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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수 Nov 09. 2024

<황제의 수의> 텀블벅 펀딩이 정식으로 오픈했습니다.

(6)황제의 수의: 텀블벅 정식 오픈

안녕하세요. Rina Ka입니다.

1453년 중세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과 이를 막기 위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고군분투를 잉글랜드 소년의 시선에서 그려낸 역사소설 <황제의 수의>의 펀딩이 텀블벅에서 정식으로 오픈했습니다.


https://tumblbug.com/constantinople1453




아래는 제가 텀블벅 펀딩이 끝난 후 서점에 출시할 때 보낼 글의 일부입니다.


"소인이 꿈을 꾸었습니다.“


황제의 즉위를 위해 왕관을 바치던 날, 괴상한 차림새의 노인이 홀연히 나타나 꿈을 해몽해달라고 요구한다. 독수리 한 마리와 수많은 새들이 날다가, 먹구름을 마주하니 새들이 떠나고 오로지 작은 새 한 마리만이 남아 독수리와 함께 먹구름을 통과한다는 꿈이었다.


먹구름은 이교도 튀르크, 독수리는 황제를 가리켰다. 절망스럽고도 기이한 예언에 한 줄기 희망이 덧붙여졌다.


"황제의 곁에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면 제국이 소멸되지 않으리라."


황제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소년을 지목했다. 그렇게 선택된 소년, 브레티키. 브레티키는 최후의 순간에 황제의 곁을 지켜, 예언을 따라 제국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2200년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순간,

제국과 함께 산화한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

기원전 753년에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세운 로마 왕국은 로마 공화정, 로마 제국, 동&서 로마제국을 거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동쪽의 로마는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천여 년간 존속했다. 303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긴 뒤, 동로마 제국은 굳건한 3중 성벽 아래, 천여 년간 서방의 중심지로서 자리를 지켰지만, 잦은 내전과 흑사병, 외적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인해 동로마 제국은 거대한 영토를 잃고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모레아만 남겨둔 채 쪼그라들고 말았다. 


사방이 적국인 오스만 제국에게 둘러싸였지만,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풍전등화의 제국을 살리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10만 명의 대군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1453년 5월 29일, 3중 성벽이 뚫리면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었고,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제 몸을 불살라 제국과 함께 산화했다.


콘스탄티노스의 시체는 영원히 찾지 못했다. 그를 그리워한 그리스 사람들은 튀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그리스도교의 수중에 돌아올 때 콘스탄티노스 11세가 부활하리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풍전등화의 제국과 함께 비장한 최후를 맞이한 콘스탄티노스 11세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은 저자가 <황제의 수의>를 집필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다.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는 어떻게 수의를 입었는가?

죽음이 예언된 황제 앞에 나타난, 행운의 아이 브레티키

윗 문단에서 언급한 콘스탄티노스 11세의 일생을 생각하면, <황제의 수의>라는 제목은 역설적이다. 분명, 콘스탄티노스의 유해는 영원히 찾지 못했다. 수의는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기 전에 시체에게 입히는 옷이다. 시체를 찾지 못해, 그리스인들이 신화를 만들어 낼 정도로 그리워했던 콘스탄티노스는 어떻게 수의를 입었을까? 


<황제의 수의>에서 등장하는 잉글랜드 소년 피어스 바버는 상선이 난파되어 혼자 살아남은 채, 우연히 금으로 새겨진 자주색 양피지를 읽는 남자의 발치와 마주쳤다. 그는 바로 제위 계승을 기다리는 데스포트 콘스탄티노스였다. 그런데 콘스탄티노스가 황제로 즉위할 준비를 하던 무렵, 갑자기 괴상한 학자가 나타나, 콘스탄티노스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채, 자신이 꾼 꿈의 예언을 들려주었다.


콘스탄티노스가 죽는 최후의 순간,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제국을 지킬 수 있다는 예언이었다. 콘스탄티노스는 자신의 곁에 남아 있을 인물로 어린 피어스 바버를 지목했고, 이때부터 피어스 바버는 ‘행운의 발견’이라는 뜻의 브레티키라고 불렸다. 브레티키는 내키지 않았지만, 황제가 된 콘스탄티노스의 부적이 되어 황제의 곁을 따랐다. 그러다가 이미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와 모레아를 제외한 전 영토가 오스만 제국에게 둘러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는 비잔티움 제국, 아니 로마의 뿌리를 둔 제국 전체를 집어삼킬 야욕을 품고 침략을 개시하기 시작한다.


"로마의 마지막 황제 이름은 첫 번째 황제의 이름과 같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예언대로,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함락되고 콘스탄티노스 11세는 시체를 찾지 못한 채 전사하고 만다. 브레티키는 예언을 파훼하고 최후의 순간에 황제의 곁을 지켜, 황제와 제국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영국 왕실의 훈장을 받은 작가가 치밀한 자료 조사 끝에 집필한

오로지 비잔티움 제국을 위한, 콘스탄티노스 11세를 위한 작품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을 다룬 작품은 기존 한국에도 많이 출간되었고,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을 다룬 작품들이 술탄 메흐메트 2세를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황제의 수의>는 오로지 비잔티움 제국, 콘스탄티노스 11세와 그의 주변 인물의 시선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의 전개 과정을 다룬다.


<황제의 수의>의 저자인 질 패튼 월시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현실적이고 역사의 교훈을 살린 소설을 집필했다. 그 공으로 그녀는 영국 왕실에서 훈장을 받기도 했다. <황제의 수의>는 영미권 작가들의 비잔티움에 관한 자료뿐 아니라, 이스탄불(콘스탄티노폴리스의 현재 명침)의 튀르키예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역사의 고증을 지켜 집필한 작품이다. 또한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던, 비잔티움 황제를 지키던 북유럽 출신의 용병대, 즉 바랑인 친위대의 콘스탄티노폴리스 당시 활약상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음...100프로 달성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네요. 혹시나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치밀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 보고 싶으신 분들은...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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