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체성을 6년 반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저는 중3부터 고3 여름까지 ADHD 치료를 받고 의사선생님 소견하에 치료를 종결했다가, 6년 반만에 ADHD를 재진단 받았습니다.
사실 의학적으로는 ADHD 를 ‘재진단’ 받았다라는 말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에요.
ADHD는 감기처럼 나았다가 다시 생기는 병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뇌의 발달 과정 속에 자리 잡은 특성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제 삶을 설명하려면 이 단어가 꼭 필요했습니다. 청소년기에 겪었던 ADHD와 성인이 되어 다시 확인한 ADHD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중학교 3학년 무렵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의 일상은 감정과 충동이 지배했습니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화를 냈고, 사소한 일에도 과도하게 반응했지요. 순간의 충동을 참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앞서갔습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 눈에는 단순히 “사춘기 반항”처럼 보였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 자신에게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기분이 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면 곧잘 대답했고, 설명을 들으며 바로 반응하는 것은 누구보다 잘했지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에도 성적은 기대보다 낮게 나왔습니다. 또, 수업 중 선생님이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을 잊어버려 제출하지 못하거나 늦게 제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엔은 수업시간에는 제일 적극적이고 대답도 잘하고 모범생인데, 이상하게 점수가 낮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내내 학교 선생님들께 들어왔던 평가입니다.
순간 집중과 반응은 되지만, 기억하고 관리해야 할 중요한 일들은 자꾸 손에서 흘러나가 버렸던 것입니다. 결국 성적은 떨어졌고, 저는 스스로를 탓하며 자책에 빠지곤 했습니다. 반면 집중이 안 될 때에는 교과서보다는 창밖의 풍경이나 친구의 농담이 더 크게 다가왔고, 수업시간에도 금방 수업 외의 것에 관심이 뺏기다가 보면 어느 순간 수업이 끝나 있기도 했으며, 과제를 하다가도 금세 흥미를 잃고 다른 일로 넘어가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ADHD의 전형적인 특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ADHD에서는 선택적 주의집중이 어렵기 때문에, 수업처럼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상황보다는 창밖의 움직임이나 친구의 농담 같은 즉각적인 자극에 더 쉽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또, 지속적 주의력이 부족해 수업을 시작할 때는 몰입했더라도 끝까지 이어가기 힘들고, 어느 순간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일이 잦지요. 더불어 실행기능(executive function)의 약화 때문에 계획·정리·마무리 같은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겨 과제를 제출하지 못하거나 중간에 포기하는 일이 흔합니다. 여기에 작업기억(working memory)의 약점까지 겹치면, 분명 수업 시간에 들은 과제 지시를 기억하지 못해 놓치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교사들은 “수업 참여는 적극적인데 성적은 낮다”라고 평가하고, 저는 그런 괴리 속에서 스스로를 탓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학창 시절 한창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던 때에는 학교를 며칠 빼먹기도 했습니다. 우울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날려보고자 위험한 행동에 손을 뻗쳤고, 그 행동들을 고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ADHD로 인한 충동성, 어려서부터 겪어온 몇가지 PTSD 사건으로 인한 우울증과 절망감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연구에서 청소년기의 ADHD는 충동적 행동과 정서적 기복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교실에서 돌아다니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끊거나,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모습이 대표적이에요. 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ADHD는 단순히 집중을 못하는 병이 아니라, 제 삶 전체를 흔드는 파도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된 저는 다시 병원을 찾았습니다. 6년 만의 일이었지요.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더 이상 “문제아”라는 꼬리표는 붙지 않았습니다. 대학생이자 사회 초년생으로,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청년이었어요. 하지만 저를 힘들게 하는 건 여전히 ADHD였습니다. 다만 그 모습은 청소년기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저는 여전히 꽂히는 주제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했고, 대화 중에 불쑥 끼어드는 버릇을 고치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중요한 과제나 업무의 마감일을 놓치는 일이 잦았고,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누군가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해 난처해지기도 했지요.
또 다른 문제는 과몰입이었습니다. 어떤 주제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어요. 흥미 있는 분야라면 밤을 새워가며 파고들었지만, 그 결과 다른 중요한 일들은 미뤄졌습니다. 일상은 균형을 잃었고, 주변 사람들은 저를 ‘집중력이 좋은데 산만한 사람’이라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제가 받은 진단은 복합형 ADHD였습니다. 청소년기에는 감정과 충동이 ADHD의 얼굴이었다면, 성인기에는 부주의와 실행 기능의 어려움이 더 두드러졌던 거예요. 같은 ADHD지만, 얼굴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지요.
ADHD는 단순히 “어릴 때 산만하다가 크면 괜찮아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에 ADHD를 진단받은 사람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증상을 경험한다고 해요. 다만 그 양상이 달라질 뿐입니다.
아동·청소년기 ADHD는 눈에 보이는 행동 문제로 나타납니다. 산만하게 돌아다니고, 수업 중에 끼어들며, 충동적으로 화를 내지요. 정서 기복이 심하고, 또래 관계에서 갈등이 잦습니다.
성인 ADHD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어려움으로 나타나요. 시간 관리가 안 되고, 직장에서 마감을 놓치며, 중요한 약속을 자주 잊습니다. 대인관계에서는 무심코 한 말이나 잊어버린 약속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요. 외부에서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당사자는 삶 전반의 균형을 잃고 늘 피로감을 안고 살아갑니다.
즉, 청소년기의 ADHD가 “눈에 보이는 문제행동”이라면, 성인기의 ADHD는 “보이지 않는 생활 속 난관”이에요. 두 모습은 다르지만, 뿌리는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과정을 “재진단”이라고 부릅니다. 의학적으로는 맞지 않는 표현일 수 있지만, 제 삶을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한 단어였어요. 같은 ADHD이지만, 청소년기의 ADHD와 성인기의 ADHD는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청소년기 저는 ADHD 때문에 스스로를 문제아처럼 느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봤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ADHD는 여전히 저를 힘들게 하지만 동시에 저를 이해할 언어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제 ADHD는 단순히 ‘산만한 아이’라는 낙인이 아니라, 저의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지요.
ADHD는 끝나지 않습니다. 다만 변합니다. 그 변화는 저 자신을 이해할 기회가 되고, 비슷한 길을 걷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계기가 됩니다. 저는 이제 ADHD를 부끄러움이 아닌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요.
저는 ADHD를 재진단 받았습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저를 이어주고,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게 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에요.
ADHD는 흔히 “어릴 때의 산만함”쯤으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애 전반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신경발달적 특성이에요. 저의 경험은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 청소년기에는 충동과 우울이, 성인기에는 부주의와 실행력 부족이 ADHD의 얼굴이었지요.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건 단 하나입니다.
ADHD는 없다가 걸리는 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ADHD는
성격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고,
ADHD는 잠깐 앓다가 끝나는 병이 아니며,
뇌의 신경학적 발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이자 차이 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기저핵(basal ganglia)의 발달 및 도파민 조절 체계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합니다. 이 영역들은 집중, 충동 억제, 계획, 시간 관리 같은 ‘실행기능’을 담당하지요. 따라서 ADHD는 환경 탓에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신경 발달상의 특성이 존재하고, 성장 과정에서 그 양상이 달라져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정신의학회(DSM-5) 모두 ADHD를 신경발달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 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신경발달장애’라는 분류 자체가 ADHD가 “후천적으로 걸리는 병”이 아니라, 발달의 궤적 속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임을 보여주는 근거이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ADHD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해야 합니다.
낙인과 편견이 아니라, 이해와 지원이 필요하지요. ADHD를 가진 사람은 단순히 “집중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나는 ADHD 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용해 줘! 가 아닙니다. ADHD 인들 사이에서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뇌 체계를 가졌기에, 이들이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몇단계 더, 혹은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과 노력, 그리고 이들의 매커니즘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부끄럽지 않아요. ADHD는 저의 부족함이 아니라, 저의 이야기이자 저의 여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ADHD 라는 이름을 다시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