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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항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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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리 May 28. 2023

바다에서 표류하다,
다섯 번째 이야기

마침내 집으로


드디어 보이는 끝


인도 선장, 기관장은 생각보다 꼼꼼했다. 배의 이곳저곳 샅샅이 살펴보았고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


회사의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내 추측이지만 상당히 싼 값, 거의 폐선할 때의 고철 값만큼으로 이 배를 사 가는 것일 텐데도 요구하는 부분이 많았다. 보통의 때였더라면 나는 귀찮아서라도 인수인계를 하지 않았겠지만 그때는 아주 절박했다. 기관장님을 보기 싫은 만큼 나는 그들에게 진심이었다. 이 생활이 끝나려면 무조건 우리 배가 맘에 들어야 했고 그들이 꼭 우리 배를 사 가야만 했다.


나는 잠도 줄여가며 부족한 영어로 그들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했다. 내 노력이 조금은 그들에게 통했을까. 선박 인수를 위해 곧 다른 선원들도 이 배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 이 지독한 생활도 이제 정말 끝이구나.' 속이 더할 나위 없이 후련했다.


배를 떠나며 찍은 마지막 사진 - 이 배를 타고 바다를 다섯 시간 더 항해했다


그 이후는 아주 속전속결이었다. 인도인 선원들 약 20명이 승선하였고 그 들이 승선하기 위해 타고 온 배로 우리는 하선을 시작했다. 그 배에서 내가 승선했던 배를 바라보는데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우리는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닌 공해 상에 앵커링 중이었기에 싱가포르까지는 통통배로 약 다섯 시간을 가야 했다. 가는 내내 토하고 힘들어서 바닥에 누워있었지만 그 어느 침대보다 안락하게 느껴졌고 행복했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후 바로 귀국할 줄 알았지만 비행 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운이 좋게 싱가포르에서 머무를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다. 회사가 망하는 건 망하는 거고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바로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다녀오며 나의 싱가포르 여정은 끝이 났다.


그렇게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끝인 줄 알았던 내 시련에 마지막 보너스가 하나 남아 있었다. 인천에서 바로 집으로 가는 나와는 달리 부산으로 가는 기관장님 아니 기관장은 부산으로 향하는 환승센터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에 한마디를 더 나에게 선물했다.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기관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어떤 윗사람을 만나도 이제는 눈썹하나 꿈 쩍 안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


그 이후 회사는 사라졌다.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이런 경험으로 인해 나의 승선생활이 여기서 끝날 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이때부터 5년 뒤인 2020년 12월 27일에 승선 생활을 마치게 된다. 나머지 이야기는 이 이후에 차차 풀 예정이다.


정말 말 그대로 바다에서 표류했던 두 달가량의 시간은 거짓말이라고 할 만큼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누구도 못할 경험을 했고 그 경험 덕에 내가 조금은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시련을 겪은 게 이렇게 이야깃거리도 되고 내 강점을 이야기하기 아주 좋은 예가 되기도 한다.


바다에서 표류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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