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 그 이후, 나의 작은 형제에게
이젠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또또와의 첫 만남
또또는 외동으로 태어난 나의 첫 번째 형제였다.
저녁이 되면 나는 유독 심심했다. 엄마랑 놀아도 아빠랑 놀아도 풀리지 않는 외동의 외로움일까
저녁엔 자기 싫다고 칭얼대곤 했고 학교가 끝나면 항상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입원이 잦았던 나의 7살 중 어느 하루, 엄마아빠는 어린이날 선물로 귀여운 강아지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충무로 한 펫샵에 수많은 하얀 강아지들이 짖던 게 기억 한편에 있다.(요즘은 유기견 입양이 기본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펫샵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었다. 지금은 절대 생각하지 않을 방법이다.)
그중 다가오지도 짖지도 않고 구석에 떨던 강아지, 우리 가족이 기억하는 또또의 첫 모습이다.
그 작고 겁먹은 아이는 집에서 키우던 몰티즈 암컷이 낳았기 때문에 엄마 젖을 먹고 자랐고, 홍역을 앓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빨은 이미 절반이나 녹고 썩은 상태였다.)
모든 면역 주사를 맞고 바들바들 떨던 작은 강아지를 안고 차에 타던 날 수많은 이름을 헤치고 그 강아지는 또또로 불리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기 강아지들은 7일 정도 건드리면 안 된다고 했다. 주인이라는 인식이 없어서 물 수도 있다고.
7살의 나는 그 작고 귀엽고 보송한 아이를 눈으로만 보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 하얀 털 뭉치가 쫑쫑거리며 숨어 다니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방에서 몰래 ‘또또야’ 하고 부르며 침대 아래 숨은 아이에게 계속 팔을 내밀었다.
결국 성질이 난 또또는 소리도 내지 않고 빠르게 내 팔을 물어뜯었다. 검게 멍들고 당황했지만 차마 또또를 건드리다가 물렸다고 말할 수 없어 숨어 있다가 들킨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또또와 나의 악연 아닌 악연이 시작됐다.
나는 또또에게 좋은 주인이 아니었고
또또는 나에게 평생의 슬픔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는 또또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계속 껴안고 장난치며 뛰어노는 거 말곤,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또또는 우리 가족이 된 이후에 날 문 적이 없었다. 침대 아래에서 단지 손을 내민 것보다 몇백 배는 내가 성가시게 굴었음에도 마치 어린 동생을 이해하듯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 또또는 더 이상 나와 놀 수 없는 노인이 되었다. 학업 때문에 바빠서 또또와 예전처럼 놀지 못한 지 이미 몇 해나 지났었다. 그 시간에 또또는 나의 제곱으로 나이를 먹고 있었다. 또또는 어릴 때 앓던 홍역의 부작용으로 10살이 되던 해에 모든 이빨이 녹았었다. 병원에서도 이를 전부 다 빼는 거 밖엔 손 쓸 수가 없다고 했다. 너무 오래 앓아온 터였다.
사람도 이빨이 아프면 가장 노화가 빠르게 진행된다고 하던데 그 때문일까? 또또는 눈도 빠르게 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살이 빠지고 치매가 왔다.
나는 또또를 보살필 여력이 없다는 변명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모르겠단 변명도 안 먹히는 나이였다.
그럼에도 위액을 토하고 방 한쪽을 뱅뱅 돌던 또또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해줘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이렇게 변해버린 거라고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또또가 죽고 매일 이 죄책감에 시달렸다.
슬프지만 또또는 외형도 본질도 예전의 또또가 아니었다. 하얗게 눈동자 색은 바랬고 입에선 항상 악취가 났다. 이빨이 녹으며 잇몸과 볼살에도 염증이 생겨 또또의 하얗고 동그란 얼굴은 긴 염소처럼 변했다. 등은 구부정한 골룸처럼 우둘투둘 뼈가 나왔고 피부는 검버섯이 잔뜩 덮고 있었다. 세월에 잡아먹힌 생명체 하나가 항상 방 한쪽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지친 또또는 예민해져서 항상 으르렁 거리곤 했다. 나에게 점차 또또의 지친 세월은 익숙해졌다.
개강 후 2주가 되었을 무렵 11시 수업을 위해 눈을 뜬 나는 여느 날과 같이 거실로 나왔다.
또또는 홀로 보이지도 않는 눈을 떠서 베란다를 보고 있었다. 항상 누워있던 또또가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있는 것을 난 왜 몰랐을까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또또가 이상하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또또는 가느다란 팔로 간신히 바닥을 지탱하고 있었다.
“또또야” 엄마가 부르자마자
걷지도 못하는 또또가 급히 펜스 쪽으로 다가왔다.
(치매가 걸린 또또가 여기저기 부딪히고 뱅뱅 도는 탓에 우린 거실에 또또 전용 펜스를 쳐두고 지냈었다.)
엄마가 또또를 안아 올리자 또또는 몸은 바들바들 떨기시작했다. 치매가 걸린 이후 또또는 경기를 일으키며 몸을 떨곤 했는데 이번엔 무언가 달랐다.
정말 껄떡 껄떡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거실에 울렸기 때문이다. 너무나 괴롭게 숨을 넘기는 또또를 보며
체감을 했다. 우린 이제 또또를 보내주어야 했다.
또또도 우리를 떠나기 싫었을까 아니면
이 고통만 가득했던 삶을 얼른 마무리하고 싶었을까
시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끈과 같은데 그 시간을 싹둑 썰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매듭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단 하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또또의 숨이 한 번에 멎었으면 그도 우리도 덜 힘들었을까. 또또는 긴 시간 넘어갈 듯 말 듯한 호흡으로 우리 품에 안겨있었다.
멈출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무참히 사라지는 또또의 숨을 기다리는 것은 고문이었다.
또또는 정말 희미한 숨을 남기고
엄마 품에서 잠들었다. 너무 희미해서
그다음 숨이 또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숨을 목격하는 것은 일종의 선언 같았다.
우리는 또또의 장례를 치르기 전에 혹여나 따뜻한 봄날씨에 상할까 베란다 쿠션에 또또를 눕혀뒀다.
그리고 나는 동네의 꽃시장에서 프리지아를 잔뜩 사서 또또 위에 덮어줬다. 봄에 핀 꽃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꽃말을 가졌기 때문이다.
저녁엔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또또가 누운 베란다와
이어진 바닥에서 엄마와 잤다. 또또와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또또를 화장하고 출발하기 전에 차 주위를 날아다니는 흰나비를, 집에 돌아가는 길엔 무지개를 봤다.
그 이후 또또는 내 꿈에 한 번도 나와주질 않았다.
또또의 죽음 이후 나에게 불행이 닥치면
또또에게 잘해주지 못한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19년도부터 시력도 많이 안 좋아졌고 햇빛에 갑자기 눈이 약해졌다. 그럴 때면 난 하얗게 빛을 잃던 또또의 눈동자를 떠올리고 미안해졌다.
점차 멀어지던 세상에 그 작은 아이는 얼마나 겁이
났을지 마음 깊이 알 수 있었다. 또또가 나에게 저주를 내렸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착한 또또에겐 실례일 테니. 다만 내 마음의 부채는 사라지지 않는다. 또또에게 난 충분한 사랑을 줬을까.
나는 또또가 떠나고도 한동안 평소 습관처럼 또또를 부르거나 흥얼거리며 또또 이름을 넣어서 노래를 불렀다.부르고 나서 또또의 부재를 깨달아도, 뒤를 돌면 또또는 그대로 있을 것 같았다.
16년 세월의 부피와 단 2주 부재의 부피는 동일했다. 부재와 공허는 그 공간을 꽉 채우고도 넘쳐흘렀다.
결국 내 부족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또또는 또 다른 사랑을 알려주고 갔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사랑을 알려줄 수 있는 존재는 강아지들이 아닐까 싶다. 강아지들은 함께 지낸 세월 이후에도 인간이 더 나은 사랑을 베풀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노견이란 이유로 입양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입양해서 마지막길은 행복할 수 있게 돕고 싶단 꿈도 생겼다.
나의 작은 형제, 또또의 슬프고도 아팠던 지난 세월에 이 글을 바친다.
PS: 이번 글을 쓰고 또또에 대한 슬픔을 좀 덜어내려고 했다. 글을 마치며, 아직 이르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