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

<냉정과 열정사이> Rosso와 Blu의 교차로

by 트루노스



2025.12.13 완독, 10년 만에 다시 읽은 감상

<냉정과 열정사이> Blu & Rosso



10년도 더 전,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의 떨림이 지금도 여전한 걸 보면, 좋은 이야기는 세월이라는 먼지가 쌓여도 그 빛이 바래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내 안에 '준세이'가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복원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두 명의 작가가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서 쓴 작품이라 나도 누군가와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대학 시절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지만 사소한 오해로 헤어져야만 했던 두 사람. 10년의 세월 동안 차가운 냉정으로도 끝내 감출 수 없었던 서로의 열정을 피렌체 두오모에서 확인하게 된다. 낡은 명화를 복원하듯 잃어버린 진심을 되찾으며, 사랑은 결국 시간과 오해마저 뛰어넘는 기적임을 보여주는 해피엔딩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lu: 준세이의 열정, 놓지 못한 복원의 진심





준세이에게 아오이는 끝난 사랑이 아니라, 도저히 끝내 놓지 못하는 지금도 진행 중인 생생한 감정이고 진심이다. 그래서 과거를 반복해서 회상하며 자신의 미숙함을 자책한다. 만약 기억에 인위적인 '죽음‘을 선고할 수 있다면 후회도 사라질까?



P10. 아직도 아오이가 잊히지 않는다.



찢기고 바랜 과거의 명화를 되살리는 준세이의 작업은, 곧 아오이와의 시간을 되찾고 싶은 그의 간절함과 맞닿아 있는 절묘한 장치처럼 보인다.



P22. 내가 복원한 작품이 천 년 후에 또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복원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 내가 되살려낸 명화의 생명이 또다시 후대 사람의 손에 의해 더 먼 미래로 이어져 가는 것을 꿈꿔본다. 그것이 지금 내 삶의 의미이다.



P23. 16 세기 이후 시간이 멈춰버린 거리, 거리 전체가 미술관이다(…) 나는 이 거리에서 나 자신을 재생시킬 수 있을까 내 안에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을까?



준세이는 Blu라는 색이 의미하는 인물 자체라는 느낌이다. 차갑고, 깊고, 고요하고 그래서 자기의 기억에 갇혀 나아가지 못하고 숨 막힌다. 그러나 숨 막힐 듯 지독한 그 믿음이 사랑을 되찾을 수 있었던 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P256.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모르니까 이렇게 달리는 것이다. 단지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어쨌든 다시 한번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나를 찾아보고 싶다.



약속된 10년 뒤의 두오모. 준세이는 사랑을 잊지 못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믿고 싶었고 믿고 있었다. 준세이는 이처럼 뜨거운 열정 뒤에 깊은 고독을 숨긴 채, 오직 재회라는 단 하나의 기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Rosso: 아오이의 냉정, 침묵이 더 아픈 이유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인 것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누구나 떨림으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거다. 아마도 사랑이겠지.



아오이에게 기억은 복원의 대상이 아니라, 침묵으로 견뎌내야 할 형벌이다. 밀라노의 화려하고 차가운 일상 아래, 그녀는 아픈 기억을 묻어두고 그 위에 '냉정'이라는 차가움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녀의 절제는 무관심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사랑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숨어버리는 '가슴앓이'를 선택한 것이다.



P97. 아가타 준세이는 내 인생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터무니없는 무엇이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먼 옛날 학생시절에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 무엇이다.



그녀에게 준세이는 과거의 조각이 아니라, 현재를 잠식하는 '터무니없는 무엇이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지 않는 순간 서서히 멀어지는 것임을 그녀는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P255.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있는 장소에 인생이 있다.





이 음악을 들으며 읽으시면 피렌체의 거리와 두 사람의 진심이 더 깊게 다가올 것 같아 영화에서 두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 첼로곡 추가 링크 올려요..




https://youtu.be/cyYHJXd8jUc?si=Jvne9E2jVIW6y35H




작가 후기의 말처럼, 어떤 사랑도 한 사람의 몫은 2분의 1이다. 우리는 결코 상대의 마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준세이는 열정 뒤에 고독을 , 아오이는 차가운 냉정함 뒤에 진심을 숨기고 있었다.



예전엔 준세이의 열정이 좋았지만, 지금은 아오이의 냉정을 가장한 침묵이 더 아프다. 영화 <러브 어페어>의 한 장면처럼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켜내는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절제된 사랑의 모습으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냉정과열정사이> 츠지 히토나리, 에쿠니 가오, (주)태일소담출판사



*개인적인 독서노트입니다.






다음엔 우리 안 어딘가에 있을 ‘투명함‘을 깨워줄 별에서 온 위로 <어린왕자>와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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