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다 다른 리듬이 담겨있다
인파는 물결이다
인파로 붐비는 강남역 지하철 플랫폼.
맞은편에서 승객들이 쏟아져 나온다. 잰걸음, 큰 걸음, 총총걸음이 뒤섞인 무리가 큰 대형을 이루며 다가온다. 인파는 물결 같은 리듬이다. 인파 속의 개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바뀐다. 그들이 이루는 인파 전체의 형태는 통로를 따라 움직이는 물결 같다.
리듬이 있다. 곡선이다. 물결을 타는 인파의 물결은 곡선의 파형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인파 사이로 순간순간 확보되는 빈 틈새를 헤치며 물결치듯 빠져나간다.
한 무더기를 빠져나오는 순간,
갑자기 예측 못한 방향에서 승객이 불쑥 나타난다. 상대방을 피하느라 잠시 주춤거린다. 자칫하면 서로 어깨나 팔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듬을 타면서 빠른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어깨나 허리만 살짝 트는 리드미컬한 동작만으로도 수많은 인파를 헤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듬몸짓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걸음은 리듬이다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리듬몸짓으로 '걸음'이 있다.
걸음은 곡선의 파형으로 드러나고, 박자를 갖춘 소리로 표출된다.
걸음은 여러 가지이다.
바삐 걷는 총총걸음, 힘차게 걷는 성큼성큼 걸음, 생각하면서 걷는 느릿 걸음, 그 외에도 성큼성큼, 촐랑촐랑, 깡충깡충, 건들건들 걸음 등 다양하다.
걸음에도 저마다의 리듬이 있다. 반복되는 발소리마다 규칙성을 갖고 있어서, 음악적인 리듬감이 있기 때문이다. 걸음은 상황에 따라 리듬의 진폭이 달라진다.
빠른 걸음이나 달렸을 때의 리듬이 다르다. 방향을 전환하게 되면 동선의 궤적, 즉 진폭이 더 커져서 완만해지는 리듬감이 된다. 이 궤적은 속도에 비례해서 커진다. 따라서 맞은편에서 빨리 걸어오는 사람을 피할 때는 그만큼 그 동선을 멀리까지 내다보되, 나의 대응 리듬은 짧고 빠르게 된다. 특히 기차, 비행기 등 속도와 중량감이 큰 물체일수록 동선의 리듬은 완만하고 크지만 대처하는 리듬은 짧고 강해야 한다.
걸음마다 다른 리듬이 있다
걸음에도 저마다 다른 리듬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똑같아 보이는 걸음걸이도 유심히 보면 제 각각이다.
사람마다 몸의 중심이 틀어져 있어서 각기 다른 걸음 리듬이 나오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몸의 중심이 바르지 않으면 고개가 한쪽으로 기운다. 그러면 고개가 기울어진 방향으로 몸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 어깨가 올라간다. 몸이 중심을 잡기 위에 반대쪽 엉덩이가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몸의 한 곳이 틀어지게 된 결과, 몸 전체 중심을 잡기 위해 신체의 일부가 틀어지게 되어 발 길이가 다르게 된다. 비틀어진 골격 상태로 발을 내딛기 때문에 좌우 발바닥에 실리는 힘의 편차가 생긴다. 이에 따라 지면과의 마찰음이 다르게 되어, 각기 다른 걸음 리듬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단순히 전진할 때에 비해 방향을 틀 때에는 걸음이나 팔다리 리듬이 복잡해진다.
이를테면 왼쪽으로 방향을 돌리고자 할 때는 왼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해야 오른쪽으로 밀려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지렛대 작용을 하여 몸을 왼쪽으로 보내야 한다. 이때 신체의 왼쪽은 짧은 반경으로 오른쪽은 큰 반원을 그리는 몸짓 리듬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것이다.
보다 빠른 몸짓은 리듬이 빨라지고 불규칙 해진다. 이를테면 농구선수가 센터라인을 넘기 전까지는 직선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걸음걸이 리듬이 단순하다. 하지만 센터라인을 넘으면 몸짓은 직선이 아니라 수시로 변형되는 곡선이 된다. 공격수는 수비수를 따돌리려 하고 수비수는 공격을 막기 위해 달려들려고 한다. 이럴 때마다 더 궤적이 짧고 빠른 리듬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몸짓은 몸 전체 연결망을 통해 일어난다.
앞의 지하철역 인파 헤쳐가기를 생각해보자.
지금 몇 발자국 앞에서 상대편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마주 오는 상대편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내가 전진하려고 한다. 상대방을 비껴가기 위해 수집된 정보가 시각피질에서 전두엽으로 전달되고, 대뇌에서는 상대방 걸음속도 및 방향에 따른 동선을 파악한다.
이에 따른 나의 동선과 걸음속도 즉, 나의 몸짓 리듬을 결정하게 된다. 나의 동선 방향을 잡기 위해 눈과 머리가 협응 한다. 목표를 주시할 때 눈과 머리가 동시에 움직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눈이 머리보다 약간 먼저 움직인다. 눈은 머리의 움직임이 정지되기 전에 목표물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가장 먼저 목표물에 도달한다.
이것을 응용하면, 지하철, 버스 좌석에 앉은 사람 중 누가 내리게 될 사람인지를 동작 분석을 통해 예측할 수 있다. 내릴 확률이 높은 사람은 상체의 무게중심을 앞 방향으로 기울이기 위해 자동적으로 발들을 의자 쪽으로 당기는 사람, 시선을 출입문쪽으로 바라보는 응시의 집중도가 높은 사람이다.
몸짓 리듬은 뇌의 작품이다
몸짓이 일어나기 위해 머리와 눈 및 발의 상호 협응 과정을 통해 목표를 향하고 발걸음의 방향과 걸음속도를 결정한다. 그 걸음속도에 적절한 리듬으로 좌, 우 발을 내딛도록 발의 근육을 통제하는 운동신경을 통해 적절한 몸짓이 나오도록 한다. 이에 따라 신속히 운동신경계와 근육조직에 나의 발걸음에 대한 명령을 내린다.
한 발자국 내딛으면 발바닥에 있는 감각 수용기가 정보를 척수를 거쳐 운동피질로 전달한다. 현재 상대편의 빈틈 사이로 이동하는 나의 발걸음 정보를 전달한다. 뇌의 다른 영역들도 운동의 통제에 관여한다.
한편 뇌간에서는 소뇌가 움직임의 타이밍을 조절하고 오류를 교정한다.
이 과정에서는 광범위한 뇌 영역들이 관여하지만 발걸음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을 제외한 대부분의 몸짓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몸짓을 일으킬 때, 몸통과 사지를 통해 움직임을 만들어 간다. 상체와 하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모든 움직임에서 이 연결성을 느낄 수 있다. 갑자기 나타나는 장애물(사람, 시설물 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몸짓의 순간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걸어가면서 가속이 된 상태에서 상대를 피하기 위해 갑자기 방향 전환을 하기 위한 보폭 조정, 어깻짓을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 이때 발은 신속한 제어를 위해 힘이 가득 들어가지만 상체는 최대한 이완을 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근골격 및 관절의 부드러운 연결을 통해 빠른 자세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몸짓 리듬은 짧고 강력한 패턴을 갖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