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건 과중한 일에 비해, 인원을 보충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축 중인데도 학교는 어떻게든 매년 굴러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학교가 당장 멈추거나 큰 구멍은 나지 않기에 계속해서 교원을 감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 학교 현장은 교사의 피, 땀, 눈물을 갈아 넣어서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데 말이다.
교사가 학교에서 수업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행정 업무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될 정도로 학교 일이 많아졌다.
나 같은 워킹맘은 칼퇴 후 자녀를 돌봐야 하므로 학교에서 다 못 끝낸 일은 집으로 가져와서 하거나 주말에 몰아서 했다. 차라리 학교에서 초과근무를 하고 싶은데, 아이를 챙겨야 하니 수당도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집에서 일했다.
학교에서는 메신저와 공문으로 요구하는 당장 급한 일과 수시로 발생하는 학생 상담과 사건 처리 등을 우선하다 보면 학교 공강 시간에 수업 준비를 미리 할 수 없다. 그래서 수업 준비와 수행평가 관련 일, 고사 원안 출제, 생활기록부 작성과 검토 등의 일은 퇴근 후나 주말에 한 적이 빈번하다.
난 중학교 학생의 생활기록부 작성도 시간에 쫓기면서 힘들게 하고 있는데, 현재 고등학교의 상황은 더 심각해 보인다.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이 실시된 후 고등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의 중요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고등학교담임교사는 기존 생활기록부 작성의 부담에 더해서, 특색 있는 생활기록부를 써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며 학급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있다. 교과교사도 가르치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해야만 한다.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대부분이 방학 중에 생활기록부를 겨우 완성하고 교차 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교사의 시간은 굉장히 밀도 높게 정신없이 흘러간다. 출근 후 퇴근 때까지 반복되는 수업, 교과와 행정 관련 업무, 학생 생활 지도(조종례, 출결, 급식 지도, 청소 지도, 상담, 사안 처리 등), 각종 회의와 연수 등으로 일과가 꽉 채워져서 '화장실 갈 틈도 없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선생님들의 직업병 중에는 방광염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내 경우엔 공강 시간에 선생님들 간에 잠깐 차라도 한 잔 마신다거나 친목의 수다 시간을 보내는 것도 사치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교사의 근무 시간에는 점심시간도 포함이 된다. 교사는 학생들의 급식 지도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챙겨야 하고 점심시간에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떤 날에는 수저와 먹던 식판을 놔둔 채 달려 나가야 하고, 점심밥이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모를 정도이다. 교사의 빠른 퇴근 시간은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교사는 전전긍긍하며 늘 점심을 마음 편히 먹을 수 없기에 빠른 퇴근이 가능한 것이다.
교사의 행정 업무는 지나치게 늘어나기만 하고 있다.
내가 교사가 된 후, 그동안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하거나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손쉬운 대응 방법이 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하고 교사에게 필수 연수를 듣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늘어난 업무와 연수가 수두룩하다. 과연 실질적인 해결 방안인지는 모르겠다.
학교의 행정 업무 중에는 '이런 것까지 교사가 해야 하나' 싶은 일들도 있다. 교사인지 행정 직원인지 좀 헷갈리는 일들 말이다. 물론 공립학교 교사는 교육공무원 신분이니까 행정 업무도 담당할 수는 있다. 행정 업무의 종류와 총량이 늘어나서 점점 과중해지는 것이 문제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 사교육을 줄이기 위한 취지로 국가는 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수업을 하도록 했다. 방과후학교의 교과 수업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도입 초기에는 강사 채용보다는 본교 교사 수업을 권장했었다.), 운영을 위한 모든 행정 업무가 당연히 추가된다.(요즘엔 필요시 업체 선정, 강사 섭외, 채용, 강사비 지급 등)
- 학생들의 정신 건강을 염려하여 국가는 학생의 정서행동검사를 특정 시기에 학교에서 필수로 실시하게 하였다. 정서행동검사 결과 관심군, 위험군인 학생은 담임교사와 필수적으로 상담을 한다. 해당 학부모와도 상담을 한다.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도 담임교사가 정신 건강에 대한 상담 전문가는 아니다 보니, 실효성에 의문이 들긴 한다.
- 세월호 사건 이후로 생존 수영이 학교 교육과정에 추가되어 초등학교에서는 필수로 수업을 해야 한다. 행정 업무도 추가된다.
- 교육부의 고위직, 선출직인 교육감, 심지어 교육청에서 일하는 장학관, 장학사 등의 의지나 취향에 따라 학교에자꾸 그들의 업적이 될 만한 정책을 추가한다.
학생들이 중학교 때 진로탐색을 하면 좋겠으니까. 외국 사례를 보니 좋아 보이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실정엔 중 3은 고입 때문에 곤란하니까. 그럼 상대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는 중 1 때 자유학년제/자유학기제를 하라고 도입한다.
대입 제도의 실질적인 개선이나 변화 없이, 고등학교의 현실과 상관없이. 학생들이 문과 이과 구분 짓지 않고 저마다관심 있고 원하는 수업을 들으면 좋을 테니까. 수업 선택권을 주고 싶으니까. 고등학교에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
이 모든 정책과 제도를 도입해 놓고 실제 현장에서는 학교마다의 알.잘.딱.깔.센!을 요구한다.('선재 업고 튀어' 근래 인기 있었던 드라마 덕에 더 널리 알려졌을 것 같은 말,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이란 표현이 딱이다.)
- 국가는 보육도 학교로 밀어 넣어서 초등학교에서는 앞으로 '돌봄'을 넘어서 '늘봄'을 해야 한다. 새로운 제도를 학교에 도입하면 초반에는 예산을 많이 주면서 강사나 인력을 고용하라고 한다. 이후엔 슬슬 예산을 줄이거나 없애면서 결국 은근슬쩍 교사의 일이 되어 버린다. 운영을 위한 행정 업무는 처음부터 교사의 몫이다.
- 복지 업무(기초수급자 선정과 지원 등 교사가 마치 주민센터 직원이된 느낌이 드는 업무), 장학 업무(각종 장학금 지원 관련 업무), 교복 업무(교복 업체 선정, 안내 등), (민방위훈련, 소방대피훈련, 시설 점검) 안전 관련 업무, 수련회, 수학여행 및 현장체험학습 업무(업체 선정, 사전 답사, 계약 등), 정보 업무(각종 기자재 관련 일, 요즘은 학생들에게 일괄 지급한 태블릿 관리)등
- 바쁠 때 급하게 요구해서 늘 교사들의 화를 부르는 '[긴급] 00 국회의원의 어쩌고 저쩌고 관련 기록 몇 년치 자료' 공문 제출 요구 등(국회의원의 실적을 위한 필요 자료)
- 교사가 받아야 하는 필수 의무 연수는 언제나 추가되기만 한다. 심지어 교육부와 교육청은 작년에 문제 제기된 교권 침해 이슈를 두고, 교권을 침해하는 사람들에게 예방과 방지를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교권을 침해당하는 대상자인 교사에게 연수를 들으라고 한다. 무슨 문제든 교사가 연수만 들으면 해결이 되는 것인지?
학교에서의 교사의 하루는 수업을 하다가, 틈나면 행정 일하다가, 다시 수업을 하다가, 어떤 학생에게 달려가야 하고, 학부모 전화를 받고 있고, 서류 작성하고, 공문 뭐를 제출해야 하고, 회의한다고 부르고... 마구 뒤섞여 있다.
몸은 하나인데, 제발 좀 일 한두 가지만이라도 집중해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교사가 되기 전에는 학교에서 교사가 정신없이 다방면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일해야 하는 줄 몰랐다.
내가 이전 글에서 썼던 학습 지도나 담임 업무만 해도 제대로 하려면 교사가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연구하며 신경 써서 챙겨야 하는 부분이 많다. 교사들이 교육적인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텐데, 내가 실제로 겪어 본 학교는 교사가 해야 할 행정 일이 너무 많아서 정작 본질인 교육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공립학교의 교사는 몇 년을 주기로 학교를 옮긴다. 학교를 옮겨 다니다 보면, 학교 일의 문제점은 학교마다 업무 체계가 다르다는 점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특히 행정 업무에 있어서, 이 문제가 두드러지는데 일단 학교마다 업무분장이 다르다. 물론 학교마다 상황이 다르다 보니 업무분장도 다르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한다. 매년 교원 수가 변동됨에 따라 업무분장이 바뀌어야만 운영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업무분장은 거의 대부분업무 분배, 배정의 형평성과 인수인계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느껴졌다.
하나의 학교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학교 규모가 크든, 작든,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등 학교급에 따른 차이는 있겠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큰 틀은 비슷하다. 그렇지만 교사 입장에서 학교를 옮기면 학교의 업무 담당 부서 개수, 부서명이 제각각이고, 각 부서에서 하는 업무 내용도 학교마다 나누기 나름이라 일일이 찾아보아야 한다.
같은 부류의 업무를 처리하더라도 학교마다 서류 양식이 다르고, 업무 처리 방식도 달라서 학교를 옮길 때마다 학교 행정 업무를 할 때 비효율적이다. 우리나라의 학교 행정 업무 중 학교마다 존재하는 비슷한 기본 업무에 대해서는, 교육부나 교육청 차원의 공통 매뉴얼과 공통 양식을 마련하면 지금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업무 인수인계에 대해서는, 난 교직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은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젠 기대치가 낮다. 이전 연도의 업무 자료 파일만 전달받아도 다행스럽다.
학교에 안내된 작년 공문을 뒤지고 전임자의 기안문을 찾아서 살펴보고 업무 내용이 바뀐 부분을 챙겨가며 알아서, 잘, 혼자서 해결해 왔다. 어떻게든 일을 해내야 하니까 교사들의 집단지성에 의지하기 위해 업무 단톡방을 찾거나 업무 관련 인터넷 카페를 이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학교의 업무 환경은 각자도생이라, 신규 교사나 오랜만의 복직 교사들은 힘들어하기도 한다.
업무 분배와 배정 면에서 학교의 업무분장은 관리자의 권한이 크다.
업무분장 시 모든 교사에게 업무 희망서를 받고 인사자문위원회를 통해 업무 조정과 업무 배정 등을 결정하긴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주변 교사들은 본인 희망에 따라 업무 배정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나도 인사자문위원회 위원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학교에서의 업무 분배, 조정, 배정은 학교 관리자의 머릿속에서 결정된다. (주로 학교의 교감 선생님이 한 해 업무분장의 판을 짜고 교사를 배치한다.)
많은 업무가 몰려있거나, 누구나 꺼려하는 힘든 업무도 있으므로 기피 업무가 생긴다. 난 그동안 학교 생활을 하면서 학교의 업무분장은 업무 배정의 형평성을 잃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학교의 업무는 '강약약강'으로 배정된다. 신규 교사를 포함한 저연차 교사, 새로 학교를 옮겨 오는 전입 교사, 복직 교사, 기간제 교사 등에게 학교의 기피 업무가 배정되는 경우가 많다.
-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난 학교에서 교무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학교는 이례적인 전염병으로 학생들의 등교가 몇 번씩 미뤄지다가 결국 온라인 개학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해 내내 학사일정을 반복해서 고치고 검토하고 결재받고 공개해야 했다.
온라인 수업과 병행되는 일부의 등교 수업 등에 대응하기 위한 관련 회의의 반복, 끊임없는 가정통신문 제작, 발송, 안내, 학생들의출결, 수업, 평가의 구체적인 시행 방법 등을 고민하고 진행하느라 모든 학교의 교무 부서는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을 것이다. 교무의 어떤 업무도 시작하면 끝내지 못하고 반복하는 상황, 한 치 앞을 모르고 발생하는 변수에 대응해야 하는 비상 상황이었다.
방역과 관련해서 각 학교의 안전, 건강, 보건을 담당하는 부서도 일이 몰려서 대표적으로 미친 듯이 바쁜 부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심각한 감염병 상황에서 해당 업무가 아예 사라져 버리는 부서도 있었다.(등교 불가하여 학교 축제, 수련회, 현장체험활동 등 모든 행사가 사라짐, 방과후학교 운영 못 함 등) 당시에 학교에서는 이 비상 상황에서 부서별 업무 조정을 했는가. 우리 학교에서는 업무 조정 없이 바쁜 부서만 바빴다.
- 작년, 2023년에 학교에는 4세대 지능형 나이스가 도입되었다. 서이초 순직 선생님께서는 업무가 나이스 담당이었다고 한다. 작년에 나도 학교에서 나이스 업무 총괄이었다. 내가 맡은 다른 업무로는 생활기록부 총괄과 교무 부서의 여러 가지 여타 업무들도 있었다.
작년에 나도 4세대 나이스 총괄 업무를 경험했기에(난 이전에도 나이스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나이스 업무는 서이초 순직 선생님과 같은 신규 2년 차 선생님에게는 부적절한 업무 배정이라는 것이다. 나이스 업무는 전교사가 나이스 시스템으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나누어주고 제대로 기능하도록 권한을 관리한다. 신규 교사는 학교 전반의 일을 잘 모르기 마련이라 이 부분에서 어려울 수 있다. (그나마 서이초 순직 선생님께서는 홀로 나이스를 총괄하는 업무는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작년의 경우에는 4세대 지능형 나이스 도입에 따라 혼란스러운 일들이 많았기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나이스 업무를 경험해 본 나도 작년에는 4세대 나이스의 다양한 오류로 참 힘들고 곤란했다. 많은 연수를 듣고, 학교에 전달하고, 4세대 나이스 체계를 잡아서 권한 부여하고, 선생님들은 뭐가 안 된다고 연락하시고. 계속해서 발생하는 오류를 신고하고 문의하고 해결하고 혼자 감당하기 참 어려웠다.
- 전입 교사로 새 학교에 간 나는, 전입 오는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던 생활지도부 부장님을 만나서 학교에서 남겨 놓은 자리인 생활지도부 기획 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땐 학교에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던 시절이고 기획이 그 일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 해에는 서류가 두껍게 쌓일 정도로 학폭위가 열 건도 훨씬 넘게 많이 열렸고 난 저녁도 거른 채 학교에서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내가 교사인지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인지 모를 나날이 이어졌다. 학교폭력 업무에 대한 비담임 배려도 없던 때라, 담임도 하면서 무슨 연구학교 담당까지 해야 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00 연구학교 해당 학년의 담임 자리를 모조리 당해 전입 교사로 배치했다.)
경험상 학교에서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다음번엔 더 많은 역할과 일이 돌아왔다. 본인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목소리가 크거나, 잘 울거나, 담임을 하며 학생, 학부모의 민원이 많았던 교사에게는 비담임인 쉽고 양이 적은 업무가 돌아간다.
학교의 업무 문화는 이상하게도 일하는 사람에게만 죽어라 일이 몰리고,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편해 보인다.
어차피 학교 일이 종류도 많고 경중을 따져서 공평하게 배분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업무 순환제를 강력히 희망한다. 학교에는 업무분장에 대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교직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고, 아직도 관리자의 권한에 크게 좌우된다는 현실은 서글프고 절망적이다.
교사가 학교에서 하는 일인 학습 지도, 담임 업무, 행정 업무에 대하여 최근 세 편의 글에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덧붙여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휴직 전의 난, 학교 행정 업무가 아무리 많아도 우리나라에서 담임 제도가 사라져서 '담임'이란 업무만 없다면 아직은 교사를 할 만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담임 업무는 해마다 복불복으로 때로는 행정의 기피 업무보다도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