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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항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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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Mar 30. 2024

지독한 장거리 연애,
네 번째 이야기

프러포즈와 2년간의 이별

나랑 결혼해 줄래...? 하지만 2년 뒤에...


승선 끝 행복시작?


한 번의 이별 이후 우리 커플은 더욱 돈독해졌다.


선원들은 장점에 비해 단점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는데 20대의 남성 선원 한정 그 단점을 다 상쇄할 수 있는 아주 큰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승선으로 군대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인데 선원들은 군대를 가는 대신 승선기간 + 한 달 승선마다 7일씩 생기는 법정휴가로 3년을 채우면 군복무를 대체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나 역시도 승선근무예비역으로 군복무 대신 승선을 하여 진해에서 4주 기본훈련만 받고 그 외의 군복무는 하지 않았다.


많은 남자들이 군대에서 말년 병장 때 '이제 사회에 나가면 무얼 하지?'라는 고민을 한다고 들었다. 군대는 안 가봤지만 그 시점이 다를 뿐 우리 선원들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선원들의 경우 빠르면 27살 가을에 그 시점을 맞이하게 되고, 나 같은 경우에는 중간에 회사가 망하고 도크 기간에는 육지에 있었기에 승선으로 군특례를 인정받지 못하여 27살 겨울에 군 대체복무가 끝났고 1 기사로 승선 중이었기에 중간에 내리기 아쉬워 7개월을 다 채우고 내리니 28살 봄이었다.


마지막 배를 승선하면서 하선한 후에 이제 뭘 해야 할까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물론 승선을 더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였지만 그건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배가 너무 지긋지긋했다. 내 28살이 되어 내 모든 20대를 보낸 바다생활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한창 공무원 붐이었어서 해기사 경력으로 비교적 하기 쉬운 해수부 9급, 7급 공무원을 알아봤었고 하선하자마자 공부를 하기 위해 한국사 시험 책을 구매했다. 하지만 일단 그동안의 보상심리로 일단 먼저 신나게 노는 걸 선택했다.


여자친구도 취업이 상대적 쉬운 간호사였기에 내 퇴직기간에 맞추어 퇴직을 하였고 둘이서 정말 그동안 같이 못 있었던 한을 풀었다. 국내 여행을 시작으로 영국 - 프랑스 - 스위스 - 이탈리아 3주의 유럽여행도 다녀오고, 그 이후엔 냐짱, 끄라비 등의 동남아 휴양지로 힐링 여행도 다녀왔다. 정말 행복했지만 쉬는 날이 계속될수록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줄어드는 통장 잔고와 돌아갈 직장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승선기간 동안 미리 자격증을 취득하고 공부를 한 상황이 아니어서 이대로 몇 달을 쌩으로 쉬면서 공부를 하게 되면 그 자체가 마이너스인 상황이었고 1 기사 한배 정도의 경력으로는 생각보다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쌓여 매일밤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의 길은 다시 바다로 가는 것이었다.



프러포즈와 다시 시작된 기다림


지금은 선원들이 더 없어져 진급이 내가 승선했던 시기보다 빠르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승선하던 시기에는 군특례가 끝나기 전 1 항사, 1 기사를 하는 경우가 많이 없었다. 나의 경우 운이 좋아 회사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진급의 찬스가 빨리 찾아왔고 군 대체복무를 하면서 1 기사 일을 할 수가 있었다.


운도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자격증 취득과 평판 관리 그리고 고과 등 진급 요건을 소홀히 했다면 나에게 찾아온 운을 잡아챌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론은 내가 가장 인정받았던 곳은 육지가 아닌 바다 위였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인정받던 곳이 바다 위였기에 이대로 이 커리어를 멈추기에 아쉬웠고 아무래도 경력을 조금 더 쌓은 후 육지에 내려서 미래를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약 4년 정도를 펜팔친구 같은 연애를 하며 기다려온 여자친구는 내가 다시 배를 타러 간다고 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뻔했다. 주변의 많은 유혹도 뿌리치고 정말 나만 바라보며 기다린 힘든 시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시작된다고 하면 이 세상 그 누구였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 커리어도 중요했지만 나에겐 여자친구의 존재가 더 소중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나를 이렇게 대학생 때부터 만나서 아무 조건 없이 기다려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 계획을 짜며 여자친구가 내 계획을 이해해 준다면 승선을 더 하고 육지에서 직장을 찾고 그 이후에 결혼을,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의 직장을 찾고 결혼을 하기로 생각했다.


백화점을 몇 군데 다니면서 프러포즈는 할 반지를 골랐고 드라이플라워도 준비해 두었다. 해운대의 5성 호텔을 빌렸고 저녁 뷔페까지 예약을 끝냈다. 자연스럽게 뷔페로 유도한 후에 화장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주차장으로 죽을 듯이 뛰어가 트렁크에 있던 풍선과 꽃을 챙겨 방에 세팅을 하고 다시 죽을 듯이 달려 뷔페로 돌아갔다. 이제 결전의 시간이었다.

여자친구에게는 담담히 생각을 해본 결과 아무래도 승선을 해야겠다고 이기적인걸 알지만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물었고, 대답이 돌아오기까지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시간은 너무나도 느리게 흘렀다. 잠시 고민하던 세상 착하기만 한 여자친구는 서럽게 펑펑 울며 기다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대체 무슨 복이 있어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 그 이후의 식사는 사실 계속 우느라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가서 나는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했다. 나와 결혼해 달라고 염치없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그렇게 우린 결혼을 약속했고, 나는 다시 바다로 향했다.


다섯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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