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하는 교사의 역할 중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더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단연코 '담임 업무'이다.
분명히 교직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는 감격스러웠다. 기대가 되었다. 학교에 '우리 반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선배 선생님께서 "교직의 꽃은 역시 담임이지"라고 하는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좋은 담임이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했었다.
초심을 잃은 건가. 아니, 지금도 이왕이면 '좋은 담임'이 되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다. 다만 교사도 사람인지라, 요즘 우리 사회와 학교에서 담임교사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책임에 시달리다 보면 어느덧 몸과 마음은 지치게 된다.
흔히 교사는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고들 한다. 솔직히 방학이 없다면 교사는 진작에 쓰러져서 죽었을 것만 같다. 딱 죽겠다 싶을 때, 방학이 온다. 방전된 배터리처럼 마모되어 닳아버린다. 겨우겨우 방학에 회복한 힘으로 다음 학기를 버틴다. 학교에서는 많은 담임 선생님들이 아프다.
담임(擔任) : 어떤 학급이나 학년 따위를 책임지고 맡아봄. 또는 그런 사람.
'담임'이란 두 글자 아래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은 엄청나다.담임을 맡는 순간, 일 년 동안 내 학급 학생들의 거의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 한다.
아이를 낳고 키워 본 부모들은 안다, 한 사람을 평생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그 무게감을. 담임은 비유하자면 '학교에서의 부모'와 엇비슷하다. 한 아이가 아닌 스물몇, 서른몇 명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교육하고 관리하며 책임진다. 그나마 '일 년'이라는 기간 한정이라 퍽 다행이다 싶지만, 대다수의 교사는 매년 새로운 학급의 담임을 맡기 마련이라 결국 이 무거운 책임은 계속 도돌이표다.
'중 2병'이란 말로 알 수 있듯, 중학생들은 아직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다. 사춘기인 내 자녀 한 명도 버겁기 마련인데 학교 안에서 중학생 여럿을 데리고 있는 담임교사의 어려움은 어떨지 짐작이 될 것이다. 때로는 부모도 못하는 것을 담임교사란 이유 만으로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당연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담임 선생님이잖아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면 다를 거예요"라는 말로.
대한민국의 교사라면 누구나 그동안 담임을 하면서 만나본 힘든 학생과 학부모에 대한 에피소드가 수두룩할 거다. 각자의 경험담을 밤을 새워가며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 A는 새 학년이 되고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같은 반 친구 몇 명을 학교폭력으로 117에 신고했다. 담임교사가 주말에 A의 학부모 문자를 받고, 상담을 하며 상황을 알아보던 차에 A는 곧바로 학교폭력 신고를 해버린 것이다. 신고를 하면 사안은 절차에 따라 학교폭력 사건으로 다뤄지게 된다. 담임교사가 더 이상 상담을 해보거나 중재할 수 없다.
신고를 당한 B와 C의 아버지는 다짜고짜 학교에 와서 "선생님은 뭘 했냐"라고 담임교사를 찾아 소리를 지른다. 학교 관리자도 담임교사에게 와서는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고 담임 탓부터 한다.
A와 B, C, D 등의 부모들 간에 말다툼이 이어진다. 이제는 학부모들의 싸움이다. 그 과정에서 모두가 담임교사에게 시도 때도 없이, 밤에도 전화와 문자로 연락해서 각자의 입장을 흥분한 채 날 것으로 쏟아붓는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리고 결과는 '조치 없음'이었다. A와 관련된 친구들의 입장, 진술 내용이 저마다달라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A가 주장한 피해 내용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 발을 걸어서 넘어질 뻔했다,지나가는데 고의로 어깨를 친 것 같다'와 같이 주관적이었다. A의 학부모를 상대하던 경찰은 계속해서 민원에 시달리다가 "담임 선생님은 오죽하겠어요"라며 담임교사를 위로하고 걱정했다.
학폭 결과에 불만족하고 학교와 교사를 원망하는 A, B, C, D 등 학생과 학부모는 이후 일 년 내내 담임교사에게 무례한 태도로 과도한 요구를 하고 각종 민원을 제기했다.
- 가출이 잦았던 E는 어느 날 식칼을 들고서 학교 교무실에 찾아왔다. 흉기를 들고 학교에 왔으나 다행히도 사고는 없었다. 다른 사고가 있었다면 아마도 뉴스에 보도되었을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졸업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된 E는 동생의 보호자 격이 되어, 학교에 민원을 제기하러 계속 전화를 하거나 찾아왔다.
- F가 친구와 싸웠다는 연락을 받은 F의 아버지는 술에 취한 채 학교로 달려왔다. F가 몇 반인지도 잘 모른 채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담임교사의 이름만 기억하고 '000 씨'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교사들이 간신히 F의 아버지를 진정시킨 후에야 담임교사는 상담을 시작할 수 있었다.
- G의 부모님은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으로 한국어를 전혀 못한다. 담임교사는 G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님과 나누기 어려웠고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다. G는 동생이 많았고 동생을 돌보거나 가사를 하느라 학교에 제대로 나오기도 힘들어했다.
- H는 수업 시간에 갑자기 교실에서 쓰러졌다. 응급처치 후 담임교사는 H의 보호자가 되어 119 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갔다. 보호자에게 바로 연락을 했으나 보호자는 병원으로 빨리 오지 않았다. 담임교사는 H에 대한 염려 외에도 학급의 다른 학생 때문에, 미루고 온 수업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 I는 게임 중독과 유흥을 위한 잦은 밤 외출 때문에 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다. I의 유일한 보호자와는 늦은 밤에만 겨우 통화가 가능했다. 미인정결석이 계속되어 담임교사는 가정방문을 했고, 매일 I와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고 집까지 찾아가서 깨우며 학교에 나오게 하려고 노력했다. I와의 갈등이 계속되던 보호자는 전화로 담임교사에게 "차라리 퇴학시켜 버리라"며 소리를 지르고, 담임교사를 수신차단해 버렸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퇴학이 불가능하다.)
I와 보호자는 담임교사의 연락은 무시하면서도 내킬 때 아무 때나, 새벽 3시, 4시에도 연락을 해왔다. I는 담임교사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담임교사는 I 일로 경찰에게서 연락을 받는 일도 몇 번 있었다. I가 무인가게의 물건을 훼손하거나 가출해서 폭력 사건을 일으키는 등 법원에 출석하고 특별교육을 받아야 하는 일이 잦았다. 어쨌든 담임교사는 일 년 내내 I의 출석을 위해 애썼고, 학업중단숙려제를 쓰면서 출석일수를 아슬아슬하게 채운 I는 진급을 할 수 있었다.
- J는 평소 심한 스트레스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는 습관이 있다. 게임을 즐겨하다가 음담패설을 비롯한 욕설에 익숙해졌는데, 친구에게 SNS로 패륜적인 욕설을 포함한 여러 말들을 해서 사이버폭력으로 신고당했다.
학교에서는 사소한 말다툼 중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가위로 친구를 위협했다. 담임교사는 상담과 지도 후 J에게 학교에서 진행하는 심리상담부터 받게 했다. 그러나 J의 학부모는 담임교사와 사건으로 상담을 할 때마다 J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J는 가위 사건 이후에도 주말에 사적으로 집에서 친구와 어울리던 중에 화가 나서 과도로 친구를 위협하기도 했다.
- K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강한 학생으로 교우관계 문제 때문에 새 학년이 될 때 5-6명의 친구와 분리되어 진급했다. K는 사실 친구들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지나친 자기주장으로 교과 선생님들과의 갈등도 잦다. 담임교사가 K의 입장과 요구를 배려하며 30번이 넘는 상담을 했음에도, 연말에 진급할 때 또다시 다른 5-6명의 친구와 분리시켜야 했다. 다시 새 학년이 된 K는 여전히 학급에서 새 친구들과의 갈등을 겪다가 결국은 서로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했다.
- I가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일으킨 각종 사건과 사고들, 하교 후에. 등교 전인 새벽에. 주말에. 방학 중에 일어난 일도 전부 담임교사에게 연락이 온다. 책임을 지고 해결을 하라고 한다. K가 하굣길에 학교에서 나가다가 일어난 친구와의 갈등 상황도 학교 탓이고, 담임교사에게 책임지고 해결하란다.
L은 학교 밖에서 오토바이를 훔치고 흡연과 음주를 한다. 가출하여 다른 지역, 다른 학교의 또래 친구들과 거리를 배회한다. 남의 돈을 도용해서 킥보드를 타고, 초등학생을 데려다가 갈취를 한다. 비행을 넘어서 범죄에 해당하는 일도 학생의 일이기에 결국에는 돌고 돌아 담임교사가 학교에서 처리하고 감당해야 할 몫들이 남겨진다.
내가 경험한 사례만 해도 A부터 Z까지 금세 채울 것 같다. 담임 선생님이라면 다들 n번째까지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사례는 모두 거짓 한 점 없는 실화이고 교직생활 십오 년 중에 실제로 내가 겪은 일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당시에는 몰랐지만 (경찰에 신고해야 할 정도로) 내가 위협을 느낄 만한 상황도 제법 있었던 것 같다.학교 안뿐 아니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 학생의 개인사까지 감당하다 보면 담임교사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통탄하게 된다.
심각한 점은, 매해 한두 명씩은 꼭 만나기 마련이던 이 힘든 사례들이 현재에는 점점 더 몸집을 불리며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그나마 학생의 성장과 긍정적인 변화를 보며 보람을 느꼈던 예전에 비해 근래 학생과 학부모는 철옹성 같기만 하다.
교권의 추락과 더불어매년한 학급 안에서 다수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다양한 이유로 교사를 힘들게 한다.우리 반 교실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있다. 담임교사 한 사람만의 '노오력'으로 매해 반복되는 모든 일에 대처하기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담임교사는 학생에 대해 생활기록부에 사실적시나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조차 없다. 요즘 생활기록부는 오로지 학생에 대한 칭찬과 긍정적인 평가만을 교육적이라고 여기고 권장하는 것 같다. 생활기록부의 부정적인 피드백은 수정을 해야 하거나 또다시 교사에게 민원으로 돌아오는 등 대개의경우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한 해 동안 담임교사가 힘든 사례를 감당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반의 다른 학생들에게 향하게 된다. 담임교사도 사람이라서 지치고 소진되면 중간에 병이 나기도 하고, 한 해를 견디더라도 우리 반의 다른 학생들에게 쓸 에너지가 부족해진다. '더 즐겁고 행복한 우리 반'을 만들고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담임교사가 혹독한 해를 반복해서 겪다 보니결국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담임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처음에 내가 담임교사를 맡았을 때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점이 하나 있다. 담임교사의 개인 연락처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담임'이니까 그저 당연하다고만 여겼는데, 다른 어떤 직업도 개인 연락처를 공용으로 쉽게 공개하지는 않는다.담임교사들은 콜센터처럼 수시로 온갖 민원에 시달려 왔다. 그런데 세상의 어떤 콜센터 직원도 '개인 연락처'로, 마감 시간을 넘어서 밤낮없이, 주말이나 휴일에까지도 민원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통화가 연결되기 전에 욕설 등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대한 경고와 주의 안내 멘트가 나오고 통화는 자동녹음이 된다. 여전히 아무 때나 걸려오는, 학교 교사가 받는 전화에서는 욕설과 고성이 먼저 나오기 다반사이다. 학교 내선 전화에는 아직도 자동 통화 녹음 기능이 없다.
마치 교사에게는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보호받을 인권이 없어 보인다.교사가 처한 현실이다.
요즘에는 사비를 들여서 투폰을 사용하는 선생님들도 있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끊임없는 연락에 시달리다 보니 사비를 들여서라도 업무용 휴대폰을 분리하고 정해진 시간에만 응대를 하는 것이다. 나도 만약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투폰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교육부와 교육청에서 교사들에게 필요한 업무용 휴대폰을 충분히 지급하거나 학교 교실과 교무실의 공식 연락처만을, 업무 시간 내에만 허용하는 것이 당연히 옳을 것이다.
많은 선생님들이 아프고 우울하고 심지어 세상을 떠나기까지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담임교사로서 겪게 되는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는 상황,악성 민원이 상당한 이유이리라 짐작된다.
특히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담임을 맡아야만 하고, 더 어린 학생들을 교육하는 초등학교에서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 같다. 초등학교도 교육 기관인데 어느샌가 요즘 학부모들은 보육 기관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교육'이 아닌 (보육 서비스 같은) '교육 서비스'를 요구한다. 그것도 본인 아이에게 맞춤형인 개별 교육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학부모가 되고서야 초등학교에서는 일기 쓰기 활동이 사라진 것을 알고서 놀랐다. 민원 때문에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평소에 꾸준히 쓰는 일기는 쓰지 못하게 한단다. 어쩌다 한 번씩 주제를 정해주고 주제별 일기 쓰기만 가능했다.
아이가 저학년일 때, 담임 선생님께서 받아쓰기 시험을 보거나 학교 숙제를 내면 어떤 학부모는 아이가 (사교육 등으로) 바쁜데 학교에서 하라는 일까지 많다고 불만스러워했다. 반대로 받아쓰기나 숙제가 아예 없는 경우에 어떤 학부모는 요즘 학교에서는 너무 가르치질 않는다고 불만이었다. 저마다 기준이 다르기에 모두가 만족할만한 학교는 없었다.
작년부터 사회적으로 드러난 교직 관련 이슈는 아동학대 신고 위험성이 얼마나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지 잘 보여준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도 본질적으로는 초등학교와 상황이 비슷하다. 어차피 초등학교에서의 '그 학생'과 '그 학부모'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진급하고 있다.
아직까지 내가 아동학대 교사로 신고받은 적이 없는 것은 내 운이 좋았을 뿐, 학교에서는 누구나 언제든 아동학대 교사로 신고받을 수 있다.
교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믿음, 가르칠 권리와 함께 교사의 인권이 사라져 가고 있다.
학교에서 '교육'을 하기 힘든 요즘 담임교사로 살기 정말 어렵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버텨야 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