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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낭토끼 Nov 16. 2022

라떼는 말이야 - 병원에서

주민등록번호 그게 뭔데?!

 

 요즘 아이와함께 병원에 방문할때면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스마트폰 앱을 통해 방문하려고 한 병원에 미리 접수 하는것이다. 대기 시간을 최소로하고 나보다 앞서 접수하여 대기하고 있는 대기자가 몇명인지 알 수 있는 앱이다. 접수자가 많을 경우 내 앞에 대기자가 5명쯤 남았을때 카톡으로 따로 알림을 주기까지하는 아주 스마트하면서 편리한 앱니다. 병원 진료 후에는 주변의 약국이 어디있는지도 확인 할 수 있고 처방전에 나와있는 QR코드를 찍으면 내가 어떤 약을 처방 받았는지 기록도 해준다. 그야말로 스마트폰 하나로 다 되는 아주 편리한 세상이다. 


 라떼는 그랬다. 휴대전화라는것이 없을 그 무렵 우리가 아플때 꼭 챙겨야하는것은 전화가 아니라 의료보험 카드였다. 집집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었던 의료보험카드였고 병원에 간다고 하면 의료보험카드가 있어야 접수가 가능했다. 의료보험카드가 없으면 내가 어디의 누구인지 확인 할 수 없었다. 진료를 어떻게든 볼 수 있었지만 굉장히 어렵고 까다로운 과정들이라 의료보험카드를 가지러 집에 다시 다녀오기도 할 정도로 병원 갈때 꼭 필요한 의료보험카드였다.  


 학교에서 갑자기 아프거나 어딜 다친 경우, 바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의료보험카드가 없으니 병원에가도 접수를 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의료보험카드에는 식구들의 주민등록번호도 다 나왔다. 가족이 많았던 우리집 의료보험카드는 아빠 밑으로 7명의 식구들이 줄줄이 기록되어있었다. 그런 이유로 학교에서 가족사항을 확인하거나 본인 확인을 할때 주민등록등본 대신 의료보험카드의 사본을 제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어린이들에게 지금은 신분 확인을 할 도구가 주민등록등본이라면 예전엔 의료보험카드가 신분 확인을 해주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던 의료보험카드였다. 


 지금처럼 휴대전화를 통해 앱으로 미리 접수하는건 당연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병원이 진료를 몇시부터 몇시까지 하는지도 전화해서 확인해야하는 일이었지, 휴대전화 앱을 통해 진료중인 병원을 찾는것은 그 시대에서 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은 병원에 가서 접수를 할때도 스마트폰으로 미리 접수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만 불러주면 접수대의 선생님께서 알아서 조회해서 접수를 해주신다. 하지만 라떼는 병원에 가면 의료보험카드부터 제출해야했다. 접수대에 있는 선생님은 내가 제출한 의료보험 카드를 확인한 후 뒤에 보관되어있는 수 많은 종이 차트들 중에서 나의 차트를 찾아주셨다. 그래서 병원에는 병원 특유의 냄새도 있었지만 수 많은 종이차트에서 나는 특유의 종이 냄새도 있었다. 그 많은 종이차트들이 전산화되어 컴퓨터로 조회만 하면 다 나오는 세상이 된지 얼마 안되었다는것이, 그것에 또 너무 익숙해서 이젠 의료보험 카드를 별도로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것이 당연해진것이 불과 얼마 안되었다는 사실도 돌아보면 너무 신기한 세상이다. 




 몇년전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때 아이가 갑자기 열이났다. 해열제를 먹여도 내려가지 않는 열에 어쩔수 없이 일본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병원을 경험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았던 나와 다르게 일본 병원에서는 아직도 의료보험카드 같은 카드와 종이차트를 이용하여 진료를 보고 있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밝고 청결하면서 친절한 의사선생님 간호사선생님과 다르게 어둑하고 고압적인 분위기의 선생님들에 기가 찼다. 물론 내가 방문한 병원만 그런 분위기일수도 있지만, 그 당시 일본에 거주하고 있었던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본은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대부분인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해열제를 처방해주는것 말고는 다른 조치를 취해준 일도 없었으면서 병원에서 약국까지 다녀오는데 걸린 시간이 두시간 넘게 걸린데 분통이 터졌다. 우리나라였다면 두시간이면 병원 진료에 약국은 물론이고 밥까지 먹었을 시간이다. 아무리 아날로그적 감성을 따르는 일본이라지만 약 봉투에 손으로 처방해주는 약을 기입하고 의료보험카드 같은것에도 수기로 작성하는걸 보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내가 스마트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 일본에서의 진료는 라떼는말이야라며 내가 기억하는 세상으로 타임슬립을 한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비대면 진료가 더욱 당연해지고 사람간의 접촉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이런 시스템이 더욱 자리잡아가는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병원시스템은 라떼는말이야라며 회상하던 그때도 지금의 일본보다는 빨랐던것으로 기억한다. 무조건 빠른것이 좋은것은 아니다.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친근함이 있고, 따스함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나의 차트가 간호사 선생님의 손을 통해 의사선생님께 전해지고 접수대 앞에서 기다리다 선생님의 부름으로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던 그때의 그리운 기억으로 라떼는 말이야를 생각하게 될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스마트한 세상에 익숙해져버렸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미리 접수 한 후, 긴 대기시간을 갖지 않아도 되는 지금 세상의 편리함이 더 좋은건 어쩔 수 없다. 기다림이라는걸 정말 싫어하는 나로서는 따스한 아날로그 감성보다 나의 시간이 더 귀중한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라떼는말이야를 외치면서도 지금의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져 온고지신이란 결국 말뿐인것은 아닐까 오늘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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