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좋지만 애플워치는 싫어
나는 아이폰만 사용해 왔다. 스마트폰을 처음 샀던 2011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나는 아이폰 시리즈만 이용해 왔다. 처음 아이폰을 샀을 때도 그랬지만 사실 지금도 아이폰의 기능을 잘 사용하지는 않는다. 처음 아이폰을 샀던 건,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아이폰을 사용하면 부족한 내면을 조금이라도 덮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변화가 싫어 계속 아이폰을 사용한다. 익숙한 인터페이스와 무난한 디자인과 더불어 아이패드, 맥북과 같은 다른 전자기기와의 호환성을 핑계로 앞으로도 아이폰을 계속 사용할 것 같다.
아이폰을 모델만 바꿔가며 15년 사용한 것처럼 아이패드도 모델을 바꿔가며 7년째 사용 중이다. 최근엔 맥북을 구입했고, 가볍도 배터리도 넉넉해 필요에 맞게 잘 사용 중이다. 아직 사용해보지 못한 애플 제품이 많다. 물론 앞으로도 사용할 가능성이 낮은 제품들이다. 나에겐 필요 이상인 고사양 제품들과 내 경제력으로는 구매하기 힘든 고가의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고사양도 아니고 고가의 제품도 아닌데 사용하지 않는 기기가 있다. 애플워치다. 2020년 9월, 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끝내며 아내와 함께 애플워치를 구입했었다. 아내의 애플워치는 지금도 잘 작동한다. 최근에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의 애플워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 애플워치는 일 년 전에 망가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망가뜨렸다. 워터파크에 놀러 가서 계속 차고 있었더니 어느 순간에 망가져버렸다.
애플워치가 망가질 때쯤, 애플워치에 대해서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애플워치는 편리하다. 특히 내가 샀던 모델은 핸드폰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통화나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거기에 피트니스 기능까지 훌륭하게 소화해 내는 애플워치는 전천후 시계였다. 애플워치를 착용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다른 시계를 착용하는 날이 줄어갔다.
나는 비싸지 않은 시계가 몇 개 있다. 10여 년 전 군생활을 할 때 착용했던 지샥 전자시계부터, 어디서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빈티지 시계와 10만 원 대의 저렴한 시계부터 나에겐 과분한 브랜드 시계까지. 각 제품마다 개성이 있고, 그날그날 입은 옷에 따라 다른 시계를 착용하는 것은 출근하기 전에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였다.
애플워치로 인해 그 재미가 사라졌다. 앱은 매일 시계를 차도록 강권했다. ‘활동’ 앱을 통해서 내가 얼마큼 걸었는지, 운동은 얼마나 했는지, 칼로리는 얼마나 태웠는지를 반복적으로 기록했다. 목표한 수치에 도달하지 않으면 핸드폰과 애플워치는 진동과 알림을 통해 반복적으로 나를 재촉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뭔가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조금, 아주 조금 느꼈다. 아주 미미했던 압박감은 다른 시계를 착용하고 싶은 날에도 애플워치를 손목에 걸치게 만들었다. 목표로 한 수치를 달성하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했다.
결혼할 때 선물로 받았던 오토매틱 손목시계 날짜가 20일 전에 놓여있기도 했다. 건전지로 돌아가는 시계는 건전지가 다 된 지도 모른 채 몇 날며칠을 방치되어 있었다. 애플워치를 제외한 다른 시계에 먼지가 쌓여갔다. 그랬던 시계들이 비로소 애플워치가 망가지고 난 뒤에야 다시 움직였다. 다른 애플 제품이 그런 것처럼 애플워치도 계속해서 신제품이 나오고 기능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처음 애플워치를 샀던 2020년보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좋은 애플워치를 차고 있다. 그럼에도 애플워치는 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왜일까.
나에게 시계는 뭘까. 나에게 시계는 멋이다. 내가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꾸미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는 증거이다. 매일 날씨와 기온을 체크하고, 수업내용을 고려해서 어떤 옷을 입을까 생각한다. 옷을 입고 나서 마지막으로 마음이 가는 시계를 골라 착용한다. 시계를 차는 것으로서 깨끗이 씻고, 옷을 골라 입는 행위가 일단락된다. 오늘의 TPO와 OOTD에 마지막에 고른 시계가 딱 맞을 때, 느껴지는 희열은 내게 소중하다.
생의 시간이 누적되어 갈수록 이런 즐거움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글을 쓰는 장소를 글을 쓰고 싶도록 꾸며둔 뒤, 글을 쓰기로 한 시간마다 찾아와 글을 쓰는 것. 아침이면 알람을 듣고 일어나 날씨에 맞는 옷과 신발을 고르고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일. 때때로 주어진 자유시간이면 정해놓은 카페에 들어가 자리 잡고 앉아 따뜻한 바닐라 라테를 마시는 일 등등.
갑자기, 가을방학의 <베스트 앨범은 사지 않아>가 떠올랐다. 앞으로도 애플워치는 사지 않을 것 같다.
2025.05.07 365개의 글 중 57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