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황이 오래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약간의 자기혐오가 있는 사람이다.
타인에게는 매우 관대하면서 나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나 자신을 평가하곤 한다.
그래서 타인과 나눈 대화, 순간순간의 내 행동들을 자주 상기시키며, 그때 좀 더 성숙하게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하고 후회하곤 한다.
그래서 실제 나의 본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 사이에는 큰 갭이 존재하는 것 같다.
글쓰기는 이런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되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처음에는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부모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썼다. 신혼 1년 차에 이제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며 태어날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가끔씩 고개를 스멀스멀 내밀고 나오려 하는 부모로부터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해야만 했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루푸스'라는 자가면역질환을 진단받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글을 쓰면서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얻고 싶은 마음에 글을 썼다.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매일 우울한 날들의 연속되는 나날들 속에서 그 감정들을 한 데 모아 글을 쓰고 한바탕 울고 나면 그래도 마음 한편이 개운해졌다.
그런데, 병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생각보다 많은 10,20대. 그러니까 나보다 더 젊고 어린 환우들이 이 질병에 대해 불안감과 두려움을 심하게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질병 때문에 연애를 망설이고, 결혼을 망설이고, 임신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어여쁜 아이를 낳고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가임기 여성에게 주로 발병하는 질환이라서 그런지 여성 질병률이 높은데, 결혼하여 예쁜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환우들이 잘 없어서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던 나에게도 갑작스러운 시련이 다시 찾아왔다. 작년 12월 10일간의 병원 입원 후 조직검사 결과 루푸스 신염 4형을 진단받았다. 그렇게 담당 주치의로부터 3년 간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들었다. 늦어도 1,2년 이내로 임신을 계획하고, 힘겹게 마음을 다잡았던 나에게 다시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솔직히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임신을 할 수는 있을까? 임신을 하면 내 건강은 괜찮을까?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온갖 걱정이 가득한 이 순간에 내가 과연 누군가를 위로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실 요즘 길을 잃고 방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