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떳떳할 수 있을까.
“감독님, 요즘도 시나리오 쓰고 계세요?”
작품을 함께했던 배우 혹은 동료 스태프들을 만나 뵐 때 종종 이 같은 질문을 맞닥뜨린다.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라는 말에 한 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느냐’는 물음에 또 한 번 마음이 요동친다. 불시에 원투 펀치를 얻어맞은 듯 한동안 정서적 그로기 상태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다음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지 못한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상대에겐 별 의미 없는 인사말에 불과했을 이 질문이 주는 중압감은 더욱 커진다. 준비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괜한 자격지심을 느낄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자신이 과연 ‘감독님’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한번 따져 물어봐야 한다.
작품 준비 유무를 떠나서도 ‘감독님’이라는 말에는 어쩐지 나를 뜨끔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촬영 현장을 벗어나 누군가로부터 ‘감독님’으로 불리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워 주변의 눈치를 살피곤 한다. 볼품없는 행색의 나를 보며 누군가 분명 ‘저 사람이 감독이라고?’라며 수군거릴 것만 같아서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 사장님, 원장님 등과 같이 ‘감독님’ 또한 누군가의 직업이나 직책 따위를 일컫는 말에 불과한데, 사람들이 나를 뭐라도 되는 사람으로 알까 봐 괜히 혼자 얼굴을 붉혀 온 것 같다. 하지만 ‘감독님’이라는 호칭의 거품을 걷어내고 보더라도, 어쩐지 ‘내가 감독님으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제자리에 남아 있다.
나와는 최근 네 편의 작품을 함께 작업한 음악감독님을 만나기 위해 대구로 간 적이 있다. 당시 작업하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서 음악감독님의 단골 레코드 바로 자리를 옮겨 깊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영화, 드라마 등 작품 의뢰가 없을 때에는 게임이나 행사 음악 작곡, 인디 밴드 프로듀싱, 강연 등의 일을 맡아 하신다는 말을 듣고, 음악감독님 역시 나처럼 작품과 생계를 위한 활동을 병행하며 비슷한 지점에서 고민하고 분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도 ‘작곡가님’으로 불리는 게 민망할 때가 있어요. 음악 작업도 안 하고 있는데 무슨 작곡가냐고(웃음).”
작업의 특성상 일 년 내내 영화를 찍을 수도, 음악을 만들 수도 없기에, 작품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직장을 다니거나 프리랜서로서 영화와 음악의 주변부를 맴돌며 다음 작품을 기약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기간이 너무 길어져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나는 감독(혹은 작곡가)’이라는 정체성이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호칭으로 불리는 게 부끄럽지 않도록 꾸준히 내 작업을 해 나가며 스스로 중심을 잡는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단편영화 추가 촬영을 마치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 지루하게 고속도로를 내달리던 차 안에서 문득 PD가 물었다. “감독님은 감독님이 영화 찍는다는 거 부모님께 말씀 드리세요?”
내가 그랬던가, 잠깐 생각해 본 나는 곧바로 ‘아니오’라고 답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금까지 부모님께 내 영화를 보여 드린 것은 학교 졸업 작품 상영회 때가 유일했다. 그조차도 왠지 아버지에겐 죽어도 못 보여 드릴 것 같아서 어머니만 간신히 초청한 것이었다. 상영회가 진행되는 내내 멀리 뒷자리에 앉은 어머니가 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마음 졸이고, 상영회가 끝난 후에도 차마 소감을 여쭤보지 못했었다. 굳이 큰돈을 들여 단편영화 같은 걸 만드는 자식을 반길 부모님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나 싶은 동시에 ‘과연 내 작품을 궁금해하시긴 할까’ 싶은 마음에, 졸업 후에는 내가 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을 미리 전하거나 작품을 보여드리는 일이 없었다.
얼마 뒤, 오랜만에 어머니와 단둘이서 외식을 하던 중 문득 그날 차 안에서 PD와 나눈 대화를 떠올린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엄니, 저 얼마 전에 영화 찍었어요. 전에 며칠 서울 다녀온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딱히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꺼낸 말은 아니었는데, 어머니는 짐짓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셨다. “돈 많이 썼제...?”
내가 찍은 영화의 내용이나 준비 과정보다는 그것에 들인 돈이 얼마인지를 걱정하시는 어머니가 섭섭할 법도 한데, 나는 왠지 그게 참 우리 어머니답고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나는 여느 영화 속 인물들처럼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크게 품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금세 화두를 바꿔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를 보며, 언젠가 좋은 자리에서 내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이 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나 친구처럼, 가장 가까운 만큼 평가받기 두려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그 후로는 더 이상 누군가로부터 ‘감독님’이라고 불리는 게 지금처럼 낯간지럽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