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2003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이다. 이 영화는 다나베 세이코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이누도 잇신 감독이 연출했다. 주내용은 하반신 장애를 가진 여성 조제(본명은 쿠미코)와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 분)가 그리는 사랑 이야기이다. 조제(이케와 치즈루 분)는 할머니와 함께 살며 불편한 다리로 인해 바깥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는데, 우연히 츠네오와 엮이게 되면서 새로운 경험을 마주하고 일상의 변화가 시작된다.
90년대생이라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거라 확신한다. 나의 학창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면 ‘일본 로맨스 영화’라던지 ‘명작 추천’이라는 키워드로 검색 시 항상 그 리스트에 올라와있던 영화였다. 그러나 로맨스 장르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던 나는 OTT의 찜 목록에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를 된장 숙성시키듯 오랜 시간을 스크롤링하며 지나쳐 왔다. 결과적으로 숙제처럼 미뤄왔던 이 된장을 30대가 되어 마주하게 됐는데, 오히려 더 좋은 경험이 되었다. 두 사람의 순수하면서도 현실적인 사랑의 모습을 학창시절에 보았더라면 또 다른 감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 느끼는 감정이 더 풍부하다고 믿는 나의 신포도 심리(sour-grape effect)이다. 현실적이고 담담히 써내려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청년시절에 보았더라면 지루하다는 느낌이었을 반면, 지금은 그들의 이야기에 납득할 수 있는 진득한 나이가 되었다고나 하는 의견이다.
조제와 츠네오의 시작은 달콤했지만 결론적으로 헤어짐을 맞이한다. 이 과정들이 과하지 않고 굉장히 현실적이기 때문에 담담함이라는 키워드가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리고 이 점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가진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내에서 극적인 사건이 많지 않고, 두 사람의 일상과 감정선이 너무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그려져서 역설적이게도 시선을 떼기가 힘들다. 예전보다 극장을 자주 찾지 않는 요즘 OTT로 영화를 보다보면 집중력이 쉽게 흐트러질 수 있는 반면, 자연스러움이 리얼한 장면들을 연출한 것 아닌가 싶다.
함께 밥을 먹거나 책을 보고 유모차에 보드를 연결하여 산책을 하는 등 행복한 순간들 속에서도 조제는 끝을 예감하고 있다. 그녀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서 '조제'라는 이름을 택한 것부터가 복선이었다. 짧고 강렬했던 사랑 이야기. 영화는 이 기한을 여러 방식으로 암시한다. 수족관 테마 여관에서의 독백, 조제의 초연한 표정들. 관객이 두 사람의 행복에 몰입할 때, 조제는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담담함을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결말에서 츠네오가 신발장 앞에 앉아 신발 끈을 묶고 외출을 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가장 고조된다. 그 프레임 안에서 장난스럽게 그에게 야한 잡지를 건네는 조제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맞받아치는 츠네오의 모습에서 관객은 단순히 외출을 준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장면은 다름 아닌 이별 장면이었다. 어찌 이리 담담할 수 있을까. 츠네오의 마음은 무거워 보여도 발걸음은 가볍게 집 밖으로 나선다. 외출이 아닌 이별을 담담히 마주하며 말이다.
‘사랑의 기한’이라는 표현이 딱 알맞을 듯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끝나는 사랑. 츠네오는 그 사랑에서 도망쳐 나왔고, 조제는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놓아준다. 그리고 그 한 해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세상 밖을 마주할 정도로 조제의 성장의 발판이 된다. 더 이상 누군가 밀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방향을 정하고 개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족관 테마 여관에서 조제가 남긴 독백은 단순한 비관을 떠나 사랑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성숙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언젠가 네가 사라지고 나면 혼자 깊은 바다 밑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그것도 그런대로 나쁘진 않아.”
또한 츠네오는 스스로를 도망쳤다고 말하지만, 나의 관점에서는 그도 성장을 이뤘다는 생각이다. 섹스파트너를 둘 정도로 개방적인 성관념을 가진 그였지만, 다른 두 여자를 제치고 조제를 더 챙기며 한 여자를 잠시나마 진심으로 다했다. 그런 내면 성장은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과거를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위했던 그 시간이, 함께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성장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더 먹먹하게 다가오는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이별의 이유를 조제의 장애에 초점을 맞추기 쉽다. 누가 끌어주기 전에는 움직이지 못하고, 할머니의 과잉보호, 그리고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보며 이게 이들의 사랑이 힘든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강 소설의 비유처럼 사랑은 결국 식는다는 것, 기한이 있다는 것을 결말에서야 알 수 있다.
그가 지친 건 장애가 아니라, 조제에게 '전부'가 되어버린 자신의 무게였을 것이다. 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 모든 경험의 매개체, 삶의 전부. 더구나 조제는 바깥세상의 모든 것을 신기해했다. 그에게는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것들이 조제에게는 전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들은 삶의 결이 달랐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과 이미 한참을 달려온 사람의 온도 차이. 처음엔 그 신선함이 츠네오에게도 특별했지만, 점점 그 간극이 숨 막히는 책임감으로 변했다. 젊은 남자가 감당하기엔 너무 진지해진 관계. 츠네오가 떠난 본질적인 이유는 조제의 유모차가 아니라, 사랑이 일상이 되면서 생긴 이 무게감과 어긋난 삶의 속도 때문이었다.
이 편견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순간,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에서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는 여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어른인 기쿠지로 자신의 여행이었다. 우리는 '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진짜 주인공을 놓쳤던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도 마찬가지다. 장애라는 프레임이 우리 시선을 가렸고, 우리는 그것으로만 이별을 설명하려 했다.
뒤늦게 이 영화를 마주한 것은 행운이었다. 어렸더라면 이들의 사랑을 로맨틱한 장애 극복 스토로리만 봤을 것이다. 하지만 30대에 들어선 나는 안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랑 앞에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때론 이별이 성장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츠네오를 그냥 도망자로만 치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망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누구나 도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남이든 도망이든 담담히 받아들이든, 어찌됐든 그 만남을 통해 둘의 세상은 더욱 광활해졌을 것이다.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이에 맞는 옷이 있고, 나이 들면서 좋아지는 반찬이 있는 것처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나에게 오랜 시간 숙성된 된장처럼 지금 타이밍에 맞는 영화였다. 학창시절부터 미뤄온 이 영화는, 결국 지금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30대를 살아가고 있다면, 이 영화를 다시 꺼내보길 권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이에 상관없이, 사랑의 기한을 경험해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