다.
같이 수업을 듣던 복학생 언니는 “이게 뭔 소리냐? 시험 포기다” 라는 한탄을 했지만
누군가는 저 문장 마디마디가 아팠다.
마침표가 손가락이 되어 자신을 꾸짖으며 툭툭 어깨를 밀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는 어렸을 때부터 그 1%를 천부적으로 타고났다. 뭔가 잘못된 방향이라는 직감.
이대론 안 된다는 느낌. 그러면 누군가는 천재일까? 슬프게도 저 원문에 등장하지 않은 존재가 하나 더 있다. 괴로운 바보. 누군가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잘못된 방향인 걸 알고 파멸로 향하는 걸 알지만 과감히 핸들을 돌릴 힘이 없는 존재.
정신없이 다들 바쁘게 프로모션 시즌을 준비하는 것을 보며,
어설픈 가이드를 주며 눈치껏 이 분위기에 동조하길 강요하는 팀장의 태도를 보며
누군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잘못이 어디서부터 인지, 자신의 어떤 결정이
결국 이 방향을 향했는지는 명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당장 회식이란 관습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추워지던 입사 후 겨울을 몇 번 보내니 또다시 봄이 되었다.
모두가 추수를 기다릴 때 누구는 씨앗으로 남아있기도, 누구는 이제 막 종피를 힘겹게 뜯어내기도 한다.
아마 새싹을 내보낸 후 종자는 당황할지도 모른다. 이젠 또 꽃을 피우라고?
하물며 이미 꽃을 피워낸 종자는 나무 밑동을 보며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떤 종자는 더듬더듬 새싹을 뻗어 무리 지을 다른 종자를 찾기도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밝았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는 회사 라운지를 내려다보면서 누군가는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봄을 품은 씨앗이란 걸 잊으면 안 된다. 남들이 정하는 시기에 애써 새싹을 내보내지 않아도
스스로 생장(生長)하고 뿌리를 내리면 그 자체로 봄이다.
뿌리를 잘못 내리면 어떡하냐고? 글쎄 봄은 또 오기 마련이다.
결국 썩어버린 뿌리도 파멸에 이른 새싹도 다시 피워내면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봄은 고통스럽지만, 무한히 오는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