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채플에서
수요일 오전에 강의가 없었고, 그날 따라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에 학생들이 매주 수요일 오전에 참석하는 채플(Chapel, 주 중에 드리는 주로 학생들을 위한 예배)에 참석하고자 했다.
원래 채플(큰 교회 건물 같은 곳이 따로 있고 이 또한 채플이라 부른다)이라 불리는 학생들 예배 장소가 따로 있어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던 날이 장날이었던 가, 채플에 아무도 없었다. 다소 실망스러운 순간에 누군가가 오늘 채플 장소가 대강당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대강당 안에 들어서니 1층 300여석은 이미 꽉 차 있었고, 막 예배가 시작된 터라 찬양이 불려지고 있었다.
무대 위에 학생들로 이루어진 밴드와 찬양팀의 찬양이 무대를 내려와 1층이며 내 머리 위의 2층 객석을 가득 담고 있었다.
늦게 온 탓에 1층 맨 뒷 줄에 자리를 마련했고, 모두가 일어선 채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무대와 가까운 좌석들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손을 들고 찬양을 하고 있었다. 마음에 울림이 와닿는 찬양과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침례교 계열 기독교 학교지만, 학생들은 신앙과 종교에 관계없이 입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종종 캠퍼스 안에서 히잡을 쓰고 있는 학생들도 볼 수 있었고, 실제로 중동 지역이나 이슬람교가 많이 전파된 동남아시아 권에서도 유학생들이 오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졸업 요건으로 한 학기 동안 1학점으로 채플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다른 종교를 갖고 있거나 채플을 원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는 부담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학생들에게 이러한 채플이 부담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참석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내용과 참여도에 따로 강제적 규정을 두지 않아 많은 경우, 다른 신앙적 배경을 갖고 있는 학생들은 학점 따기용으로 가서 자거나 폰을 보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학생들에게 채플이 무슨 소용 있겠냐 물을 수 있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채플에서의 경험은 분명 그들에게도 채플에서의 진실함이 묻어난 찬양과 강압적이고 주관적인 믿음의 강요가 아닌,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기독교 신앙에 대한 설명과 해설들이 보이지 않게 선한 영향을 주리라고 믿는다.
찬양과 기도의 시간들이 끝나고, 매주 강사가 초대되어서 말씀을 전하는 순서가 되었다. 본인이 학교에서 학생들의 캠퍼스의 사역을 돕고 있는 부교목 중의 한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짧은 설교를 시작했다.
에클레시아(Ekklesia)
"교회의 원어적 의미는 고대 희랍어에서 유래한 에클레시아(Ekklesia)이다. 이는 공동체, 특정한 목적을 위해 모인 집단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교회라는 건물이나 장소등을 뜻하는 키셔(Kirche)와는 구분되어 사용된다. 오늘날 교회가 영어로 Church라고 불리는 데는 독일어 Kirche에서 기인하고 Kirche는 고대 희랍어 키리아콘(Kyriakon)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키리아콘의 원어적 의미는 "주님의 집 (성전)" (Lord's house)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좀 더 에클레시아(Ekklesia, 라틴어 Ecclesia에 기인)를 살펴보면, ek (영어로 out of, 즉 뭔가 밖으로 나오는)와 klesia (영어로 calling out, 즉 부름을 받다, 부르다)의 합성어로서 전체적 의미가 "부름을 받은, 또는 부름을 받은 자들"이라는 뜻이 된다.
오늘 여기에 있는 분들은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특정 교회에 속해 특정한 종교적 모습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고 선하신 계획에 따라 "부름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짧은 시간의 채플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은혜와 감동을 받은 시간이었다. 채플 밖의 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멀리 차들을 운전하고 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그리고 당신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특별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