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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꼰대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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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토끼 Jan 05. 2022

라떼는 말이야 - 체육대회에서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일 년에 두 번 운동회를 했다. 

나는 시골에 작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초등학교라는 단어 말고 국민학교라는 단어를 쓰던 그 시절 다녔던 나의 학교는 굉장히 작았고 한 반에 서른 명이 조금 넘고 한 학년이 두학급이 겨우 되는 학교를 다녔다. 작은 학교라서 그랬던 건지 우리 때는 다 그랬던 건지 몰라도 체육대회를 봄에 한번 가을에 한번 1년에 두 번 했다. 


 가을 운동회는 청팀 백팀으로 나누어서 하는 보통 운동회였지만 봄에 하는 체육대회는 팀을 나누는 것부터 좀 독특했다. 사는 지역에 따라 호랑이팀 사자팀 코끼리팀 이렇게 동물 이름으로 나누었다. 팀도 5개 정도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머지 두 팀은 이름이 뭐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동네 별로 팀을 나누다 보니 앞 동네에 속하기도 애매하고 옆동네에 속하기도 굉장히 애매했던 우리 집은 팀을 나눌 때마다 한 번은 호랑이팀이었다가 한 번은 사자팀이었다가 선생님들이 어느 팀에 배치를 해주느냐에 따라 매년 팀이 달라졌다. 또 동네별로 나눈 팀이라 그런지 부모님들이 함께 참여하는 종목에선 은근 경쟁이 더욱 치열했다. 지금으로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거 아니냐며 엄청 논란이 될 팀 나누기지만 그땐 그랬다. 그렇게 팀 나누기를 했다.  

 

 봄에 했던 체육대회에는 없는 마스게임이 가을운동회에는 있었다. 부채춤이나 강강술래 곤봉 돌리기 맨손체조 왈츠까지 우린 한 달 전부터 수업시간을 쪼개서 아침 조회시간에 방과 후에 쉴 틈 없이 연습했다. 그 덕분에 수업을 하지 않는 건 좋았지만 땡볕에 연습하느라 얼굴이 시커멓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얼음물이 필수였던 날이었고 그렇게 열심히 여러 가지 마스게임을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운동회 전날이 되었다.  운동회 전날에는 실제 운동회보다 더욱 치열하게 예비 운동회를 했다. 부모님들만 안 계시고 맛있는 도시락만 없을 뿐이지 실제 운동회가 똑같이 진행되는 운동회라 가을 운동회는 어찌 보면 우리 입장에선 두 번 한 것이나 똑같았다. 그래서 연습에서 너무 힘을 빼고 다음날 아파서 못 뛰는 친구들도 있었다.


 대망의 운동회날 아침부터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에 등교한다. 교실에 들어가서 각자의 의자를 가지고 우리 팀이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아홉 시부터 시작된 운동회는 전날 연습했던 것과 똑같이 진행된다. 대망의 점심시간을 알리는 박터뜨리기. 1학년 아이들이 운동장 중앙에서 열심히 자기 박을 향해 오재미를 터뜨린다. 청색으로 된 박이든 홍색으로 된 박이든 박이 터져서 "점심 맛있게 드세요"라는 문구가 나와야 점심시간이 시작되는데 야속한 박이 왜 그리도 안 터졌는지 얼른 가서 맛있는 도시락을 먹고 싶은 생각에 목이 터져라 우리 팀을 응원했다. 

 

 엄마가 새벽부터 고생해서 온 가족이 함께 먹을 도시락을 싸오셨다. 3단은 되는 찬합에 김밥 한통 과일 한통 요구르트 한통 식구가 많았던 우리를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서 엄마가 준비한 도시락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마스게임을 진행할 때는 옷도 갈아야 입어야 해서 더욱 바쁘다. 부채춤이나 강강술래 같은 경우 더워도 체육복 위에 한복을 입고 족두리를 쓰고 제법 의상을 갖추고 진행한다. 엄마 아빠는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쁘고 요즘 같다면 삼각대 놓고 핸드폰으로 동영상도 찍었을 텐데 그땐 사진 한 장 한 장이 귀한 필름 카메라였다. 


 운동회의 마지막은 늘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이어지는 청팀 홍팀 계주였다. 저학년들은 반 바퀴만 뛰는 운동장을 고학년 언니 오빠들은 한 바퀴를 뛰는 모습에 어찌나 감탄하고 멋지다고 생각했던지 뛰다 넘어지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우리 팀이 이기길 바라며 큰소리로 응원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면 결과에 따라 상품을 나누어주셨다. 연필도 공책도 귀했던 그 시절엔 달리기하고 받은 도장을 확인하고 받는 공책 한 권이 이긴 팀에게 주어지는 연필 한 다스가 그렇게 좋았다. 상으로 받은 공책과 연필엔 상이라고 보라색 도장이 크게 찍혀있었는데 그 도장이 뿌듯했고 그 도장이 찍힌 공책을 골라서 먼저 쓰기도 했다. 


 라떼는 말이야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건 단풍이 아니라 곤봉 돌리기와 부채춤 강강술래 같은 마스게임이었어. 땡볕에서 연습하는 건 힘들었지만 운동회 당일에 멋지게 연습한걸 엄마 아빠 앞에서 뽐내는걸 뿌듯해했고 친구들과 경쟁도 하며 협동도 하며 우리 팀을 위해 하루 종일 목 터져라 응원했던 그날의 열기와 열정이 지금도 나에게 남아있을지 그때의 내 모습을 찾아보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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