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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Day32. 멕시코의 태풍, 페리 취소 사태

여자 혼자 중남미 여행/워터젯 페리 취소, 체투말 현지인 치킨 맛집

by SUN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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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깨운 건 알람 소리도 아닌 빗소리였다.


오늘은 원래 체투말에서 벨리즈의 케이콜커 섬으로 들어가는 워터택시를 타야하는 날이었다. 어제 비 때문에 페리가 취소될 거 같다고 생각은 하고 잤지만 아침의 빗소리는 더더욱 심각하게 들려왔다. 어제 워터택시 회사에 와츠앱 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고,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데다 괜히 노쇼로 취소당할 수도 있으니 일단 짐을 챙겨 페리 선착장에는 가야 될 거 같았다. 우선은 리셉션에 가서 워터택시 업체에 전화해 줄 수 있냐고 물어보니 워터택시 업체 오픈 시간이 8시라 그때 전화해 주겠다고 했다.



이건..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 된 후의 비..

어쨌든 9시가 워터택시 체크인 마감이니 짐을 싸두고 8시에 전화를 시도해 보고 출발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방이 돌아와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내가 짐을 싸고 있는 중에 일본인 친구도 짐을 챙기더니 나가려고 했다. "혹시 페리 타러 가?" 하니까 맞다고 해서 8시에 전화해 보고 같이 가자고 하니 자긴 이미 우버를 불러서 지금 나가야 될 거 같다며 먼저 출발을 했다.


우선 그 친구를 보내고 8시가 되자마자 통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자동응답으로 넘어갔다. 일단 배는 안 뜨더라도 예약을 바꾸려면 오늘 워터택시 카운터에 가야 될 거 같아서 나도 우버를 부르고 리셉션 직원은 계속 통화를 시도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지만 비를 뚫고 갈 상황이 아니었다)




IMG_6944.jpg 워터택시 업체는 International Islander Ferriies다. 멕시코치고 나름 잘 대응을 했다고 생각함..

우버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까 먼저 나갔던 일본인 친구가 돌아왔다. 페리 선착장은 아예 닫혔고 아예 입장이 금지되어 내일 오라며 돌아가게 했다고. 나도 다시 우버를 취소하고 (취소 수수료를 날렸다..) 워터택시 업체에 와츠앱 메시지를 남겨놓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 앉아 있었다. 일본인 친구도 같이 앉아 서로 말없이 고민을 했다.


한 30분쯤 지나고 와츠앱으로 페리 택시에서 연락 왔다. 오늘은 운행하지 못한다고 환불을 하던지 월요일로 변경하던지 선택하라고. 11시까지 답변을 달라고 했다.


다시 산크리스토발로 가서 며칠을 지내고 여행자 셔틀을 타고 과테말라로 바로 넘어가야 하나, 칸쿤으로 올라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나 어떡하나 오랜 고민을 하다 우선은 월요일까지 기다려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시설이 열악한 숙소지만 리셉션 직원은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 하고 있고, 또 이 날씨에 당장 어디론가 이동을 하기도 어려워 결국 하루를 보내야 하는데 여러모로 월요일까지 기다리는 게 합리적인 거 같았다.


고민을 끝내고 워터택시 회사에 연락을 하고 숙박도 2박을 연장했다.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리는 사이 일본인 친구는 벨리즈 시티에 가서 페리가 뜨면 바로 이동하겠다며 도시 이동을 감행했고 둘 다 벨리즈에 가니 그곳에서 또 만나길 기원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런저런 상황이 정리되고 나니 10시 반이 다 돼갔다. 이 모든 것이 아침 2시간 동안 일어난 일.. 동남아 여행을 할 때 폭우 탓에 기차 취소 되고 핫야이에서 무한대기한 게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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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반쯤 다른 방에서 지내는 한국인 친구가 일어나서 같이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11시가 넘으니 놀랍게도 날씨가 개어서 나가봤는데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은 상태였고 거리엔 길이 사라지고 물웅덩이들이 한가득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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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 연 곳을 찾지 못하고 OXXO에서 컵라면과 샌드위치를 사 와서 먹었다. 점심을 먹고는 할 일도 없고 주방에 앉아 이런저런 글을 쓰고 정산을 하고 시간을 보냈다. 기록에 관련해서 밀린 일들이 많아서 시간은 잘 갔다. 그러다 보니 벌써 저녁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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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창밖을 보니 비가 아예 그치고 바람만 좀 불고 있었다. 저녁을 먹기 전 맥주도 살 겸 산책을 나섰다. 선착장 쪽으로 가니 그래도 바람이 꽤 분다. 파도도 치고, 위험하게 이동하는 것보다야 안전한 게 백배 나으니 오히려 잘 됐다. 시간이야 생기면 할 일이 또 있으니 괜찮다.


돌아와서 한국인 친구랑 같이 치킨을 시켜 먹으려고 했는데 왜인지 우리 둘 다 결제가 안 됐다. 결국 근처에서 포장할 수 있는 치킨 집을 찾아서 내가 포장해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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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둘 다 귀찮았던 참이라 가위바위보로 진 사람이 포장을 하러 간 거였는데 가게 분위기가 독특했다. 입구는 간판 같은 걸로 막혀있고 현지인들이 그 간판 너머에서 물건을 받아가고 계산을 했다. (나중에 보니 현지인들은 다 와츠앱으로 주문을 하더라)


나도 문을 두드려 주문을 하니 15분이 걸린다고 했다. 기다리겠다고 하고 문 옆쪽에서 지켜보니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갔다. 현지인 맛집인가 보다. 현지인들에게 음식을 건네주던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들어오라고 했다. 원래는 못 들어오게 하는 거 같은데 특별한 초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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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앉아서 축구를 보며 한국에서 왔다, 여행 중이다, 멕시코에서 스페인어를 조금 배웠다 뭐 이런 간단한 얘기들을 했다. 할아버지가 아예 영어를 못하셨는데 산크리스토발에서 스페인어를 조금이나마 배우기를 잘했다!


할아버지랑 간단한 얘기들을 나누면서 축구를 보는 사이, 아들이 치킨을 열심히 튀겨 금방 포장해 주었다. 소스를 3종류 챙겨주며 달달한 거, 망고에 하바네로를 조금 넣은 조금 매운 소스, 매운 소스 설명을 하며 담아주었다. 가격은 24조각에 339페소! 게산은 할아버지가 아주 천천히 하나하나 돈을 세며 해주신다. 그 모습이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몰라도 기특해 보였다.


이 궂은 날에 아들의 업장에서 같이 앉아 같이 축구를 보고 얘기를 하며 장사를 하는 게 보기 좋았다. 가위바위보에 져서 갔지만 재미있는 부자의 생활을 엿본 기분이라 기분이 좋아졌고 물론 치킨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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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친구랑 여행 얘기를 나누면서 치킨을 나눠먹고 한국인 친구는 먼저 자러 갔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잠도 거의 못 잤지만 예정에 없던 일들의 연속에 잠이 오지 않았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은 불고 있는 지금, 월요일에 페리가 뜰지 안뜰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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