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며느리"라는 이름에 고슴도치처럼 반응하기 시작하게 된 시작점
어릴 적부터 나에게 명절은 묘하게 불편한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사형제 중 "조 씨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명절이 되면 연휴 내내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매년 부엌에서 할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요리하는 엄마와 작은엄마들을 보고 있노라면, 부엌은 마치 조 씨 성이 아닌 여성들만이 출입하는 것이 당연한 공간 같았다.
그녀들이 매년 명절에 불 앞에서 힘들게 요리하며 만든 갈비와 잡채, 가지각색의 나물들은 항상 자연스레 두 개의 상으로 나뉘어 담겼다. 큰 상에는 첫 번째로 퍼올린 국과, 굴비, 잡채 등 푸짐한 메인 요리가 가득 차려졌으며, 나머지 작은 상에는 푸고 남은 국을 비롯해 첫 번째 상에 담기지 못해 남은 음식들이 자투리처럼 올라와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푼 음식과, 메인 요리가 가득한 첫 번째 상은 남성들의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빠, 두 명의 작은 아빠와, 삼촌 그리고 남자였던 두 살 터울의 오빠까지. 그곳에 앉을 수 있었던 유일한 여성은 할머니뿐이었다.
요리를 한 사람은 엄마와 작은 엄마를 비롯한 여성들이었지만, 그 요리 중 가장 맛있는 것들을 가장 먼저 배불리 먹는 사람은 남성들이었다. 작은 상에서 밥을 먹었던 엄마와 작은엄마 그리고 나를 비롯한 여자 동생들. 우리는 "며느리"라는 역할과 여자라는 “성별”로 명절 때 밥을 먹는 상의 크기가 정해졌다.
오랜만에 마주한 명절에 떠들썩하게 친척 동생들과 놀다가도 식사 시간 밥상이 차려지면 자연스럽게 오빠는 큰상으로, 나는 작은 상으로 흩어져 밥을 먹었다. 학교에서 제아무리 남녀평등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매년 돌아오는 추석과 설날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작은 밥상은, 나에게 “현실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어릴 땐 엄마 옆에서 밥을 먹는 게 마냥 좋았고, 사춘기 때는 아빠가 조금 밉기도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할머니 같은 시어머니를 만날까 봐 무서웠다.
그렇게 반복되는 명절 속, 마주하게되는 작은 밥상을 먹고 자라며 내 마음속에는 ‘며느리’라는 역할에 대한 가시가 자라났다. 결혼을 한 지금도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숨겨놨던 가시가 한 번씩 돋아날 준비를 한다. 이제는 야생과 같은 환경이 아니라 가시를 세우지 않아도 되는데, 조금의 위험신호라도 감지하면 필요 이상으로 경계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결혼을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고 있는 요즘에는 별거 아닌 일에 가시를 잔뜩 세우기도, 민망함에 다시 접기도 하며 어릴 적 마주한 작은 밥상의 잔상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