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번 반복된 미키, 반복된 봉준호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표면적으로는 SF 블랙코미디를 표방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 간의 계층과 노동 착취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원작보다 더 미키 반스를 그저 소모품으로 활용되는 모습에 집중조명하며, 원제 미키 7에서 제목을 미키 17로 확장한 것은 미래 사회에서 윤리적 문제가 희석된 채 인간 복제가 쉬운 상황을 더욱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라는 명칭의 직업은 현대 사회 노동자의 소외와 계급주의의 은유다. 미키는 작 중 내내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지 않는 도구로서 이용되는데, 특히 인트로에서 미키가 위험에 처했을 때 미키보다 화염방사기를 더욱 반기는 티모의 모습은 미키가 평소 어떤 취급을 받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키 17은 화끈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줄 아는 미키 18과 대조된다. 18의 성격이 복제 중 오류라기보다는 그 화끈한 성경이 원래 미키의 성격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동자라는 계급, 도구라는 그의 위치가 그를 주눅들게 하고, 자신 없게 만들고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 돌리며 17번째에 다다라서는 쭈굴이가 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품었다. 마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받는 대우처럼 말이다.
그가 받는 대우가 가장 압권으로 표현되는 장면은 마샬과 카이의 식사 장면이다. 미키가 받는 건 익히지 않은 시뻘건 배양육이고, 백인 순혈의 카이가 받은 것은 고급 스테이크였다. 크게 보면 인권유린일 수 있는 마샬의 부당한 행동에서 무덤덤하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기는 17의 태도에서 가엾고 동정의 감정을 느낀다. 상류층이 미키에게 대하는 이런 태도들은 「기생충」에 이어 우리들을 그득한 불쾌감에 휩싸이게 만든다.
미키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빠르게 소비되는 모습을 보며 내내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가 떠올랐다. 콜센터에서 일하던 소희가 회사에서의 부당한 대우를 겪으며 본인의 성격도 잃고 자살까지 한다. 영화 제목처럼 소희의 자리는 또 다른 '다음 소희'가 대체된다. 미키 또한 마찬가지다. 1번이 되었고, 2번, 3번, 4번, 그리고 17번까지 대체된다. 복제가 쉬운 시대에서 착취를 당하는 미키를 보며 우리는 윤리적 문제에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봉준호 감독의 함의를 느낀다.
미키의 죽음은 인류 발전에 철저히 이용되는데, 이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거대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소모되는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런 희생을 통한 발전의 혜택은 결국 백인 우월주의에 젖어있는 마샬과 같은 상류층에게 돌아간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아이러니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하는데, 인간들은 오히려 미키의 죽음을 재촉하는 반면, 괴물처럼 보이는 크리퍼들이 오히려 미키를 살리는 모습에서 그 아이러니가 절정에 달한다.
현재 『미키 17』은, 마치 영화 속 니플하임의 눈보라처럼, 많은 혹평 속을 지나고 있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 「기생충」 등에서 다뤘던 기득권과 약자의 대립이라는 주제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많은 혹평 속에서 나도 조금 첨언을 더하자면 멀티플이라는 주제를 매력적으로 잘 버무리지 못해서 아쉬웠고, 18의 화끈한 성격 하나로 얼렁뚱땅 해피엔딩으로 가는 모습이 많이 부자연스러웠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이 보여준 창의성은 『미키 17』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니플하임의 혹독한 얼음 세계는 「설국열차」의 극한 환경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더욱 광활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미키의 복제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들인데, 인간의 신체가 마치 산업 제품처럼 생산되는 과정이 불편한 감정을 자아낼 정도로 매끄럽게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버트 패틴슨」의 미키 17과 미키 18 연기는 같은 사람이지만 완전히 다른 성격의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표현해내며, 두 캐릭터가 상호작용하는 장면들이 매우 완성도가 높았다.
그래도 영화의 아쉬운 감정을 숨기기는 어렵다. 개연성이 촘촘하지도 않을 뿐더러, 이를 만회할 만한 코미디의 타율도 높지 않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더구나 가장 아쉬운 점은 복제인간이라는 흥미로운 SF 소재를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국 『미키 17』은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재미가 '있지도' 않은 애매한 지점에 머무르는 작품이 되고 말았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이 주었던 강렬한 여운과는 달리, 크레딧이 올라가도 아무런 감정적 잔향을 남기지 못하는 영화는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