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클리 실행기능-작업기억(언어적, 비언어적)

생각을 붙잡는 힘, 마음을 유지하는 기억의 기술

by 지엔

우리가 ‘기억력’이라고 부를 때,

사실은 단 하나의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특히 작업기억(working memory)

단순히 외우거나 기억하는 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서 정보를 붙잡고

조작하는 능력입니다.


즉, ‘기억해두는 힘’이 아니라

‘기억을 써서 생각하는 힘’에 더 가깝습니다.


이 작업기억은 두 갈래의 길로 나뉩니다.
하나는 언어적 작업기억,

다른 하나는 비언어적 작업기억입니다.


두 기억 시스템은 서로 긴밀히 협력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처리합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감각적 처리를 담당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언어적 작업기억: 머릿속의 ‘내적 대화창’


언어적 작업기억은 말 그대로,

‘말로 된 정보’를 머릿속에서 붙잡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상황을 떠올려봅시다.


“마트에 가면 우유, 달걀, 두부 사야지.”

이 문장을 말이나 소리로 외우고 있다면,

당신의 뇌는 이미 언어적 작업기억을 사용 중입니다.


이 기억은 ‘소리’나 ‘단어’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우리의 머릿속에서 스스로와 대화하는

‘내적 음성(inner voice)’을 매개로 합니다.


그래서 언어적 작업기억이 강한 사람은

들은 말을 빠르게 요약하거나,

강의 내용을 정리하며 머릿속으로 되뇌고,

문장을 구조화해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데 능숙합니다.


반면, 언어적 작업기억이 약하면

이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방금 들은 말의 순서를 기억하기 어렵거나,

긴 문장을 따라가기 힘듭니다.

읽은 내용을 바로 말로 정리하기 어려워하거나

대화 중, 상대의 말을 놓치거나 중간에 ‘무엇이었지?’

하고 멈추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대화중에 "미안한데 방금 뭐라고 했어?"라고 묻는 경우가 잦죠.


ADHD나 학습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

이 언어적 작업기억의 약화가 학습과

의사소통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메모, 녹음, 구어 반복, 시각화 도구를 통한

‘외부로의 기억 확장’이 필수적입니다.


비언어적 작업기억:

머릿속의 ‘시각적 무대’


비언어적 작업기억은 말이 아닌 그림, 장면,

감각으로 정보를 유지하는 능력이에요.
우리가 어떤 경험을 떠올릴 때 대부분은

문장이 아니라 이미지로 기억하죠.
어제 걸었던 골목의 풍경, 친구의 표정,

카페 조명의 따뜻한 색감...

이런 것들이 모두 비언어적 작업기억의 결과예요.


이 기억은 단순히 그림을 떠올리는 능력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공간적 관계를 함께 저장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때 그 사람이 내 앞에 앉아 있었지”처럼,
시공간적 맥락까지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거예요.


비언어적 작업기억은 ‘이미지’나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림처럼 떠올리고 재생하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말로 설명하기보단,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처럼 그려보는 거죠.


예를 들어 이런 장면을 떠올려볼까요?
“어제 친구와 갔던 카페의 테이블 위치,

조명, 앉은 자리 순서를 떠올려보세요.”
그걸 마음속에서 그림처럼 복원할 수 있다면,

이미 비언어적 작업기억을 사용하고 있는 거예요.


비언어적 작업기억은 일상 속에서

다양한 일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요.

입체적인 공간에서 물건이나 건물의 위치를 기억하고

길을 찾는 공간기억으로 작용해요.
사람의 얼굴이나 표정, 감정을 인식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그래프나 도표, 지도처럼

시각적인 정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에도 쓰여요.
또한 시간의 흐름이나 순서를 ‘그림처럼’ 떠올리며

생각하는 시각적 사고를 가능하게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 감각’을 유지하고

현재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도와줘요.




비언어적 작업기억과 시간 감각


특히 시간을 기억한다는 건

단순히 시계를 읽는 게 아니라,

‘이 일이 얼마나 걸릴지’,

‘지금이 전체 일정의 어느 지점인지’를

감각적으로 아는 거예요.


즉, 비언어적 작업기억은 시간을 시각화하고

흐름으로 체감하는 능력까지 포함해요.

그래서 이 기능이 약하면 ‘시간 감각’이 흔들려요.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거나,

반대로 멈춘 듯 느껴지고,

과거-현재-미래의 순서가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기도 해요.


비언어적 작업기억이 약할 때,

시간은 ‘선형적인 흐름’이 아니라 ‘조각난 순간들’로

느껴집니다.
아침부터 밤까지의 하루가 하나의 줄로 이어지지 않고,
“지금”이라는 작은 점들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조금만 쉬어야지” 했다가

한 시간이 사라지기도 하고,
“5분만 더 해야지” 하던 일이

어느새 새벽이 되어버리기도 해요.


또는 반대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보여
시간이 압축된 듯 빠르게 지나가 버리죠.

이건 게으름이나 무계획 때문이 아니라,

‘시간을 마음속에서 그리는 능력’이 약하기 때문이에요.

시계를 볼 때도 단순히 숫자를 읽을 뿐,
그 숫자가 실제 흐름이나 체감으로 연결되지 않아요.


그래서 ADHD 인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해요.
“시간이 도망가요.”
“하루가 너무 빨라요, 근데 아무것도 못 했어요.”
“내가 뭘 했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단순한 시간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을 마음속에서 기억하고 조율하는 능력’의

어려움이에요.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언어적 작업기억이 약할수록

더 잡히지 않는 대상이 되죠.

그렇기 때문에 ADHD형 뇌에게는

‘시각적 시간 보조장치’가 필요해요.
타이머, 플래너, 시각 타임라인, 색 구분 일정표처럼
시간을 ‘보이게 만드는 것’이

기억의 보조장치가 되는 이유예요.



두 기억의 균형이 무너질 때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적 작업기억과 비언어적 작업기억 중

한쪽이 조금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언어적 작업기억과 비언어적 작업기억은

서로를 보완합니다.

하지만

ADHD 성향의 뇌는 이런

언어적 정보-비언어적 정보의 연결이

약하거나 불균형한 경우가 많습니다.


즉, ‘말로는 알고 있는데 행동이 안 되는’ 현상이

여기서 생깁니다.

머릿속으로 “해야지”는 생각하지만,

그 장면을 ’시각적으로 그려서 실행으로 옮기는’

연결 고리가 약한 것입니다.

결국 이 두 축의 균형이 무너질 때,

'생각은 있지만 행동은 안되는' 현상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내일부터 운동해야지”라고

머릿속으로 다짐하지만,

그 ‘내일의 나’가 실제 장면으로

그려지지 않으면 행동은 시작되지 않지요.

언어적 명령이 비언어적 실행 이미지로

변환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오늘은 꼭 정리해야지” 생각했지만,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그대로 지나갑니다.
말로는 계획했지만,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미지는 떠오르는데

그것을 언어로 설명하거나 구조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ADHD나 실행기능 약화를 가진 사람에게는
“말로 붙잡고, 눈으로 보이게 하는 전략”이

매우 중요합니다.


즉, 언어적 정보와 비언어적 정보 시스템을

잇는 다리를 직접 세팅해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으로는

말로 한 것을 ‘시각화’하기 (화이트보드, 플래너, 도식화 등),

시각으로 본 것을 ‘언어화’하기 (메모, 요약, 말하기),

머릿속이 아닌 외부 공간을 '내 기억저장소의 확장공간'으로 이용하기 (External Working Memory)

등이 있습니다.


기억을 도구로 쓰는 법

작업기억은 타고나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훈련과 연습을 통해

기억을 쓰는 습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건 암기를 위한 훈련이 아니라,

정보를 머릿속에서 구조화하고 표현하는 훈련입니다.


1. 시각화 루틴 만들기

오늘의 할 일을 ‘리스트’가 아닌 ‘타임라인 그림’으로 표시하기.

2. 언어화 루틴 만들기

머릿속 계획을 말로 설명하거나, 혼잣말로 정리하기.

3. 외부 기억 장치 활용하기

앱, 메모지, 화이트보드, 스티커 등을 통해 ‘뇌의 확장 공간’을 확보하고,

머릿속 기억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기억이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창고가 아니라,
생각을 꺼내고 연결하는 작은 실험실입니다.

기억은 저장의 기술이 아닌 조직의 기술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조건 많은 정보를 기억하기' 가 아니라

'내 기억이 잘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세팅하기' 입니다.


정리하면, 언어적 작업기억은 ‘말로 붙잡는 힘’,

비언어적 작업기억은 ‘그림으로 붙잡는 힘’입니다.

이 둘은 각자 다르게 작동하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합니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유지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것.”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조직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균형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생각의 뇌’와 ‘감각의 뇌’를

함께 쓸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기억을 다루는 방식이 곧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됩니다.


* 핵심 요약

작업기억(Working Memory)
→ 정보를 ‘저장’이 아닌 ‘활용’하는 능력
→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서 정보를 붙잡고 조작


유형 언어적 작업기억: 말·소리 기반, 내적 대화창

비언어적 작업기억: 이미지·장면 기반, 시각적 무대


언어적 작업기억의 특징
→ 들은 말 요약, 문장 구조화, 논리적 사고
→ 약할 경우: 말 순서 잊기, 긴 문장 처리 어려움


비언어적 작업기억의 특징
→ 그림·공간·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기억
→ 공간기억, 얼굴·표정 인식, 시각적 패턴 해석, 시간 감각 유지

비언어적 작업기억과 시간감각과의 관계

→ 시간의 길이·위치를 ‘감각’으로 파악
→ 약할 경우 시간 왜곡: 빠르거나 멈춘 듯, 하루의 흐름이 끊김

ADHD 와 시간감각 관련 어려움

→ 시간과 장면을 ‘마음속에 그리는 힘’이 약함
→ 시계 숫자와 체감이 연결되지 않음


보조 전략

→ 타이머·플래너·시각 타임라인 등으로 시간 ‘가시화’
→ 언어적 계획을 시각화, 시각적 이미지를 언어화


균형의 중요성
→ 언어적 기억 ↔ 비언어적 기억의 연결이 핵심
→ 말로는 알지만 행동이 안 되는 이유


핵심 결론
→ 언어적 작업기억: ‘말로 붙잡는 힘’
→ 비언어적 작업기억: ‘그림으로 붙잡는 힘’
→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현재를 조직하는 기술’



작가의 이전글올인 대신 확장, 내가 선택해야 할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