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레고르 잠자가 이름을 얻는 순간

by 워니

코로나 3년이 다 되도록 우리 집은 청정 지대였다. 5인 가족 모두 바이러스를 잘 피해 다녔지

만 최근 우리 집에도 격리되는 확진자가 생겼다.


둘째 딸은 회사 일로 무척 지쳐있었다. 코로나에 걸렸으면 좋겠다는 방정맞은 말을 할 정도로 쉬고 싶어 했다. 매일 코로나 확진자를 파악하고 사내 직원들의 건강을 관리하는 보건직 업무를 맡고 있어 바이러스 감염 위험도 컸지만 과중한 업무로 면역력이 떨어져 건강을 지키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딸은 확진자가 된 첫날 방 하나를 차지하고 격리에 들어갔다. 3년 전 코로나 발생 초기에 느꼈던 공포감 수준의 위험 부담은 아니지만 그래도 감염에 대비해야 하는 일이라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거실 화장실에 빨간 글씨로 “확진자 전용”이라는 장난스러운 글을 써 붙여 놓고 혼자서 사용하게 했고 식사는 부엌 옆 베란다로 연결된 방 창문 아래 테이블에 올려두면 창문을 열고 밥을 가지고 들어가 먹게 했다. 설거지도 베란다에서 따로 해서 식기가 섞이지 않게 했다.


감기 수준이라고 수없이 들어왔던 주위의 말에 너무 쉽게 생각했다. 첫날은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놓고 킬킬대는 딸의 웃는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튿날부터는 목이 아프다고 하면서 죽을 먹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은 상태가 더 나빠져서 비대면 진료를 받고 약 처방을 다시 받았다. 그러다가 4일째 되는 토요일 아침 일찍 아이는 병원을 가겠다고 방에서 나왔다. 목이 부어서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약을 삼킬 수도 없다는 것이다.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코로나 전담 클리닉으로 지정된 평소 자주 다니던 동네 이비인후과에서는 진료를 거부했고 가까운 병원 모두 대면 진료를 하는 곳은 없었다. 대학 병원 응급실로 가려고 했지만 거기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대형 병원에 가봤지만 수액이나 항생제 주사 처방은 하지 않는다고 해서 차를 타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전화했더니 대면 진료가 가능한 곳을 알려 주었다. 딸은 수액을 맞고 돌아와서야 간신히 물을 마실 수 있었고 죽을 먹으면서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남들 다 겪어본 신기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것들을 느끼게 되었다. 가족끼리도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평소 큰 문제없이 즐겁게 지내온 가족이라고 느꼈는데, 고통을 겪는 혈육을 이해하고 돕는 태도에서 낯선 것을 느꼈다. 아이가 목이 부어서 숨을 쉬기 힘들다고 병원을 찾아 나설 때 아이를 태우고 병원에 가려는 나를 남편은 단호하게 말렸다.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 아이 혼자 가도록 내버려두라는 것이었지만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아이를 걷게 할 수 없어서 나는 아이를 태우고 병원을 찾아다녔다. 남편은 아이의 상태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런데 나 또한 희생적인 모성애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매일 두 가지씩 죽을 쑤어주고, 배를 갈아서 즙을 내고, 은행과 도라지를 끓여서 물을 마시게 하고 집안을 수시로 소독하고 창문을 자주 열어주는 등 일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저녁이면 곯아떨어졌다. 자식을 위해 전전긍긍하며 며칠간 애를 태웠고, 감염을 무릅쓰고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가족들과 식탁에 모여 저녁을 먹으면서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식탁 옆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방 안에 격리된 아이의 존재가 투명 인간처럼 느껴지고, 아이가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올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드는 순간 전염력을 가진 바이러스 때문에 몸으로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 순간 그레고르 잠자가 떠올랐다. 방 한 칸에 격리되어 있었던 그레고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방 밖에서 그레고르를 향한 시선들이 가족에서 벌레로 바뀌는 순간 그레고르는 고통스러워하며 삶에 대한 의지를 놓아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궂은일이라도 이겨냈을 듯한 억센 골격과 험한 인상의 파출부인 늙은 과부가 방문을 열고 그레고르를 구경하듯 바라보면서 “말똥구리”라고 이름을 붙이기 전에 가족들은 갑충을 보면서 몹쓸 병에 걸린 그레고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도 제 모습을 되찾지 못하는 그레고르를 보며 아버지는 폭력을 휘둘렀고 다정했던 여동생은 차갑게 변해 갔어도 그레고르를 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파출부가 벌레라고 명명한 순간부터 그들에게 그레고르의 존재는 지워지게 되었다. 그레고르로 인해 피폐해져 가던 그들에게 파출부의 명명은 도망치고 싶었던 탈출구의 명분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교묘한 명명은 우리 삶의 도처에도 수없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확진자라는 이름이 부여되는 순간 철저하게 벽 바깥으로 밀려나 닫힌 방 안에 갇히고 마는 기피 대상자가 된다. 아픈 몸을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경험에서 느낀 공포감과 격리로 인해 확진자를 소외시키는 사람의 심리를 알게 되면서 제대로 된 이빨을 갖지도 못한 그레고르 잠자의 불안한 눈이 자꾸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