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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 Towel

정리와 강박증, 그 사이

by 돌이
tempImagemDCHXi.heic 우리 집 공동욕실 수건장


현대인은 바쁘다. 나도 바쁘다. 육체적으로 바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마음이 더 바쁜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수건을 이쁘게, 예를 들어 호텔에 비치되어 있는 타월처럼 접는 방법이 자세히 나와있다. 그렇게 정리하는 게 시간도 단축하고, 효율적이지도 모르지만 새롭게 배워야 하지 않는가. 굳이 수건 접는 방법까지 배워야 할까. 어제까지 해왔던 대로 하고 싶다.


나는 최대한 빠르지만 깔끔해 보이도록 수건을 정리하고 싶다. 나는 수건만 따로 빨래를 한다. 선물 받은 수건, 빨간 수건, 파란 수건, 흰 수건을 섞어서 빨래를 하고 건조기를 돌리다 보니 색이 서로 뒤섞였다. 아내에게 졸라 흰 수건과 노란 수건을 샀다. 꽤 도톰하고 깔끔했다. 흰색과 노란색 각각 10장씩 구매했다. 흰색은 내 몸, 노란색은 아이들 전용이다. 나는 두 수건만 따로 세탁한다. 내 몸을 닦았던 흰 수건이 일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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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을 개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긴 쪽을 반으로 접는다. 다시 같은 방향으로 반 접는다. 이때 양 끝단이 수건 안쪽으로 들어와야 한다. 양 끝단을 안쪽에 둔 상태에서 3단으로 접는다. 이십 년 전 엄마가 수건을 개던 방법 그대로다. 같은 색 수건을 차곡차곡 쌓는다. 잘 쌓인 수건더미를 들고 화장실 수건장으로 간다. 나는 깊이가 얕은 수건장을 열고 수건 더미를 조심히 넣는다. 내가 접는 방법으로는 수건장에 수건이 뻑뻑하게 들어간다. 오히려 좋다. 흐트러지지 않도록 잘 넣기만 하면 각이 잘 살아 깔끔해 보이니까 말이다.


문제는 아내가 수건을 정리할 때다. 아내에게 양 끝단이 수건 안쪽을 향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수건을 2단으로 접던 아내가 그나마 나를 존중해서 3단으로 접는다. 양 끝단을 안쪽으로 넣어야 한다고, 세탁물 취급 상표가 밖에서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면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네가 해."

내가 다시, 처음부터 해 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그 이상의 잔소리는 멈춘다. 아내가 차곡차곡 쌓아둔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잠시 후 화장실로 가 어떻게 넣어뒀는지 보면 한숨이 나온다. 수건장에 들어간 수건의 높이가 맞지 않고, 풀어진 수건도 있다. 모조리 끄집어내고 싶다.


난 어떤 스트레스도 없이 장을 열어, 수건을 꺼내 몸을 닦고 싶다. 아내는 나를 강박증상을 사람 중 하나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지 상대적이다. 블로그, 유튜브에서 살림이나 정리정돈을 전문적으로 하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내는 종종 말한다. 수건을 처리하는 일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꺼내서 사용할 때 무리가 없을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니냐고 말이다. 응, 아니야. 난 충분하지 않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샤워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최소 두 번은 수건장을 열어볼 텐데,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져 있는 수건들을 볼 때마다 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런 사소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


9년쯤 결혼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것들이 점점 늘어간다. 빨래는 흰옷, 검정옷, 속옷, 수건, 잠옷과 일상복을 구분해서 한다. 세차는 꼭 내 손으로 해야 하고, 식기세척기는 사용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일들이 전혀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겠지만 나에겐 점점 장애가 되고 있다. 글도 써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출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돌봐야 하니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니 짜증이 는다. 청소에 에너지를 많이 쓰면, 운동에 지장을 준다. 운동에 에너지를 많이 쓴 날이면, 글이 안 써진다. 글에 집중하다 보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다. 현대인은 바쁘다.


나는 욕심이 많다. 좋은 남편이자 멋진 아빠이고 싶다. 직장생활도 잘하고 싶고, 글도 잘 쓰고 싶다. 살림도 잘하고 싶고, 운동도 즐기고 싶다. 돈은 많았으면 좋겠지만 돈 버는 일에 머리를 쓰고 싶지는 않고, 유튜브도 보고 책도 많이 읽고 싶다. 24시간은 짧지만 최소한 7시간은 자고 싶다.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바쁘고 에너지가 달리면, 아내가 수건 개는 것을 두고 보아야 한다. 직장에서 힘들었던 날은 살림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돈 버는 일에 머리를 써야 하고,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으면 유튜브 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24시간 동안에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려면 잠을 줄여야 한다.


아내는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수건을 쓴다. 그녀는 어떤 수건이든 상관없다. 몸을 닦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건조기에서 아내 수건을 꺼냈다. 거실에 던져두었다. 내일 아침, 같이 수건 정리를 할 생각이다. 운동 다녀온 뒤에도 아내가 수건을 개어 두지 않았다면 말이다.


2025.01.25 365개의 글 중 9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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