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산 크리스토발의 비 내리는 날
조용한 오후, 오늘도 산 크리스토발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 도시에 도착한 날에도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우를 만났다.
비를 피하기 위해 처음 자리 잡은 식당 테라스의 파라솔 아래에는 바람이 불자 비가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아니, 들이닥치는 것 이상으로 파라솔 기둥을 타고 물줄기가 줄줄 새기 시작해, 결국 다른 대피소를 찾아야 했다. 1분 간 빠른 걸음으로 길거리를 살펴봤지만 건물의 입구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더 이상의 사람이 들어갈만한 곳은 없었다. 그 거리 끝에서 중년의 여성이 고요히 서있는 포치를 찾아서 겨우 새로운 대피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날의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질리게도 내렸다. 슬그머니, "이 도시는 이렇게 비가 많이 오나요?" 물어봤지만 아주머니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제스처를 하면서 눈짓으로 대답을 해줬다. 이곳은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고.
'조금 있으면 멎겠지.' 하며 기다리기를 얼마간, 포치 아래에는 아무 말도 떠다니지 않았지만 나는 내심 그 녀와 동지애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폭풍이 쏟아지는 걸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다리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미 많이 젖어있던 터라 이제는 추위에 몸이 떨릴 정도였다. 결국 나는 비를 뚫고 10분 거리의 숙소로 달려가기로 결심한다.
그 빗속으로 달려가기 전 같이 기다리던 아주머니에게 나는 이제 간다고 손짓과 눈짓을 보냈다. 아주머니는 자신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비가 와서 차가 못 오고 있다고 손짓과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말로 대화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게 소통을 했다.
마지막으로 아주머니는 나에게 조심히 달려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빗속으로 달려들었다. 불과 몇 걸음도 가지 않아서 온몸이 홀딱 젖었지만, 누군가를 등 뒤에 두고 달리는 기분이 들어 춥지 않았다.
그게 벌써 일주일도 지난 일, 그리고 오늘도 산 크리스토발에는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제는 포치 아래로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적당한 카페나 초코라테 집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나는 이미 카페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고, 사람들은 그날처럼 거리를 달리며 빈 포치를 찾아 자리를 잡거나 가게 안으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땐 생각지도 못할 만큼 이 동네를 깊게 사랑하게 된 지금은 그 풍경마저 마음이 찡해지는 기분을 들게 했다. 그런 감상에 젖어 어쩐지 뿌옇게 보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중에서 오로지 한 부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빨간 집업을 걸치고 양팔에 수제팔찌를 잔뜩 얹은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보이는 아이가 비를 맞으며 카페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그 아이는 그렇게 빗속에서 점점 선명하게 다가오더니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멕시코를 여행하다 보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일명 '방문판매'였다.
아이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팔찌를 사달라고 했다. 그렇게 테이블 사이를 누비며 어느새 내 앞에 다가온 그 아이는 많이 젖어있었다.
내가 여행 중 지양하는 행동 중 하나는 어린아이들을 이용한 판매 행위에 응하는 것이다. 이전에 캄보디아에서는 아이들을 이용한 방문판매의 판매율이 더 높아져서 아이들이 학교를 빼먹고 판매하는 것에 동원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팔찌를 들이미는 아이에게 나는 괜찮다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머리칼과 팔뚝이 젖은 탓인지 아이의 큰 눈망울도 비가 젖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고 바로 뒤로 돌아서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젖어있는 것처럼 보였던 아이의 눈이 반짝, 하더니 내 팔을 가리켰다. 내 팔에 채워진 끈 팔찌를 발견한 것이었다. 자기에게도 이것보다 예쁜 팔찌가 있다고 살펴보라는 식으로 다시 권했다. 나는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아이의 팔뚝보다도 두껍게 올라가 있는 팔찌 더미를 뒤적였다.
얼마냐고 물으니 한 개에 10페소, 한국 돈으로 1000원도 안 하는 가격이었다. 나는 두 개를 골라 20페소를 내밀었다. 아이의 눈은 젖은 적도 없었던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테이블을 떠날 때 한 번, 그리고 카페를 완전히 떠나기 전에 또 한번 뒤돌아서서 나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한다.
그렇게 그 아이는 빗속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내가 포치 아래 한 여인을 두고 달려가던 날의 기분을 아이가 느끼고 있을까? 이제는 내 마음이 젖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