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율 Aug 26. 2024

교직 탈출은 저경력순, 재력순

- 나는 어쩌지?

  "△△가 의원면직을 했대."라는 언니의 목소리에 나는 통화 중에 멈칫했다. 친한 대학 선배인 언니와 나는 새 학기를 앞두면 으레 서로의 고충을 나누면서 마음을 다독이는 전화 통화를 하곤 했다. 

  교사라서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상황과 감정이 이해되고 혹은 말하자마자 곧바로 깊이 공감하는 대화가 가능하다 보니, 직장 이야기는 때론 가족에게 말하는 것보다도 언니와의 통화에서 더 큰 위안을 얻었다. 그런데 같은 대학 선배이고 언니의 친구이기도 한 △△선배가 교사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교사 같은 공무원의 경우, 일을 그만두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지칭한다. 

 - 의원면직 : '본인의 청원에 의하여 직위나 직무를 해면함'을 의미함, 20년 경력 미만인데 교사, 공무원을 그만두는 경우에 해당됨. 

  참고로 공무원연금은 10년 이상 재직해야만 퇴직 후 연금 수령 가능(혹은 일시금 선택 가능)하고, 근속 10년 미만일 경우에는 연금을 일시금으로만 받을 수 있음.

 - 명예퇴직 : '정년이나 징계에 의하지 아니하고근로자가 스스로 신청하여 직장을 그만둠'을 의미함, 교사, 공무원으로 20년 이상 근속하고 자진하여 퇴직할 경우에는 명예퇴직 수당이 있음.

 - 정년퇴직 : '정하여진 나이가 되어 직장에서 물러남'을 의미함, 현재 국공립학교 교사의 정년은 만 62세.(최근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는데,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가 있음 참고.)


  면직이든 퇴직이든 요즘 교사를 그만두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도 정년까지 채우지 않고 명예퇴직을 하는 선생님이 상당히 계셨다. 그래도 내 지인인 대학 선배까지도 의원면직을 선택했다고 하니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교사 퇴직, 이직의 거센 물결이 내 가까이에 다가온 느낌이었다.

  학교 일로 힘들어하는 언니를 위로하고 "우리 한 5년 정도만 학교에서 더 버티고, 제2의 일이라도 함께 준비하며 명퇴 계획을 세워보자"는 말로 으쌰으쌰 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대학 시절, 어쩌다 보니 임용을 준비하게 된 나와 같이 스터디를 했던 언니는 안정적인 공무원으로 '가늘고 길게' 살기를 희망하면서 교사의 길을 준비했었다. 언니와 나는 어쩌면 청소년기에 불어닥쳤던 IMF 사태라는 혹독한 시절을 보며 직업의 안정성에 가치를 두었던 세대여서 그랬는 지도 모른다. 

  막상 우리가 교사가 되어 십몇 년 만에 마주하게 된 교직의 현실은, 처우 면에서 '가늘기만' 하고 점점 더 힘들어져서 보장된 정년까지 '길게' 할 수는 없어 보인다.

 


교단 떠나는 MZ교사들 (출처 : EBS뉴스, 2024.07.29. 자)
사라지는 젊은 교사들 (출처 : BBC뉴스코리아, 2024.07.24. 자)


  교직에서의 탈출은 지능순이 아니라 저경력순, 재력순인 것 같다. 

  교사 커뮤니티에서도 면직과 퇴직 관련 글이 증가했고 교직 탈출기를 보여주는 퇴사 브이로그나 영상물도 많아졌다. 특히 젊은 교사들의 탈출러시가 두드러진다. MZ세대(1980년대~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Z세대를 아울러 부르는 말) 교사들의 교직 이탈을 보여주는 사례와 정보들이 넘쳐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초등교사 가운데 20~30대 비율은 43.2%(8만 3240명)로, 10년 전(9만 6776명)과 비교하면 10% 넘게 낮아졌다고 한다. 신규 채용 규모가 줄어든 데다 이탈하는 젊은 교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2년 3월부터 2023년 4월까지 퇴직한 근속연수 5년 미만 초·중·고 교원은 589명으로 전년 동기(303명)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교직 탈출이 저경력순인 까닭은 솔직히 '나라도' 그럴 것 같기 때문에 공감이 된다. 

  교권 추락으로 보람을 얻기 어려워진 학생 지도, 학부모 악성 민원의 쇄도, 과도한 학교 업무, 연대가 어려운 교직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악한 처우는 교사의 사기를 저하시킨다. 오늘날 학교 현장에서 몇 년 일해보면 열정은 민원을 부를 뿐이고 사람은 소진되어 버린다. 해를 거듭할수록 개인을 갈아 넣어야 하는 시스템이 보인다. 이러한 교직 환경이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으므로 개인은 이탈하게 된다.

  내가 신규교사일 때, 근무 손에 쥔 월급은 백칠십여만 원이었다. 게다가 내 월급의 앞자리 숫자가 2로 바뀌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지금과 같은 혹독한 교직 경험을 하면서 저연차 월급을 받는다면, 학교에서의 미래를 꿈꾸기 어렵다. 당연히 나도 탈출을 결심할 것 같다. 

  젊다는 건 시간과 가능성과 또 다른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니까. (MZ교사의 교직 이탈 사례를 살펴보면, 이직을 위해 아예 다시 수능을 보는 경우도 있다.)


  혹은 교직 탈출은 재력순이다. 교사 커뮤니티뿐 아니라 맘카페에서도 워킹맘들이 가끔 '자산이 얼마나 되면 일 안 할까요'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일이든 생계형 직업이 아닌 취미로 하면 좋겠다는 건 많은 직장인들의 로망이다. 

  일을 취미로 하면 왜 좋을지 나도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해당 일에 대해서 충분히 '선택 가능'하고 '통제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계를 위해) 반드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내 의지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일이 되므로 행복과 만족을 느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나는 어쩌지? 일단 난 'MZ세대'에서 M에 걸쳐있긴 한데(이젠 젊다고 하기엔 애매한-), 호기롭게 교단에서 훌쩍 내려오기에는 홑몸이 아니라 가정이 있고 부양가족도 있는 생계형 교사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머릿속 한편에, 서랍 한 구석에 사직서를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직서를 실제로 던지느냐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교직 탈출을 놓고 내 나름대로 기준을 생각해 보았다. 

1. 학교에서 일하면서 죽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면(특히 정신적 고통) 일을 중단하거나 혹은 아예 그만두는 것이 옳다. 무엇도 내 생명과 건강보다 중요하진 않으니까. 세상에는 다른 일도 많다.

2. 학교에서 소진되어 너무 힘들면 우선은 휴직이라도 해보자. 교사와 공무원의 장점은 휴직 제도이다. 조건만 해당되면 여러 가지 휴직이 가능하다. 휴직 기간을 직업에 대해 고민해 보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 현재의 난 여기에 해당된다.

  휴직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고민하고 준비할까에 대해서는 내 생각이나 계획, 노력 외에 주변 사람들의 진심 어린 조언도 참고해 볼 만했다.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기 객관화가 필요해."

  "네가 왜 힘든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 글이라도 써보면 어때?" 

  교직의 장단점을 고민해 보고 분석해 볼 필요가 있었다. 만약 면직하고 교사가 아닌 다른 삶을 산다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레퍼런스가 필요했다. 이직을 한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대비해야 했다. 또한 교직에 남아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야만 했다. 

  그래서 올해 난 이 과정을 기록하면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내 길 위의 파랑새를 찾길]


  

   

매거진의 이전글 물조차도 내돈내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