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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Jul 05. 2021

글도 안 써질땐 뭘로 위로를 받을까요

결국 3만원을 지불하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글로써도 우울을 달랠 길이 없을 때가 있다. 감정 정리가 안되고 헝클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음을 하나로 추스를 수 없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들엔 아무리 글을 쓰려고 컴퓨터를 켜도 어디에 내놓을 수 없는 울먹이는 감정들만 휘날리듯 춤을 추다가 백스페이스(Backspace)에 의해 강제 퇴장을 당하고 세상에 얼굴을 못 내밀고 사라져 버린다. 


얼마 전의 내가 그랬다. 찬란한 봄은 오고 있는데 나한테는 왜 이렇게 모진 찬바람만 불어와 살을 에이는 느낌이 드는지  "세상 너 정말 왜 이래?" 싶게 하루하루 견디기가 힘들었다. 마흔 하고도 몇 해를 더 살았으면 이제 인생살이에 굳은살이 배겨 '뭐 이까이꺼 쯤이야!' 이래야 할 텐데 그냥 지금 딱 죽어도 별로 미련도 없을 것 같다는 우울한 생각이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왔다. 


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다. 내 꿈은 가늘고 길게 살아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아이를 낳아 무럭무럭 키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리고 개똥밭에 구르더라도 이승이 좋다는 말에 절대적인 찬성표를 던지는 목숨에 끈질긴 애착을 가지는 전형적인 얕은 인간이다. 

이런 내가 갑자기 삶에 대해 시들해졌다는 건 두 가지 이유이다. 한 가지는 자아를 잃었다는 것. 내가 나아갈 방향의 의미를 찾지 못해 사는 게 아주 아주 재미없다는 것.

두 번째는 나를 둘러싼 내 주변인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 그들이 던진 운명의 절망적인 덫 속에서 나 혼자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할 때.


글을 써서 내면을 다독이며 위로받을 수 있는 상태가 그나마 내가 안정된 심리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몇 줄의 감정 엉킴을 토해내는 게 아니라 어색함이 없는 문장들을 모아 한 문단을 만들고 이어짐이 힘들지 않은 여러 개의 문단들이 모여 한 편의 글이라는 걸 쓸 수 있는 모습일 때는 내가 살아 숨 쉬는 순간들이 허덕거리지 않고 평온하다는 걸 알았다.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순간을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디로 사라지고 싶어."

"이해해. 나도 그럴 거 같아."

이십여 년을 함께 자란 동생이 동감을 할 때는 멘탈 갑인 내 에너지가 방전되어 한동안 충전하기도 어려워 보일 때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순간들은 몇 년에 한 번씩 걸리는 감기처럼 아주 드물다. 

동생은 혼자 나가 맛있는 밥이라도 사 먹으라며 계좌에 돈을 입금해주었다. 뇌가 까슬까슬 모래알 같은 부스러기들로 가득 찬 느낌인데 입맛이 있을 리가 없다. 


힘든 순간을 신앙으로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나랑 친한 몇몇 사람들도 각자가 믿는 신에 의지하며 기도로서 막혀버린 길이 어느 방향으로 건 뚫리길 소망한다. 때로 갈림길에 놓여있을 때에도 어느 방향으로 길을 가야 옳은 건지 신에게 묻는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신의 응답이란 건 없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그게 신이 나에게 정해준 방향이려니 생각한다. 


난 어느 특정한 종교에 대한 뚜렷한 한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불교는 불교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힌두교는 힌두교대로 나름 다 좋은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심지어 토속 신앙마저도 궁극적으로는 신이라는 하나의 영역으로 집결되어 보이지 않는 우주의 기운을 끌어당기는 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 특별한 신앙이 없어서였을까? 이번에 걸린 마음의 감기가 이주일 동안이나 낫질 않았다. 


결국 힘듬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3만 원에 위로의 길을 찾고자 결정했다. 대략 10분 정도의 짧은 상담이지만 들을 말만 액기스처럼 뽑아주는, 나와 종교 가치관이 비슷한 친구들 사이에서 일명 박사주라 불리는 상담사에게 전화를 했다.


"올 해는 딱 세 가지네요. 공방살, 비행기운, 자식. 남편이랑 좀 떨어져 지내세요. 비행기 타고 출장 가서 며칠씩이라도 꼭 혼자 지내다 오세요. 남편이랑 계속 같이 붙어 있으면 이유 없이 남편을 미워하게 될 거예요. 자식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으니 너무 속 끓이지 말고 내려놓으세요. 그냥 내가 지고 갈 운명인데 어쩌겠어. 마음 내려놓고 살아요. 내년에는 자식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이 줄어들 거예요."


뭐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힘들어하는 두 가지 이유를 족집게처럼 알아맞힌다. 

그래. 이게 내 올해의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한 해동안 신이 내게 순 이 숙제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끝나는 날이 오겠지. 시간이 이렇게도 물처럼 빨리 흐르는데 흐르지 않고 멈춰있는 고민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 마음의 짐은 나 스스로만이 내려놓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외부의 누군가가 나를 위로하고 이해한다고 짐이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내가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스스로 내려놓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다시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지난 몇 달 동안 평온하게 글을 써나갈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행복했던 시간인지 새삼 깨달았다. 글로서라도 내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는 건 그나마 숨 쉬는 순간들이 자유롭다는 의미였다. 

숨 쉬는 것조차 버겁고 귀찮게 느껴지는 순간엔 글이 도통 써지질 않았다. 

내가 글이 써지지 않는 그 순간에도 종종 울리는 브런치 구독자들의 글 발행 알람을 볼 때마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부러운 마음들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용솟음쳤다.  

그들이 글을 쓰는 순간에 얼마나 행복했을지 그 마음들에 샘이 났다. 


이제 나도 시냇물처럼 힘듬을 흘려보내고 평온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한 글자씩 타이핑을 치며 그 다음 줄로 편안하게 넘어갈 수 있는 순간이 이렇게 큰 안정감이 함께 존재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에 무한 감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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