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그리고 권고사직, 그리고... ①

ADHD 사회초년생 직장인의 고군분투기

by 지엔

이번에는 좀 아픈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에서도, 잠시나마 회사를 다녔던 시기는 참 혼자서 많이 치열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예전에 우울증 걸렸을 때와 트라우마 사건들을 겪었을 때를 제외하고, 이때만큼 좌절감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취업 도전

때는 작년 12월, 제가 당시 대학교 마지막 학기, 즉 졸업반이었던 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위기청소년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꿈인데, (이쪽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은 지금도 변하지 않긴 합니다.) 내 꿈을 살릴 수 있는 쪽으로 취업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위기청소년이나 비행청소년 관련 시설은 소년원, 보호관찰소, 서울소년분류심사원 등 국가에서 관리하는 시설들이 많아, 교정직이나 보호직렬 쪽의 자격증 혹은 사회복지 계열의 자격을 취득해야 했고, 저는 당시 4년제 대학교 상담학과 학생이었으므로 청소년꿈드림센터나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지원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청소년센터는 대개 학사 졸업 후 N 년 이상 실무경력 내지는 관련석사 이상을 뽑거든요.)

그래서 저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기왕 일자리를 찾을 거, 소년원 예배를 주 사역으로 섬기는 교회에 전도사로 들어가자.'라는 마음의 감동이 오게 되었고, 검색창에 전국의 소년원들을 다 집어넣어 'OO 소년원 예배'를 검색해서 나오는 교회들의 이름을 청빙홈페이지에 검색해 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검색했나.. OO소년원의 예배를 섬기는 교회를 검색하던 중 어느 기관에 대한 기사가 연관으로 뜨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성인수용자 및 소년원생들의 복지를 위해 일하는 어느 단체에 대한 소개 기사였습니다.

"오 이런 단체가 있어?" 전국의 소년원과 일부 성인교도소 수감자들을 위한 사업 및 행사, 성인 수용자 자녀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행사 그리고 그들을 위한 장학 지원까지.. 이곳에서 오래 일하고 싶었습니다. 이곳에서 오래 일하면서 다양한 교정복지 분야에 대해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관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채용공고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기관에서 새로이 운영을 시작한 사회 내 위기청소년 위탁가정의 여시설 지도사 모집에 대한 공고였습니다. 채용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청소년 관련 전공 학사 학위 소지자'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저는 마지막 학기 종강을 단 2주 앞두고 있었기에 엄밀히 말하면 '학사 학위 소지자'는 아니었지만, 다른 관련기관들에서는 상기 조건상 채용될 확률이 낮기에 여기만큼이라도 꼭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2025년 2월에 졸업이라는 졸업예정증명서류도 함께 첨부해서 보냈습니다. 아직 학생 신분이지만 2주만 더 다니면 대학생활이 끝나니, 혹여나 참고라도 해 주십사 하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며칠 뒤 연락이 왔고, 회사 측에서 한번 면접을 보자고 했습니다. 면접 당일 저는 천안에서 학교를 마치고 2시간을 지하철로 이동하여 그곳으로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약 30분간 이뤄진 면접에서 이곳의 비전을 들었고, 이 기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너무나 강해졌습니다.

비록 집에서 기관까지 대중교통으로 환승포함 2시간 반 이상 걸리는 거리였지만, 저는 여차하면 근처 고시원이라도 들어갈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2월 말경 면접을 마치고, 회사 측과 일정을 조율하여 2월 첫날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1월에는 매주 1일 이상 빠져야 하는 일정이 미리 정해져 있었기에 회사 측에 말씀드렸더니, 감사하게도 2월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절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첫 출근하기 직전인 1월 20일경, 저는 콘서타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몰랐죠 저는. 새로운 환경이 되면 ADHD의 불안이나 과각성 증상이 더 심해지는지.

특히나 저는 원래부터 과각성 증상이 있었어가지고, 콘서타와 새로운 환경으로 인한 과각성 증상이 심해졌다는 걸 더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과각성이었냐면, 서류 작업 하나에 집중하면 주위에서 뭘 해도, 무슨 소리가 나도, 심지어 저를 부르는 소리도 못 알아챌 정도였습니다. 1~2주 반복되다가 나중에는 동성의 선생님들은 저를 부를 때 저의 어깨를 치거나 눈앞에서 손을 움직이시며 주의를 환기시키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만들고 있다가 뒤에서 다른 선생님이 "수정테이프 어디 갔지?"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곧바로 "아 수정테이프?" 하고 저도 수정테이프 찾기 행렬에 동참해 버리곤 했었습니다. 기존에 하던 것은 그대로 잊혀지고요. 이러한 저의 특성을 알아챈 한 동료 선생님께서는, "자 지엔쌤, 수정테이프는 나중에. 우리 일단 이거 먼저 하고 있었잖아요."라고 하시며 흩어진 저의 주의력을 돌리시곤 하셨습니다.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인 만큼 잘하고픈 마음이 컸던 건지, 아니면 높은 완벽주의에 관한 ADHD 성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한 서류 뭉텅이의 빈칸을 채우는 일부터 이전에 직원분들이 만들어두신 레퍼런스를 근거로 사업기획 결재 안을 써보는 것조차도 너무나 큰 숙제였습니다. 정확히는, 한글은 켰는데 뭐부터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모르는 것은 물어보라는데, 한글을 켜서 무슨 단계부터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는 느낌...

예를 들어 표가 들어간 서류면, '제목을 쓰고 개요 등 내용을 쓴 다음에 표를 만들고 표 안에를 채워야 하나? 아니면 표부터 만들어서 채우고 내용을 써야 하나? 아니면 제목이랑 내용을 쓴 다음에 폰트를 바꿔놓고 표를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일단 서류의 기본 구조부터 만들어 놓고 그다음에 세부 내용을 채워야 하나? 무슨 단계부터 시작을 해야 하지?' 그래서 일단 제목을 썼다가 '아니다' 하고 지우고.. 표 만들기를 클릭했다가 '아 그래도 제목부터 써야지' 하고 다시 지우고.. '여시설 참여학생 O명, 남시설 참여학생 ㅁ명'이라고 줄글로 썼다가 '아 표가 낫나' 하고 지운뒤 표로 만들었다가, '아니 그냥 짧으니까 줄글로 쓸까' 하고 다시 표를 지우고...


만약 전체 서류를 꾸미는 데 걸린 시간이 5시간이라면, 위와 같은 고민들을 하는데만 3시간 이상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회사에서 과각성, 과몰입 상태에 있었던 저는 늘 뭐 하나에 몰입하면 주변 상황인지는 물론, 시간의 흐름도 잘 느끼지 못할 만큼 주위를 보지 못했습니다. 아예 화장실도 안 가고, 점심시간에는 주위 선생님들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밥 먹으러 가자'라고 해야 놀라면서 정신을 차릴 정도로요.

과집중할때는 시간의 흐름도 잘 몰라서, 저는 1시간 정도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3시간 이상, 내지는 2~3시간 정도 했겠지 싶었는데 벌써 5~6시간 가까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던 경우도 잦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2월 초에 입사했을 때 콘서타를 18mg 복용했었는데, 입사하자마자 위와 같은 상황들이 점점 지속되다 보니

2주에 한 번씩 용량을 증량해 결국 3월 말에는 54mg을 받게 되었습니다.


매번 콘서타 용량을 증량할 때마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 이제는 잘할 수 있겠지. 이제는 긴장 안 하고 얼어붙지 않고 실수 줄겠지.
나 이제는 불안하지 않겠지.
..... 나 이제는 적어도 1인분 일은 눈치 안 보고 해낼 수 있겠지.
기본적인 서류 채우기 정도는 남들 하는 정도로 나도 할 수 있겠지.
이제는 다른 쌤들에게 폐는 안 끼치겠지...


반년이 지났는데, 이미 ADHD인 나를 충분히 수용하고 있는데도, 지금 와서 이때를 다시 회상하려니 눈물이 나네요.


입사한 지 1달 반이 지난 3월 중순경부터는, 퇴근길에 매일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중교통으로 2시간 넘는 거리라 소리 내어 울 수가 없어서 한두 시간씩 매일 소리 없는 울음을 삼켰습니다.

나름 자존심에 부모님께 우는 모습은 보이기 싫어서 집에서 샤워할 때도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당시에 출근길만큼은 아침에 일찍 가면 힘들다고 엄마가 차로 데려다주셨는데) 엄마가 태워주시는 1시간 정도의 차 안에서도 조수석 쪽으로 돌아앉아 자는 척하면서 주먹울음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웃으면서 출근했지요.

열심히 했지요. 잘하고 싶었거든요. 남들이 보기엔 직원 열몇 명의 소규모 회사이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장래 비전과 정확히 일치하는 꿈의 직장이었고 또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오래 버티고 싶었거든요.


노력 안 한 게 아니야

방법을 고민한 끝에 ADHD 직장인을 위한 시간관리 맞춤 전자책도 구입해서 읽고, ADHD 직장인 맞춤 플래너도 사서 나름 꾸준히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제가 앞선 글에서 올렸듯, 저는 청각주의력 저하가 있어 상사의 구두지시를 잘 듣고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에는 항상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참 감사하게도 몇몇 선생님들께서는 제가 적는 걸 까먹을 경우 저에게 지시를 주시면서 메모하라고 언질을 주시거나, 아예 카카오톡으로 세부내용을 구체적으로 요약하여 지시해 주시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는 줄어들지 않았고, 불안 긴장과 과각성은 날로 늘어만 갔습니다. 회사 생활 자체로서의 긴장도 늘어가는데, 거기에 맞춰 콘서타 용량도 늘어갔으니 그럴 수밖에요. 그때는 콘서타의 부작용 중에 과각성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약 한 달 반 동안 행정업무에서 계속 제가 삐걱대자, 제 근무 배치가 '법인사무실'에서 '법인이 운영하는 위기청소년 자립지원카페'로 바뀌었습니다. 기관 사무실과 같은 건물 1층에 위탁가정을 퇴소한 청소년들의 자립지원을 위해 운영되는 카페가 있었는데, 행정업무는 어려운 것 같으니 한번 자립지원카페 영업을 해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소규모 기관인 특성상 카페 선생님이랑 남녀생활시설 선생님들이 당직 아닌 날에는 사무실을 보고, 사무실 선생님들이 카페에 투입되기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업무분장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 저는 그냥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때 카페를 했던 것이 가장 결정적인 권고사직 요인이었다고 생각됩니다.(개인적인 생각입니다) 3월 중순경, 카페로 업무배치가 되면서 생전 처음 해보는 카페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2~3일은 할 만했습니다. 와플에 크림을 바르는 방법을 끊임없이 보고 또 해봐도 서툴긴 했지만, 그 외 음료 제조나 정리 등은 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긴장으로 인한 심한 과각성과 그로 인한 과부하 + 청각자극에 예민한 제게 환경이 주는 끊임없는 소음(커피 그라인더 소리, 음료 제조 소리, BGM소리, 손님들 소리, 바깥 차 소리, 사람들 대화소리)의 자극부하로 인해 아예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는 혼란스러운 멍한 상태가 하루 종일 지속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뭐 하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극도로 긴장까지 하니 끊임없이 뇌가 꺼지는(Shut-down)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과몰입으로 인한 증상과는 달리 감각부하와 초긴장 상태로 뇌가 셧다운 되어, 분명 아는 것도 손으로 할려니 모르겠고, 좀 전에 물어봐서 답을 들은 건데도 기억이 안 나고(심지어 메모를 해두었는데도, 메모를 했다는 사실도 까먹기도 하고) A메뉴 아이스 주문이 들어왔는데 나도 모르게 핫으로 준비하고 있는, 마치 로봇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걸 보고 핑계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카페에서의 심한 과각성과 셧다운, 그리고 긴장은 카페 업무 일주일 만에 실제로 공황발작을 재발시켰고, 갑자기 숨이 가빠지더니 이러다 구토할 것 같은 느낌에 메뉴를 만들다 말고 화장실로 뛰어가다가 화장실 칸 앞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졌습니다. 다행히 다치지 않고 화장실 칸 안에서 옆에 벽을 기대고 서있을 수 있을 정도였기에, 약 5분간 호흡을 진정시키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며칠에 걸쳐 서서히 긴장도가 낮아지기 시작했고, 자연히 실수도 줄기 시작했습니다. 공황발작이 일어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에 병원 재진 날짜가 되어 방문하여 그동안의 상황을 이야기했고, 콘서타를 45에서 54mg으로 증량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54로 증량한 다음날부터는 머릿속이 더욱 또렷해지고 긴장도가 좀 더 낮아졌기에, 저는 또다시

'이제 진짜 잘해볼 수 있겠다. 더 노력해 봐야겠다.'


하는 희망에 부풀었지요.



그렇게 3일 뒤, 3월 마지막 근무날.

콘서타를 54로 증량하고 이젠 진짜 기능을 향상할 수 있겠다 싶은지 3일 뒤,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지엔쌤이 이쪽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는 열정이 있는 거는 우리 모두가 충분히 알겠어. 그런데 지금 우리 기관 사정이 지엔쌤이 역량을 충분히 끌어올릴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현실적인 여유가 없어."



너무나 좌절했습니다. 물론 회사에 대한 원망은 없었습니다. 1인분도 채 못하고 계속 실수만 해대는 민폐 신입이었으니까요. 그리고 회사가 정말 어려운 사정인 것도 제가 사무실에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달간 내가 남들보다는 기능적으로 부족한 것을 알게 되어 어떻게든 죽을힘을 다해 눈물 삭여가며 나를 깎아왔던, 어떻게든 여기서 나중에 언젠가는 기관에 도움이 되는 직원이 되고 싶어서 하루하루 안간힘을 써왔는데, 그 기회가 한 번에 박탈되었다는 박탈감과 좌절감이 저를 한 번에 덮쳐왔습니다.



"저 정말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그냥 농땡이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사실 제가 ADHD가 있어요. 입사와 동시에 약을 먹기 시작해서 이제 2달 차라, 그동안 최저단계에서 서서히 올려 지금 며칠 전에 최고 투약량까지 올렸어요. 저도 알아요. 저 데리고 있는 거가 손해인 거 저도 알아요.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너무 감사하고 죄송해요. 근데 저 여기서 너무 배우고 싶어요. 여기 아니면 이쪽 관련 업무를 제가 지금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월급을 줄여주셔도 돼요. 뭐 쓰레기 버리는 그런 거나 심부름만 시키셔도 돼요. 저 옆에서 일만 배울 수 있게 해 주시면 안돼요?"


너무나 진심이었습니다.


이후 제 월급은 1/10으로 줄었고, 출근도 줄었으며, 회사에서 내는 사대보험에서도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좋았습니다. 나를 다시 받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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