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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강박

‘Ctrl + A’와 ‘Delete’

by 전수빈

몹시도 하찮고 이상한 몇 가지 강박을 오래전부터 지녀 왔다. 어릴 때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탈 때면 지나가는 차 꽁무니에 붙은 번호판의 모든 숫자를 더하느라 다른 생각을 못할 지경이었고, 외국영화를 볼 때면 쉼 없이 스쳐가는 자막의 음절 수를 더했다. 답을 구해도 얻는 건 없으니, 이것을 퍼즐이나 스도쿠처럼 간단한 지적유희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반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때문에 정작 집중해야 할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는 시시한 강박에 불과했다.


강박의 정도가 불편함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던 건 중학교 무렵, 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의식했을 때였다. 책을 읽는 와중에도 문장의 해석보다 숨이 드나드는 걸 신경쓰느라 그만 숨이 콱 막힐 지경이었다. 답답함에 가슴이나 배를 쿵쿵 내리치며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원인을 알 수 없었고, 원인이랄 게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억압적인 환경, 인간관계, 학업 등으로부터 비롯된 당시의 스트레스가 낳은 증상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같은 강박의 강도와 빈도는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줄어들었지만, 한 가지 강박만큼은 여전히 내 머릿속의 조종석을 비우지 않고 있다. ‘모두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강박’이 바로 그것이다.


종종 내가 소유한 물건들, 소셜 미디어와 휴대전화 갤러리에 쌓아 온 사진과 글 등 나를 형성하고 드러내는 모든 것들이 커다란 혼돈으로 느껴지고, 이를 싹 다 버리고 깨끗하게 다시 시작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심지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영화 필모그래피를 훑을 때도 그렇다. 다시 처음부터, 전문가에 의해 잘 기획된 브랜드처럼 일관성을 가지고 커리어를,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에 몇 년 동안 애정을 갖고 운영해 온 블로그를 정리하고 새 계정을 만들거나, 꽤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작업물을 지워버린 경험도 숱하게 있다.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을 것처럼 지우고서, 예전 자료가 필요해 뒤늦게 복구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일도 빈번하다. 잠깐 밀려드는 충동에 그간 쌓아 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건 아무래도 더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얼마 후면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특히 시나리오를 쓸 때 지금껏 쓴 글을 모조리 지우고픈 충동이 가장 강하게 찾아온다. 캐릭터가 다음 대사를 당장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중반까지 달려온 전개가 터무니없어 보일 때, 이야기의 결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때, 더 이상 매달려 봤자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어쩌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막막함을 견딜 자신이 없다는 것’에 가깝다. 경험상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마나 납득 가능한 최선의 수를 떠올리고 나면, 의외로 다음 전개는 자연스럽게 줄지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 ‘작가의 벽’을 몇 번이고 뚫을 각오를 해야만 오롯이 작품의 결말에 이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좋은 시나리오가 될지 어떨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혹자의 말처럼, 높은 확률로 그리 봐줄 만한 글은 아닐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Ctrl + A’와 ‘Delete’ 버튼을 차례로 누르고픈 유혹을 느낀다.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햇볕에 잘 말린 빨래처럼 뽀송한 마음으로 뭐든 끝까지 해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이는 일순간 눈앞에 아른거리는 착시에 불과하다. 우리는 매년 2월 즈음이면 연초에 연간 회원권을 끊고도 헬스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의 앙상한 끈기를 쉽게 비웃을 수 있지만, 우리도 그러지 않으리라고는 자신할 수 없다. 집필 도중에 글을 지워버리는 것은, 마리오가 달리던 중에 버섯 괴물과 부딪혀 스테이지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죽었던 지점까지 전보다 쉽게 이를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해치운 적들을 또 해치우고, 똑같은 코스를 지루하게 반복해야 한다. 결국 그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결승선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고 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은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의 쌍둥이 동생이 아닐까.

다행히 우리는 마리오가 아니라서, 버섯이나 거북이 따위의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도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그간 달려온 길이 물거품이 되진 않는다. 컴퓨터로 하는 일이라면 저장 기능도 있어서, 매번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도 없다. 불시에 찾아오는 막막함에 속아 포기하거나 지워버리지만 않는다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글을 지우고 싶은 충동과 싸우고 있다. 별다른 통찰이랄 것도 없는 괜한 소리를 지껄이는 게 아닐까, 다른 주제로 글을 쓰면 더 잘 써지지 않을까, 이 글이 책으로 출판되어 독자에게 읽힐 날이 오기나 할까... 무수한 마음의 소리가 글의 완성을 방해하며 그만둘 것을 종용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글을 완성하고 나면, 이 같은 자기검열의 목소리는 빠르게 힘을 잃는다. 지금껏 써 놓은 게 아까워서이기도 하고, 전체 그림을 그리고 나면 어디에 구멍이 나 있는지, 그 구멍을 어떻게 기우면 보다 나은 그림이 될지 한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다 쓰기 전까지는 알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어떻게든’의 위력을 믿고 써야 한다. 완성된 그림을 보기 전까지는 캔버스를 수놓는 불규칙한 붓질이 내 의도와 비전을 온전히 담은 한 폭의 그림으로써 성립될 거라는 것을 믿기 어렵기 때문에. 그동안 널브러뜨리듯 쌓아 온 글과 영화들 중 마음에 안 차는 것들은 정리하거나 보기 좋게 재구성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로 그 혼돈이야말로 나를 그 무엇보다 성실하게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결과물일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일관적인 콘셉트, 특정한 아이덴티티 컬러로 정돈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브랜드’가 아니니까. 이 지저분함을 내 나름의 개성으로써 포용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더 이상 ‘모두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강박’과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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