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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닮지 않은 딸

이담 작가의 <똑 닮은 딸>안에서 읽어내는 색다른 모성애

by 이박하

성적에 극성인 엄마와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딸. 그리고 둘의 갈등. 엄마는 왜 성적에 극성이 되었을까. 역시 딸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닐까. 결국 이런 갈등은 엄마가 품고있는 사랑에서 찾아지기 마련이다. 바로 당신의 옆집의 이야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익숙한 소재의 갈등이다. 그런데 왜 <똑 닮은 딸>은 신선하게 느껴질까. <똑 닮은 딸>은 사이코패스 엄마와 그 엄마의 통제에서 벗어나 복수하려는 딸의 갈등을 스릴러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모녀 갈등을 볼 때와 조금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딸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


어떻게 엄마가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웹툰 <똑 닮은 딸>은 흔한 어머니의 코드인 모성애를 비틀어 명소민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명소민은 딸을 제외한 작품 내부의 인물들에게 이상적인 어머니처럼 보인다. 길소명을 위해 자신의 일을 제쳐두고 우산을 씌워주러 오거나,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헌신적 어머니의 이미지와 겹친다. 그러나 작품은 명소민이 아들을 죽였다는 묘사를 통해 그녀가 전통적인 어머니상과는 다른 존재임을 보여준다.


명소민이 길소명에게 갖는 애정을 작품의 의도대로 이해하려면 우리는 모성애의 이면을 바라봐야 한다. 모성애는 완전무결한 헌신이 아니다. 사이토 다마키의 <나는 엄마가 힘들다>에서 엄마는 딸에게 ‘동일화’라는 현상을 겪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딸이 자신의 인생을 다시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엄마도 인간이기에, 불우한 자신을 잊고 자식에게 온전히 이타적이긴 어렵다. 이 동일화는 발생하면 반드시 통제가 따라온다. 명소민의 모성애는 이 개념을 적용시켜 이해할 수 있다. 명소민 역시 길소명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통제한다.


거기에 유독 해당 작품이 공포스러운 것은 명소민에게 사이코패스 완벽주의자라는 설정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인 어머니가 딸에게 ‘동일화’를 느끼기에 길소명에게 가해지는 통제와 관여가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남동생의 죽음에 앞서 딸의 충격을 헤아리기보다 반항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인생의 걸림돌이 될 듯한 딸의 친구를 죽여버린다. 한편으로는 교수가 적성에 맞을 것이라거나, 사춘기에는 친구에 휘말려 어리석은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 조언하며 ‘너는 나보다 완벽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런 행동들을 통해 명소민의 애정이 길소명에게서 완벽한 자신을 찾는 사이코패스의 자기애임을 유추할 수 있다. 나아가 길소명의 죽음을 상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도, 딸이 아니라 자신의 완벽한 투영체를 잃는 데 대한 슬픔으로 볼 수 있다. <똑 닮은 딸> 은 이러한 명소민의 왜곡된 모성애를 통해, 전통적으로 이상화된 어머니의 이미지를 해체하며, 어머니의 존재를 공포스럽게 제시한다.


딸은 죽음으로 복수를 수행한다


명소민과 길소명이 똑 닮지 않았음을 주목해야한다. 작품을 피상적으로 보면, 모전여전으로만 설계되었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외모뿐 아니라, 서남수를 자기 의도대로 주무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공포스러운 모습들이 꼭 그 엄마에 그 딸처럼 보인다. 그러나 길소명은 명진이가 남긴 생일 편지를 통해 “명진이는 글러먹은 것이 아니라 몰라서 그랬을 거야.”라고 이해하며, 엄마와 달리 동생의 미성숙함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서남수가 영재고에 가는 자신의 목표를 방해했음에도 죽게 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헌신한다. 이처럼 길소명은 이타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비추어지며, 명소민이 제공하는 채찍과 당근 모두에 순응하지 않는다. 이에 둘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길소명이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평생 지배할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본격적인 복수를 결심한다. 처음에는 명진이가 죽은 원인을 밝혀 복수를 실현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중 드러나는 암시로 소명의 복수는 그녀의 자살로 수행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왜 그 복수는 자살로만 달성할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는 사이코패스 어머니, 그 어머니가 집요하게 딸에게 관여하고 통제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과연 주변에서 먼저 그 광적인 집착을 알아채고 딸을 공포로부터 꺼내줄 수 있을까. 동서고금 엄마라는 직위는 항상 대체불가한 우군으로 여겨져왔다. 이에 딸의 공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모성애의 위대함을 칭찬할 때, 길소명은 자신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을 깨닫고 외로움을 느낀다. 이런 고립과 모녀관계의 특수성으로 길소명의 복수는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일반적인 복수와 다른 양상을 갖춘다. 즉, 자신을 죽이고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우는 것으로 설계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동일시하던 명소민에게 그녀가 결코 지배할 수 없는 독립적 존재임을 각인시키며, 동시에 엄마로부터 받은 억압을 세상에 폭로한다. 이 복수는 완벽하게 설계되었지만,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달성된다는 것에서 독자에게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감상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스릴러 장르다운 긴장감과 손에 땀을 주는 분위기는 그럴싸하게 형성된다. 결론적으로, <똑 닮은 딸>은 엄마와 모성애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제시하며 이 관계 안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비극적인 복수를 설득력 있게 연상시킨다. 해당 작품은 엄마의 집요한 통제와 딸의 공포를 실감나게 묘사해 가정폭력을 당하는 피해자의 고립감에 대한 공감 또한 이끌어냈다. 숨도 쉬지 않고 읽게 만드는 몰입감과 동시에 소명의 외로운 처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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