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마주하는 론뮤익의 방식

국립현대미술관서울 화제의 전시

by 달리아

지난 7월까지 열린 국립현대미술관 ‘론뮤익’ 전시는 현대 조각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던 인상깊은 전시였다. 호주 멜버른 출신 작가인 론뮤익은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해왔으며 완벽에 가까운 기술과 예술성으로 현대 인물 조각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가 30여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은 48점에 불과한데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작 <배를 탄 남자>를 비롯해 총 10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20250716170839_zxoczprx.jpg Mask II

가장 먼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실제 얼굴의 4배 크기로 제작된 <Mask II>.

2021년 리움 현대미술소장품전에서 공개되어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작품으로 처음 느껴지는 기괴스러움은 관찰을 거듭하며 놀라움으로 바뀐다. 모공과 주름, 턱수염과 받침대에 눌린 살집 등의 표현은 믿을 수 없는 디테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작품 뒤로 가보는 순간 발견하게 되는 텅 빈 공간은 이 비현실적으로 생생했던 형상이 실제로는 껍데기였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이 작품은 뮤익 본인의 자화상으로, 세 점의 마스크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눈을 감고 살짝 입을 벌리고 있는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 가면을 쓴 채 자신의 내면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알 수 없다.


20250716171042_bigsmcnr.jpg 침대에서


<침대에서>는 비현실적인 크기의 여성 조각이다.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볼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이 작품은 여인의 눈빛과 찌푸린 미간으로 말없이 관객을 그녀의 상념으로 끌어당긴다. 론뮤익은 초창기에는 밀랍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더 정교하고 내구성이 강한 실리콘과 레진을 주로 쓰고 있다. 이 작품의 이불과 속옷은 직접 바느질하여 맞춤 제작했다고 한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업 영상은 강박에 가까운 치밀함에 경이로움과 감탄을 자아낸다. 하지만 뮤익의 조각은 외형적 완성도 위에 인간 실존의 정서를 덧입힘으로써 밀랍인형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20250716171208_amqczlcz.jpg 매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매스(Mass)>.

해설에 따르면 두개골의 개별적인 정체성을 알아볼 수 있는 단서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뮤익의 이전의 작업들과 차별화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뮤익은 이전까지 개별 인물의 고립된 상태를 탐구해왔기 때문이다. 거대한 해골 100개가 마치 제단처럼 쌓여 있는 이 작품은, 죽음을 상징하면서도 묘하게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mass는 ‘군중’ ‘무더기’라는 뜻도 있지만 종교의식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기 때문에 작가가 의도한 바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눈에 들어온 점은 실제 해골보다 훨씬 더 새하얀 색이었다. 실제 해골의 색감을 표현할 기술이 없지 않았을텐데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죽음은 오랜 시간 예술의 단골 주제였다. 중세시대의 ‘메멘토 모리’, 바로크 시대 ‘바니타스’ 회화, 그리고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에 이르기까지. 뮤익의 <매스>는 해골의 보편적인 상징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과도한 연출은 배제하고 ‘죽음’이라는 대상을 그 자체로 응시한다. 공간을 가득 채운 해골 더미를 가만히 올려다보니 그것들이 마치 ‘시간이 쌓아올린 층’처럼 보였고 그 아래 서 있는 나 또한 그 일부인 것 같은 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동시에, 비현실적인 크기와 실제보다 더 새하얀 색감이 나를 일정한 거리로 밀어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의도가 이것이었을까? 죽음을 눈앞에 마주하면서도, 그것이 내 일이 아닌 양 관조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뮤익의 작품 앞에서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수용이 된다.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실제적인 죽음의 공포 앞에서 모든 철학적 사유는 무기력하다는 것을.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관계는 단절되고 존재감은 작아지며 개별성은 소멸된다. 하지만, 어떤 이의 말처럼 ‘죽음은 단지 존재 양식의 변화’일 뿐이라면 우리는 하루하루 소멸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세계의 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론 뮤익의 작품은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죽음을 마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