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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상과 양희경, 연기의 바다를 항해하다

by 이재윤

박이웅 감독의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개인적으로 올해의 영화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 만든 영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관왕을 휩쓴 이유가 고스란히 스크린에 담겨 있다. 폐쇄적인 어촌마을이라는 미시적 공간에서 희망과 절망, 탈출의 몸부림, 그리고 인간의 본연의 욕망이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서사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특히 영국 역의 윤주상, 판례 역의 양희경 배우는 수십 년 어촌에서 삶을 일군 사람들의 모습을 압도적인 연기력으로 그려낸다. 일평생 어민 생활을 해온 듯한 윤주상 배우의 쩌렁쩌렁한 발성과 묵직한 존재감은 영화의 중심축을 단단히 지탱하며, 매력을 한층 높여주고 있는 무처부당한 캐릭터이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오랜 세월을 건너온 갈매기의 울음소리처럼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으며, 영국과 판례가 주고받는 대사를 들으며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훤히 들여다보는듯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좌 영국, 우 용수 © 트리플픽쳐스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주요 서사는 영국이 가짜 죽음을 도모하여 보험금을 노리는 용수를 돕는 이야기다. 설정이 다소 황당하여 리얼함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했으나 결말에 다다르면서 그 이면에 숨겨진 드라마가 서서히 드러나고부터는 용수의 절실함을 이해할 수 있다. 답없는 동네를 떠났던 형락처럼 용수도 폐쇄적이고 암담한 미래가 그려지는 이 어촌에서 벗어나 잘 살고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늪처럼 느끼던 마을로 다시 돌아올수 밖에 없었던 형락을 보며 처절한 현실을 숨김없이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 마을에 왜 돌아왔냐는 말에 형락의 답






© 트리플픽쳐스

용수로 인해 고요했던 마을이 떠들석해지고, 영국은 용수의 꾐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판례는 아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미련에 사망신고를 연기하며 실종 수색이 속절없이 길어진다. 그렇게 일이 좀처럼 뜻대로 풀리지 않으며 영국은 점차 불안감에 시달린다.


처음에는 영국이 왜 용수를 도와야 하는지 그 동기가 모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영국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고, 그 속에서 행동의 이유가 명확해진다. 마을을 떠나고 싶어했던 자신의 딸을 이기심으로 붙잡아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했던 과거의 상처가, 용수의 든든한 조력자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거칠고 볼통스러운 노인의 마지막 몸부림을 그린다.






영국과 영란 © 트리플픽쳐스

영국은 용수 외로도 영란과 함께 대사관에 가거나 힘듦을 자처하지 말고 고향으로 떠나라고 다그치는 모습에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애씀이 보인다. 그 반대로 용수의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는 판례에게서 세대간의 불통 또는 과거 영국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마을을 벗어나려는 용수, 과거에 떠났던 형락, 그리고 지킴이가 된 영국의 각기 다른 서사에서 우리는 어디에 속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는 단일한 주제를 다루지 않고, 이주노동자의 삶, 시골의 폐쇄성, 가족 관계, 자본주의 등 여러 주제를 복합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복잡성이 때로는 서사를 다소 어수선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모든 주제가 결국 '탈출과 귀환'이라는 하나의 축으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뛰어난 구성력을 보여준다. 특히 "갔냐?", "그래 갔다!", "됐어 그럼!"이라는 영국과 판례의 짧은 대화는 수십 년 삶의 애환이 압축된 걸작 같은 대사다.






© 트리플픽쳐스

윤주상과 양희경 배우의 연기 앙상블은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가장 큰 보물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윤주상 배우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 수십 년의 세월을 표현하고 있으며, 형락을 연기한 배우 역시 등장 시간은 짧지만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 역할을 톡톡히 소화해낸다. 갈매기처럼 바다 위를 서성이며 지킴이가 된 영국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를 본다. 오늘도 어딘가의 바닷가에서, 그는 한 마리 갈매기처럼 마을의 소용돌이를 잠재우며 잔잔한 파도 위에 자신의 삶을 새기고 있을 것이다.




잔잔한 파도처럼 다가와서는
삶의 가장 깊숙한 곳을 흔드는 영화

― 엄태화 감독






© 트리플픽쳐스

P.S.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영국이라는 인물의 뜨거운 삶에 대한 경의를 느끼게 된다. 엄태화 감독의 말처럼,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뜨겁고 진실된 인간 드라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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