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속에서

역지사지

by 조은혜

나는 평생 남편과 함께 살면서 남편 전화기를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남편이 무엇을 즐겨보고 듣는지를 몰랐다.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낼 때는 주로 '바둑' 프로를 즐겨 보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화장실에 들어간 남편이 나올 생각을 않고서는 큰 소리로 무슨 프로인가를 보면서 듣고 있는데 참 싫었다.


우리 남편은 중년의 나이에도 춤추고 노래하는 가수를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같이 있을 때 그런 노래를 듣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화장실에서 나올 생각을 않고서 그런 노래들을 듣고 있었는데 (한국 방송은 아니었음)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 문을 노크를 하면서 "ㅇㅇ아빠, 소리 좀 줄여줘요 " 했더니 "뭐라고?" "소리 좀 줄여 달라고."


소리를 줄였는데도 자꾸만 거슬려서 "ㅇㅇ아빠, 이어폰 좀 끼지?" 했더니 나오길래 "나이에 좀 맞는 프로와 노래를 들어요." 했더니 보통 때 같으면 내가 그렇게 예민해지면 피하는 사람이 그날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지 정면도전해 오면서 "그렇게 매사에 온갖 고상을 다 떨면 좋으냐?"

그쯤 해서 휴전을 했는데 화가 좀 가라앉고서 '역지사지' 해보니 남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겨졌다.


작년에 장거리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왕복 4-5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꼼짝없이 들으면서도 단 한 번도

불평불만 한 적이 없었는데 나는 10분도 참아 줄 수가 없었으니 그러자 갑자기 남편이 급 불쌍해졌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미안했는지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서(남편이 원래는 삐지면 오래감) 못 이기는 척 받아주고서는 자기가 가꾼 화초에 정성껏 물을 주고 있는 남편에게 다가가 "화초를 아주 잘 키우셨네요~" 하면서 뒤에서 살짝 안아주었더니 좋아라 하는 남편을 보면서 "ㅇㅇ아빠, 이어폰 끼고서 맘껏 크게 들어요. 자기가 좋으면 그만이지." 했다

역지사지해 보면 보이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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