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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항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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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Mar 09. 2024

지독한 장거리 연애,
두 번째 이야기

펜팔친구

펜팔(Pen pal) - 주로 편지를 통해 친분을 유지하는 친구
또는 그 관계를 이르는 말




우리는 펜팔친구


사실 펜팔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어색하다. 나는 MZ세대의 일원이다.


아주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친구랑 놀기 위해서 친구 집에 전화해서 "안녕하세요. 저 OO친구 XX인데 혹시 OO 있나요?" 라고 물어본 기억은 있다. 하지만 중학교때부터 핸드폰을 쓰기 시작했고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아이폰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에나 편지나 펜팔로 연애를 했지 우리 세대에는 소통의 방법이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배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승선 기간동안 배에서 인터넷을 포함한 통신은 불가능했다. 힘들겠지만 억지로라도 상상해보자. 정보의 바다에서 살다가 막막한 그 환경으로 바뀐다면 연애는 커녕 사실 삶을 살기에도 답답할 것이다. 그 상황에서 육지의 회사와 항해중인 배의 업무연락을 위해 들어오는 메일 회선을을 살짝 빌려 개개인에게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된다. 모두가 볼 수 있는 공간이기에 상사의 욕을 하거나 애정표현을 하려면 무조건 비밀번호를 걸어서 보내야 한다!


하루에 한번 메일을 보내고 여자친구에게서 오는 그 답장을 기다리는 낙으로 살았다. 배에서 생긴 이런저런 일들과 아무래도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는 나의 힘듦을 토로하는 글 위주로 보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오는 메일에 힘을 얻어 살아 갔다.


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이 외에도 시련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여자친구의 직업이었다.


여자친구의 직업은 간호사였기에 3교대가 필수 였다. 전세계를 돌며 시차가 계속 바뀌며 메일 밖에 보내지 못하는 선원과 3교대로 시간이 뒤죽박죽인 간호사. 어떻게 지금 결혼에 성공해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는지 참... 지독한 7년간의 연애였다고 생각한다. 육지에서 할게 세상 많았을건데 꼬박꼬박 메일을 보내줬던 여자친구에게 참 감사했다.



항구에 입항하면


화물을 하역하기 위해 항구에 입항하게되면 그 때가 바로 최고의 찬스다. 컨테이너 선을 승선했을 때는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시간이 하루도 안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잠을 줄여서라도 바로 로밍을 해서 연락을 했다. 핸드폰에 로밍을 하면 인터넷이 터지는 그 순간, 밀린 카톡이 몇백 개씩 보였고 사람들의 바뀐 프사도 봐야했고 페이스북도 봐야했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봐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건 영상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 간헐적인 찬스가 아니고 순수하게 메일만으로 연애를 지속하기엔 정말... 무리라고 생각한다.



몇 달동안 이렇게 메일로만 연락이 가능하고 기껏해야 몇 주에 하루 이틀 들어가는 항구에서의 잠깐 하는 로밍, 다시 메일로의 회귀... 이런 식으로 연락을 하게되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솔로가 될 수 밖에 없다.


아 깜박했는데 배에서도 전화가 가능하긴 했다. 선교(Bridge)*에서 가능했고 1분에 100원 정도였나?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기관실에서 지내던 기관사였기에 이용해 본 적은 없다.


요즘에는 이 시대에 비해선 좀 나아졌다고 하나* 그래도 육지에 비하면 많이 열약하다고 한다. 이런 기본적인 것들의 열약함이 결국 선원들의 부족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기간 버티고 버텨서 하선을 하게되면 휴가 때는 다른 직장인들에 비해 훨씬 연애에 어드밴티지가 있다. 그건 다음 이야기에서.


세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 선교 : 선박을 조종하는 곳. 항해사들의 주요 일터이다.


*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열약한 선내 인터넷 환경 개선을 위해 스타링크 설치가 화두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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