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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그배나무 Dec 11. 2021

한의학과 의학의 접점을 찾다

본초에 대한 약리학적 해석


처방을 구성하는 개별 약재들을 한방에서는 본초(本草)라 한다. 

예를 들어 사물탕의 당귀, 작약, 숙지황, 천궁이 그렇다. 약학에서는 생약이라 하는데, 성분 중심으로 효능 관계를 실험적으로 규명한다. 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천연물이라 한다. 분석기기를 통해 약재의 구조를 파악하는데, 지금은 생약학에서 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본초는 경우에 따라 한약, 약재, 약물 등으로 불리는데, 약학과 소통을 위해서는 약물로 불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본초에는 기미(氣味)라든가 귀경(歸經)이 주치효능(主治效能)과 직결되어 있기에 그 자체로 이미 생리학적, 의학적 개념까지 담고 있다. 이 점이 성분 위주로 설명하는 생약학과 다르다. 

다만 생약학은 성분을 규명하고 세포, 동물 실험을 통해 인체의 생리활성을 알아내고 의학적 치료 가능성을 

계속 발굴해낸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본초마다 고유의 기미가 있다

인체에 들어가면  오장육부의 연결망인 경락을 통해 주치효능을 나타낸다(귀경歸經). 

기(氣)에는 4가지 서로 다른 성질로 寒(찬 성질, 예: 황백), 熱(뜨거운 성질, 예: 부자), 溫(따뜻한 성질, 예: 계지), 凉(서늘한 성질, 예: 시호)이 있다. 


미(味)에는 6가지가 있는데, 酸(신 맛), 苦(쓴 맛), 甘(단 맛), 辛(매운맛), 鹹(짠맛), 淡(담담한 맛)이다. 

이러한 기미는 인체에 들어가서 미(味)는 혀를 통해 맛으로 느껴지고, 기(氣)는 몸이 따뜻해지거나 차가워지는 생리적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이러한 작용은 인체 내 기운의 연결망인 경락을 통해 본초의 약성에 대응되는 장부(臟腑)에 작용한다.


본초의 기미는 인체에 들어가면 승강부침(升降浮沈)의 작용을 한다

본초는  체내에서 작용하는 방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몸의 위로 향하는 작용을 승(升), 아래로 향하는 작용을 강(降), 위와 밖으로 향하는 작용을 부(浮), 속과 아래로 향하는 작용을 침(沈)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맛(味)이 맵거나 달거나 싱겁고 성질(氣)이 덥거나 따뜻한  본초인 마황(麻黃) · 계지(桂枝) · 

황기(黃耆) 등은 승부(升浮) 작용을 한다. 한편 맛이 쓰고 짜며 시고 성질이 차거나 서늘한 본초인 대황(大黃) · 망초(芒硝) · 황백(黃柏) 등은 침강(沈降) 작용을 한다. 한방 임상에서는 한약의 승강부침을 참고하여 약을 쓴다. 즉 병이 상반신이나 표(表)에 있을 때에는 승(升) 또는 부(浮)하는 작용이 있는 한약을 쓰고 하반신이나 

리(裏)에 있을 때는 침(沈) 또는 강(降)하는 작용이 있는 한약을 써서 치료한다.


한방에서 본초는 체내 어떤 작용을 한다는 약리적 속성이 이미 기미와 귀경(歸經)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귀경론(歸經論)은 약물작용이 사기오미, 승강부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한계를 보완 발전시킨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한, 열, 허, 실의 증상만으로 나누었을 때는 같지만, 각 장부와 경락에 쓰는 약은 같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떤 약물이 비(脾)를 따뜻하게 한다고 해서 신(腎)도 덮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肝)을 식히는 약물이 심(心)도 식힐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승강부침 또한 그러하다. 위의 기를 가라앉히는 약물이 반드시 폐기(肺氣)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미(性味)를 보자. 

마황과 정향은 모두 신온(辛溫)한 약물이지만 마황은 표(表)에 작용하여 발산(發散)을 하는데 반해 정향은 속을 덮히는 작용은 한다. 약성은 같다할지라도 쓰임새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약의 작용이 모두 일정한 적용범위와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귀경론(歸經論)은 경락론(經絡論)과 장부론(臟腑論)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병증을 치료하는지를 밝혀준다. 

폐경(肺經)에 병이 있으면 숨이 가쁜 증상과 기침이 나타나고, 길경(桔梗)과 행인(杏仁)은 숨이 가쁘고 기침, 가슴이 답답한 증세를 치료하므로 폐경에 작용하는 것이다. 창출(蒼朮)은 습(濕)한 것을 말려서 비(脾)를 튼튼하게 하는데, 비경(脾經)과 위경(胃經)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방과 양방의 차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약학에서 볼 때 주요 성분(lead compound)이 작용하는 것이지만 한의학에서 보면 

본초는 비단 한 가지 성분뿐만 아니라 복합성분이 작용한다는 면에서 약학과 차이가 있다. 

더구나 처방에는 여러 가지 약재가 같이 들어있기에 수십수백 가지의 성분들이 팀플레이를 한다는 면에서 단일 경로(single pathway)로 작용하는 양약과 다른 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본초는 기운의 연결망을 따라 작용하기에 국소적인 장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연결망을 따라 광범위하게 작용하는 점 또한 양약과 다르다. 

예를 들어 腎에 작용하는 본초는 비단 콩팥뿐만 아니라 腎의  에너지적 연결망인 생식기, 허리나 무릎 등에도 작용한다. 따라서 腎에 작용하는 산수유가 빈뇨 같은 비뇨기 질환뿐만 아니라 요통, 슬통 같은 근골격계 질환에도 응용되는 근거인 것이다. 이것이 한방의 위력이자 양방과의 차이성이다.



본초의 약리: 한약의 양방적 해석

본초는 약성은 의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온해표약(辛溫解表藥)을 보자. 이 약의 기미(氣味)는 신온(辛溫), 즉 매운맛이 나면서 따뜻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약성은 해표(解表)이다. 즉 울체된 기표(肌表)를 풀어헤친다는 것으로 피부에 서 땀을 내어 표(表)에 침입한 풍한사(風寒邪)를 없애는 약이라는 뜻이다. 


양방 약리학적으로 보자. 

피부에서 땀을 낸다는 것은 피부 쪽 혈관으로 혈액량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피부 쪽의 표재성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량을 증가시키거나 심박출량을 증가시키는 본초가 해당한다는 것이다(예: 부자, 육계).  이러한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구체적인 성분이 각각의 본초에 함유되어 있다. 


육계의 cinnamaldehyde와 부자의 higenamine은 심박출량을 증가시켜 혈액량을 늘리게 한다.

혈액은 심장이 작동해서 혈관을 통해 이동하기에 심혈관계가 참여한다. 혈액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말초혈관이 이완되어야 한다. 심장의 좌심실근이 수축하기 위해서는 전기적 신호가 심근에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에 근육계와 신경계가 참여한다. 결국 본초가 지닌 기미는 약리적 실체를 갖는 성분을 통해 인체에 생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생체 오케스트라인 것이다.


양약도 한약(천연물, 생약)에서 나온다

치료 효과가 우수한 양약은 유기화학을 통해 합성된 의약품이다. 우수한 의약품은 별안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기본이 되는 선도화합물(leading compound)에서 시작되는데, 이들은 자연에서 자란 천연물이다. 


경험적으로 검증된 천연물에서 성분을 분리 추출하여 그 구조를 파악해서 합성을 통해 대량 생산되는 것이다. 그 실례로 유명한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민간요법으로 사용했던 주목나무 열매에서 탁솔(taxol) 항암제를 개발해서 큰 수익을 올린 바 있다. 아편으로부터 추출된 morphine을 기본으로 한 합성 진통약들이 개발되었으며 cocaine의 구조에서 유도된 국소마취약인 procaine이 합성되었다. 




한의학 발전을 위한 제언

신화시대의 신농씨가 약초를 맛보고 그 성질을 알아내었다. 고대 본초서에 기재된 약초들의 기미, 귀경에는 

선현들의 혜안이 담겨 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수많은 질병이 한의학적 원리에 따른 본초로 치료된 과정을 보면 감탄스럽다. 한방의 치료가 一鍼, 二灸, 三藥 중심에 머물렀다면 양방에는 인공지능 진단 프로그램이 도입됐으며, 내시경으로 인체 내부를 생생하게 본다든가 해상도 높은 고정밀 fMRI까지 등장하였다. 진맥을 통해 임신 여부를 알아보던 한방에 비해 양방은 아예 태아의 모습을 3D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단계에 까지 이르렀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지속 발전하고 있는 양방 주도에 한방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과학과의 접목이 필요하다. 

기미, 귀경론의 한방 본초론은 생약학과 천연물화학 분야의 활성성분 분석, 세포, 동물실험을 통한 효능 연구, 한방병원을 통한 임상 데이터 축적을 통한 치료 범위의 확장과 검증, 약제학과 연계를 통해 기존 탕액 위주에서 정제, 캡슐, 주사제, 연고제 등의 제형 개발을 통해 발전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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