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큰 시누이가 결혼하던 날이었다. 예식이 끝나고 하객들은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설픈 새댁이었던 나는 한복 차림으로 시댁 친척들 시중을 드느라 정신이 없는데 친정아버지가 찾고 있다고 했다.
친정 가족들이 식사하는 자리로 갔더니 근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주위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식탁 밑에서 접시 하나를 올려놓으며
"잔치 음식이 상해서 어떻게 하냐?"
미간을 잔뜩 찡그린 아버지는 접시를 건네주면서 다른 손으로는 코를 감싸 쥐었다.
깜짝 놀란 나는 접시를 받아 들고 살펴보았다. 생선이었다. 생선살 가장자리에는 약간 누런빛이 돌고 가운데 부분은 분홍빛을 띠고 역한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삭힌 홍어가 접시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웃으며
"아버지 이건 홍어라는 생선을 삭힌 건데 상한 건 아니에요"
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삭힌 홍어를 들여다보며
"아니 이런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걸 먹는다고?"
접시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잔치 음식에 이거 없으면 큰일 난대요."
생선을 구경하기 힘든 내륙지방에서 살아온 아버지처럼 나도 홍어가 낯설고 먹어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었던 때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웃고 지나갔다.
유독 그날 홍어는 냄새가 강했다. 시어머니는 큰딸을 시집보내는데 마음이 더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서른다섯 살에 사고로 남편을 잃고 혼자된 어머니는 자식 넷을 키우며 고되게 살았는데 큰 딸이 집안일을 말없이 대신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빠와 동생들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이라도 한잔 하는 날이면 시어머니는 늘 같은 말을 했다.
"너희 아버지 보내고 나가 얼마나 무서벘는지 아무도 모를끼다"
"서니 저거 겁나게 고상했당께, 공부도 잘했는디"
부모 가슴에 아픔으로 걸려있는 자식에 대한 무거운 마음은 시간이 지나도 가벼워지지 않는지 몇년 전까지 귀가 아프게 들었던 말이다.
시어머니는 큰딸 결혼식에 미안한 마음의 한을 풀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잔치 준비를 위해 며느리인 나는 결혼식 사흘 전에 백일도 안 된 신생아를 데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시댁인 광주로 내려가야 했다. 모유 수유를 하던 중이었지만 잔치 일을 거들어야 했기 때문에 분유를 먹여야 했고 아이는 탈이 나서 설사를 하더니 혈변까지 보는 상황이 벌어져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잔치 분위기에 아이의 아픔은 뒷전이었다.
집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을 불러 잔치음식을 장만했고 결혼식 하루 전에는 먼 곳에 사는 친척들이 예식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와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 음식을 장만해서 차려내고 치우는 일은 잔치 분위기에 흥을 얻어 힘들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손님을 맞는 시끌벅적한 잔치 중에도 전을 지지고 나물을 무쳐내는 중간중간에도 홍어 걱정을 했다.
"홍애가 맛이 잘 드러쓰까 모르것어야"
어머니는 하루에도 한두 번씩 뒤꼍 그늘진 곳에 놓아둔 항아리 뚜껑을 열어서 냄새를 맡아가며 홍어가 잘 삭아가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다가 한 덩어리를 들고 와서는 도마 위에 올려 쓱쓱 큼직하게 썰어 손님들에게 맛을 보였다.
"시숙, 어째 자실만 허요?"
벌건 초장에 살이 두툼한 홍어를 한 점씩 푹 찍어서 입에 넣고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얼굴을 찡그려 가면서도
"아이구 겁나게 맛나구마요. 행수님 솜씨 어델 가꺼이요?"
막걸리를 따라 권하는 시어머니 얼굴 가득 웃음이 환했었다.
큰딸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어머니는 미안한 마음을 덜어내려고 그 어느 때보다 좋은 홍어를 준비했을 것이다.
광주 양동 시장을 다 뒤져가면서 실하고 좋은 생물 암치를 사다가 수돗가에서 곱이 씻겨나가지 않게 정성 들여 손질을 해서 뒤꼍 그늘진 장독에 짚과 홍어를 켜켜이 올려 넣고 보름을 삭혔다.
홍어에서 톡 쏘는 냄새가 나는 것은 암모니아 때문이다. 보통 바다 물고기는 소변을 통해 노폐물과 요소를 배출하는데 홍어는 요소를 배출하지 않고 피부에 저장해서 삼투압을 조절한다. 홍어가 생명을 다하면 요소 성분이 암모니아로 분해되면서 발효가 이루어지고 세균이 증식할 수 없는 강한 알칼리 상태로 변해 부패하지 않게 되고 맛과 영양이 풍부한 식품이 되는 것이다. 항아리에 넣은 지푸라기에서는 열이 나서 발효를 돕고 이로운 균은 더해진다.
나는 홍어가 싫었다. 시댁 수돗가에 널브러져 있던 홍어의 허연 배를 보고 기절할 듯이 깜짝 놀랐다. 사람 얼굴처럼 보이는 모양새가 너무 기괴해서 무섭기까지 했다. 나중에야 홍어 입꼬리가 사람 눈처럼 보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홍어의 눈은 등 쪽에 붙어있었다.
시어머니는 장손 며느리감인 나를 처음 만난 날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시선이 마주치면 애써 눈길을 피했다. 1990년은 광주 민주화 운동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를 논의 중이었기 때문에 광주는 몸살을 앓고 있던 때였다. 경상도 며느리를 들이는 일이 그 당시 전라도에서는 유쾌한 일이 아니었고 홍어를 보면 기겁하는 며느리가 곱고 어여쁠 수는 없었다.
시어머니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사투리가 섞여 있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국자를 달라고 하는데 나는 바가지를 들이미는 식의 일이 번번이 일어나고는 했다. 불편한 며느리를 이해하려고 애썼던 시어머니처럼 나 또한 어렵고 불편한 서른 해의 시간들을 견뎌고 삭혀 무르익는 시간이 필요했다.
"홍애는 톡 쏨시롱 찌르는 지픈 맛이 젤이여"
나는 아직도 삭힌 홍어를 보면 피하지만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청상의 시간을 삭혀서 잘 숙성된 깊은 맛을 간직한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정을 느끼게 된다.