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수용하기

by 지엔

당신은 당신의 ADHD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아마 진단을 받은 후 한번쯤은 'ADHD는 받아들여야 합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ADHD를 마주한 것은 마치 내 삶의 길이 변경되는 것 같은 큰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ADHD 진단을 받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구요.




혹시 애도 주기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본인이나 가까운 사람(혹은 반려동물)의 죽음과 같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큰 상실을 경험했을 때

감정과 반응이 변화하는 과정을 단계로 정리한 개념이에요.


첫 번째 단계는 부정(Denial)이에요.

이 시기에는 상실의 현실을 믿기 어렵고,

충격이나 현실감 상실과 같은 반응이 나타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분노(Anger)로,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지거나

화가 자신 또는 타인에게 향할 수 있어요.


세 번째 단계는 타협(Bargaining)인데,

“그때 내가 그렇게만 했더라면…”과 같은

후회나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네 번째 단계는 우울(Depression)이에요.

깊은 슬픔과 무기력감이 찾아오고,

상실의 무게가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수용(Acceptance)으로,

상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일상과 의미를 만들어 가려는 적응 과정이에요.


이 애도 주기를 한번 ADHD를 진단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대입해 보면 아래와 같이 나올 수 있겠지요

부정 : “설마 내가 ADHD라고? 나 그냥 게으른 거 아니었어? 이거 너무 과하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


처음에는 자기 특성을 단순한 성격 문제로 여기고

싶어 할 수 있어요.

스스로를 오랫동안 “부주의한 사람”이나

“의지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이를 ‘뇌 특성’으로 인정하는 것이 낯설고

혼란스러울 거에요.


분노 : "왜 아무도 그동안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던 거야? 어릴 때 발견했으면 나는 지금 달라졌을 텐데.”


자신의 삶을 떠올리며 억울함과 화가 올라오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겪어왔던 오해, 자책, 실패 경험들이

다시 떠오르며 가족, 학교, 사회에 대한 분노가

생기기도 합니다.

또한 “왜 이제서야 알게 됐지?”라는 감정도

함께 나타날 수 있어요.


타협 : “약 먹으면 다 괜찮아질까? 코칭이나 상담 열심히 받으면 금방 좋아질지도 몰라.”


현 상황을 바꾸기 위해 전략을 세우며

자기 자신과의 심리적 ‘협상’을 시도하는 시기입니다.

‘이제라도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고 믿으며

과도하게 계획을 세우기도 하지요.

때로는 “치료하면 나는 정상처럼 될 수 있다”는

기대가 포함되기도 하고요.


우울 : “내가 그동안 이렇게 힘들었던 게… 진짜였구나. 만약 일찍 알았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현실을 깊이 자각하며 슬픔이 찾아오고,

과거의 고생과 실패가 떠오르며 미련·후회·상실감이

몰려옵니다.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정체성 혼란, 무기력감, 자기연민이

등장할 수 있는 시기에요


수용 : "나는 ADHD가 있어. 그것도 나야. 이제부터 더 나를 이해하면서 살면 돼.”


마지막으로 수용하는 단계는

자신의 신경 특성을 인정하고 새로운 전략과

삶의 방식을 탐색하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장점과 어려움을 함께 바라보며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찾는 단계가 되지요.

이때 비로소 자기 연민(Self-compassion),

자기 존중감, 정체성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때로는, 아니 실제 많은 경우에서

‘ADHD를 가진 나의 정체성'을 수용하는 것이

잘 안되는 경우를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 알았으면 덜 힘들었을까…?”

“왜 그때 나는 그렇게 고생해야 했지?”

“그때 노력 부족이라고 욕먹었던 건 사실은…”

“나는 왜 항상 남들처럼 안 됐을까.”

“내가 겪은 실패들이 그냥 내 탓만은 아니었구나…

그런데 너무 늦게 알았어.”

“이제야 나를 알게 된 것 같은데… 너무 늦은 느낌이야.”

“나는 대체 누구였던 걸까?”

“그동안 내가 비정상/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건 뭐였지?”

“ADHD가 나의 전부는 아닐 텐데…

지금은 그게 나를 덮는 느낌이야.”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계속 힘들면 어떡하지?”

“약이나 코칭이 나한테도 효과 있을까?”

“내가 원하는 삶을 정말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그동안 너무 애썼는데… 그래도 부족했지.”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나 진짜 많이 버텼어.”

“누가 내 마음을 알아주긴 했을까?”


과거의 상처들이 ADHD 를 통해 재해석되면서,

동시에 허탈함이 오고,

내 잘못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긍정적 마음과 함께,

슬픈 마음도 같이 올 수 있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재정의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흔들림이 커지고,

희망과 불안이 공존하며 방향성이

흐려진 느낌이 올 수 있어요.

대부분 우울 단계의 생각까지 진행하면서,

위와 같은 자기비판과 자기연민이 번갈아 떠오르고,
때로는 섞여서 “복잡한 감정구름”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많은 ADHD 인들이 자신의

ADHD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혼란스러움, 수치심, 억울함, 분노,

희망에 대한 조급함과 막연한 불안, 슬픔, 공허함,

자기연민 등이에요.


ADHD를 수용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ADHD를 수용한다는 것은

"ADHD를 인정하고 그냥 살아"의 의미가 아니에요.

'수용한다는것 =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것,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움직이는

사람인지'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그 특성에 맞는 삶의 방식을

능동적으로 택하는 것이에요.


마치, 내 몸의 리듬과 호흡을 이해하고,

그 페이스에 맞춰 운동하는 법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죠.


“ADHD는 내가 가진 특성 중 하나야.

나의 전부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도 없어.”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

"나는 이렇게 움직일 때 더 잘 살아.”

“남들과 같을 필요 없어. 어제의 나와 비교할래.”

“어떤 건 어려울 수 있어.

그렇다고 내가 부족한 건 아니야.”


즉 ADHD를 수용하는 것이란,

나를 고쳐쓰는 게 아닌

나의 사용법을 알아가는 과정이에요.


하나 질문할게요. 당신의 삶은 어떤 단계에 가까운가요?

- 아직 헷갈리는 중

- 조금씩 이해가 되는 중

- 나답게 살 방법을 찾는 중

- 이미 내 방식으로 살아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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