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가서 공부를 하거라 엄마는 집에서 술잔을 들 테니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될 수 있었던 유일한 글이자 첫 번째 글은 아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몰랐던 아들의 식성을 19살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는 나름 반성의 글이었는데, 브런치에 맞춤법 검사 기능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문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이었는데도 브런치 작가라는 굉장한 타이틀을 안겨주었다.
우리 아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여러 차례 생물전환? 종의 변화? 를 겪었다. 쪼꼬미 엄마에게는 너무 큰 사이즈로 태어나서 아기일 때는 뚱이였다가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어떻게도 말로는 길들일 수 없는 들짐승이었고, 중학교 사춘기 때는 본능과 자극에 충실한 파충류였는데 지금은 이렇게 봐도 이쁘고 저렇게 봐도 이쁜 큰 이쁜이가 되었다.
(둘째를 항상 이쁜이로 불렀는데, 어느 날 아들이 내가 입버릇처럼 이 쉐키 저 쉐키 하자 '욕하지 마세요'라고 하는 바람에 크게 반성하고 지금은 첫째는 큰 이쁜이, 둘째는 작은 이쁜이로 부르고 있다. )
많은 부모가 그러하듯 첫째를 키우는 시간은 [공부-노력-실패-다짐-다시 공부-노오력-또 실패]의 연속이다. 오죽하면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 선생님도 아들 삼 형제 중에 첫째가 선생님에게 '자신은 엄마의 시행착오의 결과물이에요 '라고 말했다지 않은가.
(내가 선생님 강연에 가서 직접 질문하고 들은 이야기니 100퍼센트 팩트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키운 아이가 알고 보니 나랑 정말 닮았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지적하고 고치고자 했던 아이의 부족한 점이 다 내게서 온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오랜 시간 아이에게 큰소리치고 혼내고 공감하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것도 무려 성인을 1년 앞둔 열아홉 살에서야.
어느새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모르는 것들을 더 많이 품고 있는 아들이 이번주 토요일에 단기 기숙학원에 들어간다. 3주 동안 먹고 자고 하는 거 외에 공부만 해야 되는 곳을 제 발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의지는 있으나 실천이 안 되는 즉, 자기 관리가 안 되는 아이들을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곳. 공부에 대한 불안과 긴장이 높아 시험 며칠전이면 감기에 걸리거나 배가 아픈 아이는 고3이 되더니 시험 시간에 땀도 흘리기 시작했다. 본인 말로는 강박도 있는 거 같다고 한다. 학교 상담 성샌님은 좋은 분이시지만, 자기는 학교 생활에 대한 상담이 필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신경정신과에 가보고 싶다는 아들을 어찌해야 좋을까... 고민하다 우선 3주 동안 열심히 공부해 보고 그래도 그런 증상이 계속 남아 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억지로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곳, 스스로를 몰아칠 수밖에 없는 곳에서 자기의 최선을 다해보고자 하는 아들이 낯선 환경에 당황하거나 긴장하지 않고 차분히 실력을 정리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학습용 참고서 외에 세면도구부터 갈아입을 옷과 이불, 베개, 개인 상비약까지 그야말로 아이 방을 통째로 옮겨야 될 것 같은 양의 준비물을 조금씩 미리 챙겨주며 아들에게 직접 말하지 못한 엄마의 마음을 담아본다.
군대 가는 것도 아니고 해외 유학이나 이민을 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 이렇게 생각만으로도 울컥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사실은 3주 동안 이른 아침 샌드위치 만들기와 늦은 밤 차리는 저녁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어떻게 감춰야 할지...
생각만으로 올라가는 입꼬리부터 내리고 당장 표정관리부터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