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놀이터가 따로 없었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이 망까기 말타기 놀다 보면 하루가 너~어무나 짧아' 그렇다 정말 짧았다.
우리 어릴 적에는 그랬다. 이렇다 할 놀이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고 놀이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시설이 좋은 것도 여기저기 많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을에 따로 조성된 놀이터가 있었느냐?! 그것 또한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어릴 적엔 그랬다. 공터가 놀이터였고 나 같은 경우 논과 밭 산과 들이 놀이터였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라떼는 말이야를 시작하면 도대체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먹을 만큼 먹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아직 젊다. 또 나는 아직 청춘이다. 이와 별개로 내가 어려서 자라온 환경은 같은 나이의 신랑과 비교해보면 놀랍게도 꽤 시골이었고 그중에서도 우리 집은 특히나 마을에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집들과 좀 많이 떨어져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는 동네 친구보다는 언니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았다. 마을이라는 것이 따로 없는 곳이다 보니 놀이터라는 것은 물론이고 집 앞에 그 흔하다는 구멍가게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엄마가 심부름으로 두부라도 사 오라고 하면 어린아이의 걸음으로 왕복 40분은 해야 했다. 그만큼 시골인 곳에 놀이터가 있을 리 없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 사실 놀이터라는 곳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았다.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내가 어린 시절 학원을 다녔던 곳에 생겼던 아파트가 생겨 놀이터의 존재를 알기 전까지 나에게 유일한 놀이터는 아빠가 집 앞 나무에 걸어준 그네가 전부였다.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다 보니 요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걸 보면 도대체 무슨 놀이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미끄럼틀도 타고 시소도 타고 그네도 타고 이것저것 타고는 있지만 나 어릴 적 놀았던 것에 비하면 그렇게 활동적이고 협동적인 놀이는 별로 없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이 비석 치기 십자가 개 뼈 따귀 흙바닥에 신발 닳는 줄 모르고 열심히 줄을 그어가며 했던 놀이들이었다.
그런 놀이 중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놀이는 고무줄놀이였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지만 집에 오면 아까 말한 것처럼 동네 친구가 없어 잡아줄 사람 없는 검은색 고무줄을 나무에서 나무 사이에 묶어두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지금 생각하면 그 노래의 출처는 도대체 알 수 없다. 전우의 시체는 왜 넘었던 걸까? 그렇게 넘은 전우의 시체만 지구 반 바퀴는 돌 정도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 딸의 어린이집에서 고무줄놀이를 했다며 사진이 올라온 걸 보았다. 그래서 딸에게 노래는 뭐로 불렀냐고 물어봤더니 우리 어릴 적 노래가 아니라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고무줄 세대가 아닌가 보다며 엄마가 제대로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에 문구점에 가서 고무줄을 구입했다. 지금도 팔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고무줄놀이할 생각에 신나서 아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나갔다. 아이들 보고 잡고 있으라고 해도 서로 하고 싶으니 잡고 있을 거 같지 않아 어릴 적 나의 모습을 회상하며 적당한 곳을 찾아 양쪽을 묶어두고 아이들에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하며 내가 더 신나서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세상에 우리 어릴 적에는 친구들이 하는 것만 보고도 대충 익히고 넘어갔던 그 놀이를 아이들이 따라 하지 못하는 걸 보았다. 또 우리 어릴 적에는 해 뜰 때부터 시작해서 해질 때까지 엄마가 밥 먹어라 하고 말할 때까지는 고무줄놀이 거뜬하게 해 주었는데... 아이들은 두 번 따라 하더니 힘들다며 주저앉아버렸다. 우리 어릴 때 소모가 얼마나 대단했던 것일까 새삼 놀라면서도 지금까지 내가 이 깡을 가지고 버틸 수 있는 건 다 어릴 적엔 알지 못했던 체력단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라떼는 말이야 고무줄이 머리 위까지 올라가고 친구가 만세 높이까지 들어도 거뜬하게 다리 짝짝 찢어가며 했던 고무줄놀이인데 말이야! 아니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지금 이렇게 활동량이 줄어든 것은 우리 때와 또 다른 생활환경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