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안내양이 있던 시절은 아니었다.
요즘 참 잘 이용하지 않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대중교통이다. 이사 오기 전에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지역에 살아서 지하철도 버스도 타고 마음껏 여기저기 누비면서 다녔는데 지금 이사 온 곳은 대중교통이 잘 없기도 하지만 운전을 시작하면서 그나마도 잘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어렸을 땐 달랐다. 버스가 잘 안 오는 곳에 살았어도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버스 밖에 없어도 학교를 다니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내가 처음 학교 들어갔을 당시 버스요금은 80원이었다. 여기서 잠깐 당시의 물가를 이야기해보자면 둘리바 아이스크림이 하나에 50원이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매일 주는 100원에 20원씩 남는 것을 모아 금요일에는 엄마가 100원을 주지 않았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20원씩 남은걸 모았다가 금요일에 80원의 요금을 내야 했다. 지금 학생들이라면 깜짝 놀랄만한 사실이지만 나는 토요일도 학교에 갔다. 3교시만 하고 오긴 했지만 요즘 학생들처럼 주 5일 학교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 토요일 버스요금은 어떻게 했느냐?! 일찍 끝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걸어가는 날도 있고 때때로 아빠가 데리러 오는 날도 많았다. 토요일은 어쩐지 조금 특별해지는 그런 날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버스 이야기를 계속해보면 초등학교는 그렇게 엄마가 주는 100원 자리 동전을 이용해서 버스를 타고 다녔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회수권을 사용했다. 엄마가 조금 큰돈을 주면 그 돈으로 한 달치 회수권을 구입했다. 자르는 선이 없어서 가위로 한 장씩 오려야 했다. 버스에서 내릴 땐 기사 아저씨 옆에 준비되어있는 돈 넣는 통에 한 장씩 잘 잘라놓았던 회수권을 넣고 내렸다. 신랑은 회수권을 사용하기 전에 토큰을 먼저 사용했다고 얘기하던데 지역이 나랑 달라서 그런 건지 나는 토큰은 사용해본 적이 없다. 신랑은 자긴 이래 봬도 서울 사람이라 그런 거 썼다며 얘기했지만 아무래도 신랑과 나 사이에도 아주 작은 세대차이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한발 더 앞서 나가보자면 언니는 학교 다닐 때 안내양 언니도 있다고 얘기했다. 언니와 나의 학년은 고작해야 2년 차이인데 그 2년 차이로 안내양이 있고 없고가 차이가 있다는것도 놀랍다. 또 하나 나는 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신랑이 출퇴근 지하철을 이용할 땐 푸시맨이 있다고 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많은 사람이 이용해야 하니 문이 열려서 사람들이 타려고 할 때면 뒤에서 밀어서 더 많이 탈 수 있게 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지금은 버스도 몇 분 뒤 도착 이렇게 안내해준다. 버스는 물론이고 지하철까지 얼마 뒤면 도착하는지 알려주고 지금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어디에서 오는 중인지 이젠 대중교통이 되어버린 택시조차도 콜을 부르면 어디서 출발하는지 지도를 통해 보여주고 도착해서는 전화연결까지 해주는 친절함 신속함 정확함까지 다 갖추고 있다. 하지만 라떼는 안 그랬다. 버스가 언제 오는지도 알 수 없었고 어디서 출발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해야 했다. 그땐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분명하게 남아있고 그런 세대를 거쳐가면서 우리는 버스카드라는 것이 당연하게 사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 버스카드조차도 휴대전화를 이용해서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하는 시대에 와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아니라 기계와 대면하는 일이 더 많아진 지금의 시대에 어쩌면 그때의 사람 냄새났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당연 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