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꽉 막힌 수도관과 시린 심장, 협심증의 양한방 통합 이야기
오늘은 중년 이후 누구나 한 번쯤 걱정하게 되는 병, 협심증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어려운 의학 용어 대신, 우리 집 보일러 배관에 비유해서 아주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심장은 우리 몸의 엔진이자 보일러
우리 몸을 하나의 집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심장은 이 집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보일러이자, 각 방(장기)으로 영양분을 보내주는 펌프입니다. 협심증은 이 보일러에 연료(피)를 공급하는 파이프(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긴 상태입니다.
2. 서양의학이 보는 협심증: 녹슨 파이프
병원에서 말하는 협심증의 원인은 아주 명쾌합니다. 바로 파이프가 좁아진 것입니다. 수도관을 오래 쓰면 내부에 녹이 슬고 물때가 끼지요? 우리 혈관도 나이가 들고 고혈압이나 당뇨가 있으면 혈관 내벽에 기름찌꺼기(플라크)가 쌓입니다.
평소에는 물이 졸졸 흐르니까 모릅니다. 그런데 갑자기 보일러를 세게 틀어야 할 때(운동을 하거나 흥분했을 때), 좁아진 파이프가 감당을 못 해서 덜덜거리며 소음이 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느끼는 흉통입니다.
서양의학적 치료는 막힌 곳을 물리적으로 뚫어주는 데 탁월합니다. 꽉 막힌 하수구를 뚫어뻥으로 뚫거나, 아예 튼튼한 새 관(스텐트)을 끼워 넣는 방식이지요. 급한 불을 끄는 데는 이보다 확실한 방법이 없습니다.
3. 한의학이 보는 협심증: 흐르지 않는 차가운 물
그런데 병원에서 검사를 해보면 혈관은 많이 안 막혔는데도 가슴이 아프다는 분들이 계십니다. 혹은 스텐트를 넣었는데도 여전히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시고요. 여기서 한의학의 관점이 필요합니다. 한의학은 파이프의 크기(구조)도 보지만, 그 안을 흐르는 물의 상태(기능)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한의학에서는 협심증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봅니다.
첫째, 어혈(瘀血)입니다.
맑아야 할 물이 끈적끈적한 진흙탕 물이 된 것입니다. 파이프가 넓어도 진흙은 잘 흐르지 못하고 자꾸 들러붙습니다.
둘째, 기체(氣滯)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아 기운이 울체된 것인데, 비유하자면 펌프의 압력 조절 장치가 고장 나 물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꼴입니다. 홧병이 있는 분들의 가슴 통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셋째, 한응(寒凝)과 양허(陽虛)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날씨가 추우면 수도관이 얼어 터지듯, 우리 몸의 양기(따뜻한 기운)가 부족해지면 혈관이 수축해서 쪼그라듭니다. 파이프 자체는 멀쩡해도 추워서 좁아진 것이니, 억지로 넓히는 것보다 보일러실 온도를 높여주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 됩니다.
4. 양한방 통합이 정답인 이유
그렇다면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저는 양방과 한방의 지혜를 합쳐야 한다고 늘 강의합니다.
급한 상황일 때: 파이프가 꽉 막혀 집이 얼어붙게 생겼다면(급성 심근경색 위기), 당연히 서양의학의 기술로 파이프를 뚫어야 합니다. 이것은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관리와 예방일 때: 하지만 파이프만 뚫어놓고, 여전히 끈적한 진흙 물(어혈)을 흘려보내거나 보일러실이 냉골(양허)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금방 다시 막히거나 탈이 날 것입니다.
이때 한의학적 치료가 들어갑니다.
피를 맑게 해주는 약재(단삼, 천궁 등)로 진흙을 걷어내고, 심장의 양기를 북돋아 주는 처방으로 혈관이 스스로 탄력 있게 움직이도록 돕습니다.
5. 한 줄 조언
협심증은 단순히 혈관이라는 파이프 청소 문제만이 아닙니다. 내 몸이라는 집 전체의 온기와 순환의 문제입니다. 병원 약(아스피린, 스타틴 등)으로 혈관 내벽을 관리하시되, 몸이 차거나 스트레스가 많아 가슴이 답답할 때는 한의약적 도움을 받아 심장이라는 엔진의 컨디션을 올려주세요. 그것이 100세 시대의 건강한 심장 관리법입니다. 혹시 계단을 오를 때 가슴이 뻐근하거나, 찬 바람 불 때 가슴이 조이는 느낌이 든다면 주저하지 말고 전문가와 상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