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는 자신의 별로 돌아간 게 아닐까?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by 트루노스




2025.11. 22 완독, 다시 읽는 고전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136P


어린 왕자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와 <남방우편기>를 읽고 나니, 마치 어린 왕자가 내게 다시 말을 거는 것 같아서 다시 읽고 싶었다. 몇 번째인지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우리들의 영원한 고전, 출판된 지 80년이 훌쩍 넘었음에도 여전히 인생의 가장 첫 장에 나오는 문법책처럼 읽히는 이유는 뭘까? 단순히 동화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의 눈을 빌려 어른들의 모순을 꿰뚫어 보는 철학을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사막 한가운데 불시착한 조종사 앞에 나타난 한 아이. 우리는 그 아이를 '어린 왕자'라 부르지만, 사실 그는 우리 마음속에 박제된 '잃어버린 질문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린이에게는 읽힐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어른들에게는 나이에 따라, 읽을 때마다 다르게 읽히는 책이다.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여전히 사랑받는 영원한 고전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아이에게는 신비로운 모험 이야기로, 젊은 사람들에게는 사랑과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상실과 죽음, 그리고 삶의 유한함에 대한 위로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 사무엘 16:7)는 성경구절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존재가 세상에 진정한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은 권력이나 소유나 명성이 아니라 이 길들임이라는 것을 말할 것도 없다. 순수함이나 관계의 소중함, 책임 있는 사랑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P87.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 걸 여우가 말했다. 가령 오후 4시에 내가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되면 벌써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내가 아무 때나 온다면 몇 시에 마음을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거야. 의례가 필요해.




여우는 기다림의 설렘을 '의례'라고 불렀다.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을 주는 행위를 넘어, 서로를 위해 특정한 시간을 내어주며 마음의 자리를 마련하는 정성스러운 의례와 같다는 의미이겠지.



효율과 속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위해 '세 시부터 행복해지는' 기다림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이 기다림의 미학은 헨리 반 다이크의 시와 닮아 있어서 옮겨 본다. 번역을 생각하면 ‘time is nothing’ 일거 같은데 좀 더 철학적인 깊이를 담기 위해 ‘time is not’이라 지었다고 한다.







* Time is! (by Henry van Dyke Jr.)


Time is ···.

Too slow for those who Wait.

Too swift for those who Fear.

Too long for those who Grieve.

Too short for those who Rejoice.

But for those who Love,

Time is not.



*시간은 (헨리 반 다이크 2세)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너무 느리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너무 빠르고

슬픈 사람에게 너무 길고

기쁜 사람에게 너무 짧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시는 원래 헨리 반 다이크가 해시계에 새기기 위해 쓴 글귀라는데, 해시계 위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사랑만은 그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낭만적인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한다.



P90.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내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내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나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여우가 말했다.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내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내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 어린 왕자는 기억해 두려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이 요청되는 사막이고 사랑은 긴 시간을 거쳐 공들여 만들어 줘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다.



P97.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고전은 유치하고 뻔하지만 우리에게 안내서를 제공해 준다. 다 읽고 나니 문득 어린 왕자가 내 마음속에 여전히 살고 있는 '어린아이'를 불러내어, 지금 당신은 제대로 살고 있나요?라고 다정하게 묻는 것 같다.



생텍쥐페리는 정찰비행에서 실종된 것이 아니라 아마도 그의 별로 돌아가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왕자> 앙트완 드 생텍쥐페리, 136P, 열린책들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다음은 말러의 아다지에토를 떠올리게 하는 한 남자의 추앙과 붕괴의 이야기 <마틴 에덴>으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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