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희망을 주는 방송,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반인들에게 루푸스라는 병은 주로 故 최진실 님의 딸이 앓고 있는 질환으로 알려져 있는 듯하다.
세계적인 가수 셀레나 고메즈가 친구의 신장을 이식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였던 루푸스 신염. 저스틴 비버의 전 여자친구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사실은 잘 몰랐던 가수인데, 그녀가 나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단 사실 하나에 동질감이 들었다.
그 사실은 알게 된 것은 예전에 어느 한 기사를 접하고 나서였다. 그녀가 루푸스 신염으로 친구에게 신장을 이식받았는데, 이식받고도 건강 관리를 하지 않고 술을 계속 마신다며 이에 이식을 해주었던 친구가 크게 실망하여 그녀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것이다.
처음 그 기사를 접했을 땐, 친구가 본인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주었으면 친구한테 고마워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직접 루푸스 신염을 앓게 되니, 분명 그녀의 잘못이 맞는대도 불구하고,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졌다. 사람이 참 간사하지만, 루푸스와 루푸스 신염은 또 다르게 느껴졌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오죽 힘들고, 의지할 곳이 없으면 술에라도 의지하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디 그녀가 앞으로도 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좋은 본보기가 되어 전 세계에 있는 많은 환우분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루푸스(lupus)란 라틴어로 늑대를 뜻한다. 이 병의 증상이 마치 늑대에게 공격을 받아 긁히거나 물리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발진의 증상이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루푸스(전신홍반루푸스)는 주로 가임기 젊은 여성들에게 발병하는데, 만성 염증성 자가면역질환으로 결합조직과 피부, 관절, 혈액, 신장 등 신체의 다양한 기관을 침범하는 전신성 질환이다. 다양한 증상이 전신에 나타나 천의 얼굴을 가진 병이라 불린다. 초기 증상이 비특이적이라 빠른 진단도 빠른 치료도 쉽지 않아 질환이 상당히 진행돼야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명확한 원인도 치료법도 없어 완치가 없는 난치성 질환으로 분류된다.
*루푸스 신염(신장염)은 루푸스가 여러 장기 중 신장을 공격하는 루푸스 합병증 중 하나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루푸스 환우 카페에서 생로병사의 비밀에 루푸스 편 방송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방송 날은 2박 3일 강원도 여행을 앞둔 하루 전 날이었다.
루푸스 신염을 앓고 처음 계획한 여행이기 때문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방송을 보고 나면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괜히 기분이 우울해질 것 같은 두려움에 일부러 본방 시청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인터넷으로 따로 챙겨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아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밤 10시였다.
'이 시간에 아빠가 무슨 일이시지?'
아빠께서 밖에서 한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루푸스에 대해 나오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여기 최진실 딸도 나오네. 너도 시간 되면 방송 한 번 봐봐. 엄마한테도 전화해서 한 번 방송 봐보라고 해."
방송을 보면 내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용건을 말씀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별 것도 아닌데 나는 순간 왈칵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아빠는 내가 루푸스 진단을 받고 나서 근 1년 간 한 번도 나에게 병명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없었다. 하다못해 '괜찮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는 한마디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입원해 있을 때는 예외였지만..)
워낙 표현에 서툴고, 평소 무뚝뚝한 편이어서 내가 자가면역질환 정도를 앓고 있다는 것은 알아도 이름도 생소한 내 질환의 정확한 병명은 모르고 계실 줄 알았다...
사실 사람들은 류마티스 관절염과 많이 혼동하곤 한다.
처음 루푸스를 이야기하면 그게 뭐야?라고 반문하는 게 흔한 반응이다.
나조차도 진단받던 그 당시 내 병명을 처음 들어보았다.
근데, 참 이게 뭐라고.
아빠가 내가 앓고 있는 질환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는 게 그 사실 하나가 나에게는 참 감동이었다.
사실은 아빠도 나를 많이 걱정하고 있었구나.
어쨌든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tv에 루푸스에 대한 방송이 나온다고 함께 시청해 보자고 말하며 전화를 끊고, 남편과 함께 방송을 시청했다.
남편에게 내 병에 대한 민낯을 너무 세세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서 너무 안 좋은 이야기만 나오면 어쩌나 걱정도 되고, 부끄럽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 공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생을 포함하여 온 가족이 그 방송을 시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해서 온 가족이 함께 내 건강에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고마웠다.
이렇게 챙김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가끔은 사실 많이 힘들다고 어리광도 부려보고 싶어 진다.
내 식단 관리, 햇빛 차단에 그렇게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던 남편도 방송을 함께 보고 난 이후로는 전보다 훨씬 나의 건강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주고, 이해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그 방송 시청이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루푸스라는 질환은, 주변에 앓고 있는 환우분들이 없어서 어떤 식으로 관리를 해야 할지, 남들은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방송을 통해 그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면서 루푸스에 대해 많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한 서울 아산 병원 교수님께서 50년 전만 하더라도 루푸스라는 질환의 5년 생존율은 50%가 안 됐었다고 말씀하신다. 새삼 의학기술이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만큼 위험한 질병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건강이 호전되었다고 해도 정상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그 사실이 또 한 번 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렇지만 예전에 비해서 새로운 치료법도 많이 개발되고 있고 의료진들도 최대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에 본인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잘 점검해서 지금 현재 내 몸에 가장 필요한 약재가 필요할지 의료진과 잘 상의해서 치료를 받고, 좋은 면역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좋은 생활 습관을 갖는 것들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방송은 끝이 난다.
최근 국민 청원으로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되었던 '벤리스타'라는 루푸스 치료제인 신약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어쩌면 나는 요즘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벤리스타라는 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벤리스타는 세계 최초로 루푸스 치료제로 인정된 신약이다. 2011년 FDA 승인을 받으며 스테로이드 이후 60년 만에 출시된 신약으로 주목을 받아, 2013년 6월 국내에서도 성인 루푸스 환자의 치료에 사용하도록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 번 맞는 주사 비용이 너무 말도 안 되게 비싸서 치료에 제한적이었는데, 국민 청원으로 7년 만에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된다.
그 당시에는 나는 루푸스 질환을 앓기 전이지만,,
그때 그 국민청원에서 국민들의 동의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신약 주사를 맞지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약은 아니지만, 더 나은 내일을 희망하고 꿈꾸고 있다.
끝으로 루푸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주신 취재진분들과
다른 환우분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용기 내어 방송 출연을 결심해 주신 분들에게도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주변의 지인들에게도 아직은 내 병에 대해 솔직하고 정확하게 밝힐 용기가 없는데, 방송 출연을 결심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요 근래 식단 관리를 하고, 운동을 하면서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몸의 변화가 느껴지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아쉬운 마음도 들고,
큰 동기부여가 필요했는데 내가 하고 있는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감이 들었고 앞으로 나도 생로병사의 비밀에 출연하셨던 환우분들처럼 열심히 건강 관리를 해서 오랜 기간 관해기를 유지해 보았으면 좋겠다.
(해당 방송은 KBS 공식홈페이지에서 다시 보기가 가능합니다) -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영상이 궁금하실 분들을 위해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