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투의 상대성

고정값이 아니라 변동값이었습니다.

by 조스톤

“자기야. 형이 이번 추석은 태안에서 하루만 자고 오자고 하네. 형수님 혼자 가면 좀 그러니까 자기도 같이 가서 하루만 자고 오는 거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괜찮아?”


추석 연휴를 2주 앞둔 여느 저녁, TV를 보며 어렵게 입을 뗀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구겨졌다.

“이미 이야기 다 끝난 거 아니야? 뭐 어떻게 해, 가야지”


나의 짜증 섞인 대답에 남편은 연신 내 눈치를 살피며 하루만 눈 딱 감고 다녀오자며 나를 달래주었다. 명절에 시부모님 댁에 가 전 부치고, 용돈 드리는 흔히 말하는 <며느리 역할>에는 어느 정도 호의적인 나였다. 그러나 시부모님과 함께 시댁 친척 10명 이상이 모이는 태안까지 내려가 자고 오자는 그의 제안은 애교로는 쉽게 풀리지 않는 불편한 부탁이었다. 마지못해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약 2주 동안 추석 연휴에 내키지 않는 1박을 하는 생각을 하노라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치솟고 안구에 습기가 차올랐다.


<알아서 각자도생>이라는 지론이 있는 우리 집은 집안 행사 때도 각자 축하한다는 전화 한 통· 메시지 한 통이면 끝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가족은 남달랐다. “우리는 Family”라는 결속 하에 행사나 생일이면 다 같이 발 벗고 모여 축하해주는 것은 기본값이었다.


물론 시부모님께서는 며느리들 부담인 걸 아시기에, 가족 단톡방에 초대하거나, 행사에 무리하게 참석할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아들들이 합심해서 며느리들과 함께 내려간다니 내심 기뻐하시는 모습이었다.


나는 하루 자는 것도 이렇게 불편하고 싫은데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아빠 친척 수십 명이 모여있던 큰할아버지네 집에 가서 새벽부터 음식하고 제사까지 지내셨던 건지, 엄마가 새삼 존경스러웠다.


불편할 수밖에 없는 곳을 며느리라는 타이틀을 달고 가려니 추석 연휴가 다가올수록 가슴은 점점 답답해졌다. 그럴수록 남편에 대한 짜증만 늘어났고 예민함이 극에 달할 때 <태안 1박 대소동은> 형님의 깜짝 임신 발표로 며느리들은 빼고 아들들만 시골에 내려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결국 시골을 가지 않는 것으로 한바탕 소동이 끝났지만, 이후에도 내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물음표가 생겼다. “그냥 눈 딱 감고 하루만 자고오면 되는건데 왜 이렇게 경기가 나도록 싫어하고 우울해 했을까?”


남편을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시댁 식구들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남편을 다정한 남자로 키워주신 시부모님까지는 오케이. 그런데 친척들에게까지 일일 김씨 집안 며느리 역할을 하는 건 나에게는 너무 버거웠다. 음식을 준비하고, 어른을 봉양하는 문제를 떠나 특정 공간에서 한 사람의 아내, 한 사람의 며느리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예민한 나로서는 큰 부담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학창 시절로 돌아가고 싶나요?”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항상 망설임 없이 “아니오!”를 외친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권한은 성인이 돼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시댁이라는 어미와, 며느리라는 역할은 반항하고 싶어도 거부할 수 없는 무거운 감투 같은 존재이다. 남편의 추석 전 ‘그 제안’처럼 내가 예상했던 감투의 무게에서 1g 이라도 무거운 무엇인가가 얹어질 때면 이 감투를 벗어버리지도, 쿨하게 웃으며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투정 부리는 미성년자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감투의 무게를 재고 따지는 계산적인 하루를 보내다가도 부모님이 “김서방”을 필요로 할 때면 두손 두발 다 벗고 나서는 남편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나도 모르게 며느리로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감투의 무게가 조금씩 늘어나는 기분을 느낀다.


오늘도 나는 무게의 제한이 없어 보이는 남편의 ‘사위역할’이라는 감투를 통해, 야박하기만했던 며느리라는 내 감투의 무게를 늘려나가며 돌아오는 추석을 맞을 준비를 한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